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 세계

[스크랩] 성령충만의 결과는 무엇인가

주님의 일꾼 2017. 7. 18. 18:37

성령충만의 결과

 

 


 1. 성 화


 성령은 우리 속에서 예수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는 분이며 성화하게 하시는 분이다.

그가 우리의 심령속에서 탁월한 위치를 차지할 때에 주님의 영이 거하시는 곳에 자유가 있으므로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는 것이다.(롬 8:12, 고후 3:17)


웨슬레는 성화의 과정을 2단계로 보았다. 즉 초기의 성화와 온전한 성화이다.

초기의 성화는 거듭나서 성화의 단계에 들어는 갔으나 완전성화에 이르기 전의 상태로 불완전하다.

이것은 아직도 죄의 세력에서 온전히 헤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이 단계의 상태는 일반적으로 의심과 공포에 쌓여서 심한 내적 갈등을 겪으면서 신앙생활를 하게 된다.

반  완전한 성화는 신자가 다시 자신의 무능과 자신 안에 남아있는 죄를 자각하고 믿음으로 받는 신앙체험으로

이 순간을 통하여 신자는 마음 속에 남아 있는 죄성으로부터 씻김을 받으며 사랑과 봉사에 더욱 큰 힘을 얻어

승리하는 생활의 계기가 된다.


웨슬레의 성결론을 성령론적으로 설명할 때는 성령으로 거듭 나는 것이 신생함이니 곧 성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신생한 자는 성령이 그에게 내주하게 된다. 그리고 이 신자는 성령의 충만을 받음으로 온전한 성결에 이르게 된다.

성령충만이란 계속적인 유지를 포함한 용어이기에 성화의 목적론적인 면과 점진 성장의 면을 뚜렷이 함축하고 있다.

 

2. 성령의 열매


갈라디아서 5장에서 성령의 열매는 성령충만과 뗄 수 없는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

바울은 여기서 육체의 일들과 성령의 열매를 대조하고 있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바울이 육신과 성령에 의해

산출된 품성을 묘사함에 있어서 비슷한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는데 '육체→일들' '성령→열매'이다.

'일들'은 노동을 투입하니 아무 이득을 생산하지 못하고 '열매 맺는 일'은 재배가 요구되나 열매 자체는

직접적 노동의 결과가 아닌 성장과정으로 부터 나온다. 그러나 그것의 결과는 정말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바울은 성령충만을 위한 조건으로서

육체의 정욕을 이루지 않는 수단은 성령을 쫓아 행하는 것이라고 선언하고(16절),

육체의 소욕의 상세한 목록을 제시하고는(19-21절), 성령의 열매를 그것들과 대조해 놓고 있는 것이다.

특기할 것은 사도가 어떤 개인들의 생활속에 나타나는 이례적이고 일시적인 성령의 역사 곧 방언을 말하는 일과

같은 특별은사(카리스마)들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는 모든 자들에게 베풀어진 은택에 대해

말하고 있는 사실이다. 여기에서 이러한 은사들은 한 단위로 '열매' 즉 추수로 간주되고 있다.

또  이 성령의 충만함에 의해 생산되어지는 이 열매들은 '그리스도를 닮음'의 완벽한 구현이라고 종종 지적되어 진다.

그러므로 성령충만의 각 결과들은 '그리스도를 닮음'의 산출이라고 말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갈 5:22-23에 있는 9가지 성령의 열매를 살펴 보고자 한다.

헨드릭슨이나, 스토트, 렌스키 등은 그들의 주석에서 9가지를 각 3가지씩 세 그룹으로 나누어 개괄적인 설명을 한다.

사랑, 희락, 화평은 지극히 근본적인 영적 성품들을 (스토트 :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태도),

오래참음, 자비, 양선은 사회적 관계에서 나타나는 여러 덕목들을,

충성은 하나님과 그의 뜻에 대한 신앙인들의 관계로서의 충실,

온유는 인간의 접촉에 관련되어 있고(스토트 :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그 겸손하고 부드러운 성품),

절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즉 자신의 욕망과 정욕에 대한 관계를 각각 나타내고 있다.


성령 하나님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그의 매일의 생활에서 사랑과 기쁨, 화평과 절제 등을 통해서

성령의 지배를 보여준다. 이것은 또한 근본적으로 타고난 좋은 성품이나 좋은 기질의 결과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의 모든 생활을 지배하시는 초인간적인 성령충만의 열매들로써 성품과 생활에서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고 풍성히 맺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3. 관계의 변화


성령은 인간을 중생시키고 새로운 본질, 새마음 새 사고방식, 새로운 모든 것을 주시며 진정한 소망이 되신다.

사람들이 일단 성령이 충만해져서 그의 지배를 받기만 하면 그들은 자기들 속에 있는 악을 알고 자신들을 쳐서

복종 시키며 "은혜와 그리스도의 지식 안에서 성장하여" 서로의 관계가 주안에서 성숙하게 연결되는 것이다.


첫째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변화한다.

