믿음과 전도

신앙적 모임의 필요성과 유익(조지 휫필드)

주님의 일꾼 2021. 1. 24. 08:03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4:9-12)

 

1.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낫다는 말은 진리

 

지혜자가 주장하고 있는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낫다는 말이 진리임을 입증하고자 합니다. 일반적인 사회 단체에서도 그러하고, 특별한 모임에서도 그러합니다. 이 문제에 있어서는 인간의 육체와 영혼의 복지를 위해서 종교적 모임이야말로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보여드림으로써 지혜자의 주장이 참인지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다고 봅니다. 창조자가 아담을 행복자로 만드는데 부족한 것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돕는 배필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2:18)

 

아담은 창조주께서 그를 하나님의 낙원에 두셨기 때문에 그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타락이후로 인간은 그의 지식이 어두워지고 그의 마음이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멀리 떠난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시각을 받아야만 합니다.

 

우리가 발견하는 하나님의 계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의무에 있어서,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본질상 알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주님의 계시는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자신을 모세에게 나타내실 때는 땅이 진동하였고 심히 두려워하였는데, 우리에게 하나님이 직접 나타나신다면 우리는 더한 두려움에 사로잡힐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계시가 주어졌으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지도에 따라 돕는 배필을 사용해야 합니다. 지식에 있어서 서로 가르쳐 주며 우리의 영원한 평강에 속한 것들을 실천해 가도록 격려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타락 이후로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모임의 목적임에 틀림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왜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더 나은지를 설명하는 강력한 근거입니다. 또 왜 우리가 함께 모이기를 폐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근거입니다.

 

더 나아가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어느 정도는 자연스러운 베일을 가지고 있는 자이기에 하나님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의 눈을 가리고 있는 수건을 벗겨 내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비로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영원을 향하여 여행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그곳까지 우리의 길을 가도록 돕고 격려하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가 종교적 모임으로 함께 모이는 일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2. 종교적 모임의 측면에서 본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은 이유

종교적 모임에 있어서 왜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은지 그 이유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인간은 홀로일 수 없는 존재입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은 가장 큰 이유, 혹은 종교적 모임의 가장 큰 유익은 저희가 넘어질 때 한 사람이 그 동무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이유야말로 정말로 탁월한 설명입니다. 우리의 영혼을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우리가 넘어졌을 때 사실을 말해 주며 다시는 넘어지지 않도록 경고해 주는 자들이 있다는 것은 성도들이 가지는 큰 특권입니다.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서로 온기를 제공하기에 두 사람이 더 낫습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은 이유는 서로에게 따뜻한 열기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성도들이 하나님의 은혜의 불길로 함께 타오르면, 서로를 깨워 주고 활기가 넘치게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서로 분리되고 따로 떨어져 있으면 금방 냉랭해지고 시들해져 버립니다.

 

두세 사람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 열기가 있게 됩니다. 그러나 혼자서는 어떻게 뜨거워질 수 있겠습니까? 신앙적인 모임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또 다른 유익을 보십시오. 그것은 우리를 경건한 삶에 있어서 정열적인 사람이 되게 하고 강건한 자가 되게 합니다.

 

이제 우리는 앞에서 언급한 견해와 다른 각도에서, 영원한 세상을 향하여 긴 여행을 하는 사람들로서 우리 자신들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비록 광야 같은 이 세상을 지날지라도 우리의 영적 대장이신 구세주, 여호수아의 지도하에 우리를 영적인 하늘나라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자로서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모든 난관들을 만날 때마다 얼마나 쉽게 놀라 자빠지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얼마나 쉽게 롯의 아내처럼 영적인 소돔성을 뒤돌아보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복인지를 보십시오. 그것은 우리의 소심한 계획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항상 상기시켜 줄 것입니다.

 

두 사람이 힘을 합치면 능히 적을 이깁니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내 아들아, 네가 여호와를 섬기고자 할 때 시험에 들지 않도록 네 영혼을 준비하거라.” 그 시험은 내적인 것뿐만 아니라 외부로부터 오는 원수들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함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시선이 하늘에서 옮겨지는 순간 곧바로 세상은 우리의 눈을 현혹시켜 혼자서 잘 믿는 체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넓은 길에서 벗어나지 않고도 얼마든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고 미혹합니다. 사단도 마찬가지로 그의 악의적인 목적을 달성하고자 불경건한 생각들을 우리들 마음속에 주입합니다.

 

여기서 신앙적인 동지들이 있는 유익한 면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만일 여러분이 불길한 유혹들을 극복할 수 없을 만큼 심한 유혹을 받게 된다고 합시다. 그럴 때 신속하게 믿음의 동료들에게 달려가야 합니다. 그들이 여러분에게 참되고 바른 가르침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여러분에게 여러분이 정말로 신앙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면 단순해져야 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으로 적당히 살기를 원한다면 다른 사람들처럼 여러분도 똑같이 게으름과 무관심한 삶을 살면 됩니다. 그러나 전적으로 그리스도인답게 살고자 하면 더 깊은 자리에 나아가야 한다고 믿음의 형제들은 말해줄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고통 중에 부르짖을 뿐 아니라 협착한 문으로 들어가려고 힘써 수고하게 될 것입니다. 믿음의 친구들이 이러한 권면을 하는 이유는 스스로 너무나 많은 고통을 자초하지 않도록 하기위해서입니다.

