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핵심진리

[스크랩] 12. 선택이란 무엇인가

주님의 일꾼 2017. 5. 26. 18:02

 

 

  12. 선택이란 무엇인가

선택 또는 예정이라고 불리는 교리에 대해서는 교회 안팎으로 많은 논쟁이 되어 왔었다. 우리는 선택을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선택이란 하나님이 창세전에 어떤 사람들을 택하시되 하나님이 미리 아신 그들의 공로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한 뜻으로 그들을 택하신 일을 말한다. 많은 이들이 이와같이 정의되는 이 교리를 불합리하고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성급하게 결론부터 내리기 전에 이런 정의, 다시말해 이 교리가 어디서 나왔는지를 먼저 살펴보는 일이 중요하다.

 

선택에 대한 신약의 가르침

 

신약 성경의 여러 본문은 하나님이 구원받을 사람들을 미리 정하셨다고 꽤 분명히 확증하는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바울과 바나바가 바시디아 안디옥 지방의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했을 때 누가는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행13:48)고 기록했다.

 

누가가 "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고 말한 한 가지 이유는 훗날 바울이 에베소 1장4-6절에서 표현할 진리를 그가 이해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바울은 그 뒤에 이렇게 덧붙인다. "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엡1:12).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고 자기에게로 부르시는 이유는 우리가 선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영원 전의 계획과 값없는 은혜 때문이다.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딤후1:9).

 

선택이 의미하는 것

 

이들 신약 성경 기자들이 선택 교리를 예수님을 믿는 모든 이들에게 주는 위로로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바울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ㅇ르 본받게 하기 위히여 미리" 정하셨음을 알수 있고( 롬8:29). 하나님이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셨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롬8:30).

 

선택이 의미하지 않는 것

 

선택 교리를 주장하는 것이 곧 우리의 선택과 행동이 중요하지 않다거나 아무런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신약은 구원의 모든 역사를, 인격적인 피조물을 깊이 사랑하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일로 표현한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1:5). 하나님의 선택에는 하나님이 친히 택하신 이들에 대한 인격적인 사랑이 스며 있다(요3:16).

 

선택에 대한 바른 이해느 우리의 선택과 결정에 실제적인 가치를 부여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선택이 우리의 선택에 바탕을 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을 "창세전에"(엡1:4) 택하신 까닭은 그들의 믿음이나 그들이 내릴 결정을 미리 아셨기 때문이 아니다. 바울은 로마서 8장29절 말씀에서 이 사실을 확증한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미리 정하셨으니". 바울이 말하는 하나님의 미리 아심이란 하나님이 사람들"을 미리 아신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이들의 구원과 관계된 맥락에서 이들은 "미리" 아셨다.

 

우리는 진정으로 자유로운가

 

선택의 교리가 사실이라면 우리는 진정으로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가 많다. 이런 생각의 맹점을 "자유롭다"는 말을 둘러싼 여러 다양한 정의와 가정 및 그 각각의 차이가 오해와 의견 차이를 불러 오기 쉽다는 것이다. 그런 경우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좀더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서는 "자유롭다"는 말 외에 다른 말을 쓰는 편이 도움이 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뜻과 어긋나는 선택을 하도록 강요받지 않는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일을 행한다. 선택한다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의 부분적인 의미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 자신이 자기 성품에 부합되는 일을 하기로 선택하시는 모습을 그대로 본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님도 우리의 선택이 참된 선택이 되도록 우리를 창조하셨다. 그러나 우리의 선택이 참되고 자발적이고 자원하는 선택이 되기 위해 어떠한 하나님이 개입도 절대적으로 배제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엡1:11) 분이시며 그리스도도 계속해서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기 때문이다.

 

만약,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선택" 즉 택함을 받지 못한 이들은 어떻게 되는가? 어떤 사람이 예수님 말씀을 거부하는 것에 대해 성경은 결코 하나님을 탓하지 않습니다. 성경의 강조점은 항상 믿기를 거부하는 이들의 자발적인 선택에 있으며 그들의 불신에 대한 책임은 그들 자신에게 있다. 이는 요한복음8장43절의 말씀과 같다.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진실로 공평하신가

 

구원과 관련해서 "공평"이란 것이 정말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로 하나님으로서는 천사들에게 그렇게 하셨듯이 자기에게 죄짓고 반역한 인간은 아무도 구원하지 않으시는 것이야 말로 완벽하게 공평한 일일 것이다.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벧후2:4). 그러나 하나님이 어떤 사람들을 구원 하신다면 이는 공평과 정의의 요구 수준을 뛰어넘은 은혜인 것이다.

 

바울은 본질적으로 우리에게는 어떤 한계점이 있어서 그 이상 하나님을 반박하거나 하나님의 공의를 의문시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자신의 주권적인 뜻에 따라 모든 일을 행하셨다. 하나님은 자신의 주권적인 뜻에 따라 모든 일을 행하셨다. 하나님은 창조주이고 우리는 피조물이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불공평하다거나 정의롭지 못하다고 비난할 근거는 없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가

 

선택이 참이라면 하나님은 여전히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실까요? 일부 성경 말씀에 따르면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2:4). 베드로도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3:9). 이 두 말씀에 대한 해석은 하나님이 다른 무엇보다 더 원하시는 일이 분명 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진실로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바라시고 원하신다. 이것이 이른바 하나님의 "계시된" 뜻이자 하나님이 이 땅의 모든 사람에게 행하라고 말씀 하시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성경에서 가장 난해한 교리 가운데 하나이다. 성경은 하나님조차도 구원받지 못할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큰 슬픔을 느끼신다는 것을 보여준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겔33:11). 예수님도 예루살렘에서 자신을 거부한 사람들을 생각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마23:37).

 

모든 것이 은혜다

 

선택 교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나 우리가 행한 일, 또흔 앞으로 행할 일 때문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기로 결정하셨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하셨음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바른 반응은 영원토록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것이다. 또 타인에 대한 우리의 바른 반응은 겸손이다. 개인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조금이라도 주장할 만한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 모든 은혜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출처 : 우림과둠밈
글쓴이 : 우림과둠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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