성령충만은 하나님을 향해서 감사와 찬송을 드림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뀌게 한다.

하나님을 생각할 때마다 기쁨과 감격과 찬송이 있다.

늘 원망이 있고 회의가 있던 우리 인생이 찬송과 감사로 바뀌어 진다.


둘째는 성령충만한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아내가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듯 복종해야 하며, 남편은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사랑하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엡 5:22-28),

이는 남편도 성령의 뜻에 굴복하고, 아내도 성령의 뜻에 굴복하는 관계이다.

남편과 아내가 성령의 조종에 이끌리어 사는 삶의 관계가 성령충만한 남편과 아내의 관계이다.


바울은 성령충만한 삶의 관계 가운데 세번째로 중요한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설명한다(엡 6:1-4).

자녀들은 주님께 하듯 자신들의 부모에게 순종하되 사랑의 마음과 감사의 마음 그리고 존경의 마음으로

순종하여야 한다.반면 부모들은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말고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여야 한다(엡 6:4)

이와같은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성령이 조종하는 성령충만의 관계인 것이다.


바울이 성령충만의 삶을 설명하는 맥락에서 마지막으로 설명한 관계는 주인과 종의 관계이다(엡 6:5-9).

종들은 육체의 상전에게 그리스도께 하듯 순종하여야 한다. 종들은 외형적으로만 순종할 것이 아니요.

순전한 마음으로 순종해야 한다. 반면 주인은 종들을 인격적으로 대하고 의와 공평으로 그들을 대접해야 한다.

왜냐하면 주인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하늘에 계신 주인은 사람을 외모로 보시지 않기 때문이다(엡 6:9).

주인도 종도 그리스도께 하듯 서로를 대하는 것이 성령충만한 관계인 것이다.
바울은 성령충만한 삶을 설명하는 맥락에서 이상의 세 관계를 설명했다.

이는 성령충만이 성도들의 매일 매일의 삶과 직결되어 있음을 증거한다.

그러므로 성령충만의 삶은 성도가 어떤 형편에 처하든지

그 형편에서 성령께 철저히 굴복하고 성령의 뜻에 따라 사는 삶을 가리킨다.


4. 전 도


성령충만의 결과는 다른 방면에도 많이 나타나겠으나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을 향해서 불타는 심정을 갖게 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는 뭐니 뭐니해도 오순절에 성령충만을 받은 제자들이 복음의 능력있는 증인이 되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이는 행 1:8의 성경 말씀으로 잘 알 수 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여기서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하신 후에는

두가지 결과가 뒤따르게 될 것을 알 수 있는데 능력(권능)을 받을 것과 예수님의 증인이 될 것이 그것이다.

즉 오순절 성령 강림의 결과는 제자들이 능력을 받아서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것인데

이것이 사도행전 전체의 주제이며, 또한 사도행전의 기록들은 위의 예언이 실제로 성취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복음 전파의 능력이 성령충만과 관련되어 있음은 예수님의 경우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사도행전의 저자와 동일한 저자인 누가가 기록한 복음서에는 성령세례와 성령충만과 권능이 차례로 나타 나는데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 받으시고(눅 3:21-22),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돌아 오셔서(눅 4:1)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마귀의 시험을 받으시고는 (눅 4:1-13) 성령의 권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셨고(눅 4:14) 백성들에게 가르치셨다(눅 4:15).
바울 사도의 경우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나 이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6:19-20) 하였는데 이는 감옥에 갇힌 죄수로서 출옥이나 조금 편한 대우를 위해 기도하고 있지 않다.

감옥에 있는 죄수로서 더욱 담대히 입을 벌려 그리스도의 비밀을 증거하도록 그것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했다.

성령충만한 자의 불쌍한 영혼을 향한 애타는 간구요 원함이다. 성령충만한 사람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을 볼때

불쌍함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의 영혼의 곤고함과 그들의 영혼들의 불쌍함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고통과 고난과 어려움도 감수하여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5. 은사의 체험


은사를 받지 않은 신자는 없다(엡 4:7)고 했지만 성령이 충만한 성도들에게서 은사가 더 많음을 볼수  있다.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역사속에 행 2:38에 "베드로가 가로되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한 말씀은 회개하는 자가 성령의 은사를

받게 됨을 시사 하는데 여기에서 "성령의 선물로 받으리나" 한 것은 성령충만과  성령의 은사 주심을 의미한다.
마가의 다락방의 문도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자 방언을 하는등 각가지 은사가 임했다.(행 2:1-4) 

즉 오순절 성령 강림후 제자들이 성령충만함으로 능력과 은사를 받아서 예수님의 증인이 되었다. 

사도행전을 통해서 볼때 성령이 충만한 결과 특수한 은사를 체험하게 했음을 알 수 있다.
은사 주심은 성령님의 주관적 역사이나 성령으로 충만할때 특별한 은사를 주시는 것이다. (일부 옮긴글)

 

출처 : 성령충만!
글쓴이 : 성령 충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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