 

또한 우리 주님께서 베드로의 경우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아픔을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신앙적인 모임에서 우리가 얻는 또 다른 놀라운 유익이 있습니다. 즉 친구들은 그들을 대적하는 것들로부터 서로를 잘 지켜 주는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비록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향하여 선한 뜻을 가지고 계시지만 사단은 우리가 함께 모이지 못하도록 서로에게 적대감을 심어 줍니다. 서로의 도움이 결핍되게 함으로써 사단은 우리를 자신의 목적에 사로잡히는 포로가 되게 합니다. 사단은 먼저 성도들로 하여금 교통에 대하여 무지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나서 죄인의 길에 서라고 명합니다. 냉랭할 때 나를 따듯하게 해 줄 친구가 없다거나 공격을 받을 때 그의 원수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도록 돕는 친구가 없는 것은 불행입니다. 아니, 화입니다.

 

3. 신앙적 모임의 구성원들의 의무

 

모든 신앙인들이 가지고 있는 여러 의무들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그것은 세 가지인데, 첫째는 서로 바르게 하고, 둘째는 서로 권면하며, 셋째는 서로 보좌하며 방어하는 것입니다.

 

서로 바르게 해야 합니다

바르게 한다는 말은 좀 더 폭넓은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 형제가 죄와 허물 가운데 빠졌을 때 아주 부드러운 방법으로 그를 바로잡아 줄 수 있음을 포함하는 말씀입니다. 또는 좀 더 제한적인 측면에서 말한다면 잘못을 저지른 친구를 더 이상 그 죄악에 빠지지 않고 보다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끌어 감을 의미합니다. 지혜자는 본문에서 우리가 그 두 가지 경우 모두에 해당되어야 함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가 넘어지면 다른 동료가 넘어진 친구를 일으켜 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연약하고 불안정한 피조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된것은 전적으로 주님의 값없이 베푸신 은혜와 그의 섭리하심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범죄한 형제들은 우리에게서 비난보다는 동정을 바라고 있습니다.

 

성도 각 사람은 죄에 빠진 형제를 원상태로 회복시키기 위하여 가장 온유하고 가장 단호하게 일으켜 세우는 일을 해야 합니다.

 

의도적으로 악한 일에 빠진 경우는 죄를 범했지만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와 함께 하였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실수를 행한 자들, 혹은 실질적으로 죄를 범한 것은 아니지만 죄가 될 수 있는 일을 하는 자들을 온유함으로 바로잡는 일입니다.

 

서로가 격려해야 합니다

두 사람이 어떻게 서로를 따듯하게 할 수 있습니까? 교회의 모든 성도들은 자기의 심장에 열정적인 사도의 권면을 깊이 새기시기 바랍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10:24-25). 우리는 잠자는 영혼들을 일깨우기 위하여 격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세상과 정욕과 악마의 유혹을 대적하는 파수꾼을 세우는 일을 위하여 서로 격려함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적인 모임을 가질 때 이 중요한 일을 실천하는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의지가 동원되지 않으면, 그리고 서로 격려함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에 불꽃이 타오르지 않으면 우리의 경건한 성경 읽기나 말씀 듣기가 큰 효력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진리의 빛을 받거나 발하는 일에 서로 격려하는 것이야말로 최상의 방법입니다. 따라서 이런 따뜻함과 열기를 보존하고 더욱 증가시키는 유일한 길은 바로 서로를 격려하는 것입니다.

 

함께 힘을 합쳐 대적자를 방어해야 합니다.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전혀 공격을 받지 않은 경우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또 반대로 연합과사랑을 나타내지 않은 기독교도 존재한 적이 없습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진리를 경험적으로 증명합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 3:12).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는 이 세상 끝날까지 이어질 것입니다. 따라서 단지 우리 주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성도들은 대적하는 자와 맞서기 위해서라도 서로 하나 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4.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낫다는 말의 함축된 의미, 그리고 권면

 

약한 세력이 뭉치기에 성도들은 결집해야 합니다.

다같이 마음을 모아 수고하는 것은 마땅한데, 한 가지만 더 지적한다면 하늘나라에서 우리가 가지는 행복의 한 단면이 성도들의 교통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와 달리 살아온 경건한 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과 교제하는 즐거움이 분명 주어질 것입니다. 그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우리의 믿음이 더욱 강화되고 힘을 얻게 됩니다. 천국에서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성도들과 교통하며 그들이 선행을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참된 신앙에 반하는 헛된 모임을 구분하고 경계해야 합니다.

그 말씀은 아주 위험한 상태에 빠져 있는 자를 경고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에 참으로 적대적인 일들을 조성하는 자들, 은밀하게 저지르는 방종함 및 이교도들이 얼굴 붉히는 일들을 저지르는 행위들, 악의가 없는 놀이나 모임 등 세상이 예의를 갖추고 친교하는 모임에서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 등도 경고의 대상입니다.

 

여러분이 시작한 이 길을 계속해서 나아가십시오. 여러분의 사랑하는 교회 공동체 모임에 지속적으로 히을 다하여 참여하십시오. 악을 버리고 덕을 세우는 데 힘을 쓰십시오.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그를 경외하는 가운데서 자신을 세워 가시기 바랍니다.

 

밖에 있는 자들과 동행하는 것을 신중하게 생각하고, 자신을 무지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대화가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것으로 열려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매일 매일의 삶에 있어서 계속해서 말과 행실에 본이 되시고, 특히 교회 공동체의 사람들과 교제하되 동일한 영과 기질을 소유하고 있는 믿음의 사람들과의 교제가 풍성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무한히 흘러 나오는 자비하심과 성부와 성령 삼위일체이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과 찬송과, 권능과, 위엄과, 높임과 다스림이 지금부터 영원까지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