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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역사 쉽게 잊는 민족과 쉽게 못 잊는 민족… 하지만 이웃으로 살아야"

주님의 일꾼 2017. 10. 31. 16:13

[최보식이 만난 사람] "역사 쉽게 잊는 민족과 쉽게 못 잊는 민족… 하지만 이웃으로 살아야"



    입력 : 2015.07.13 03:00 | 수정 : 2015.07.13 09:17

     

    [한·중·일 문명 비평서 '풍수화(風水火)' 출간… 당대 최고의 수학자 김용운]



    "외교서 감정 드러내기보단 국가 이익 얻는 것 중요
    日 바뀌도록 이끌려면 우리 스스로 品位 올려야 "
    "죽은 사람은 '호도께(부처)' 戰犯도 도둑놈도 죽으면
    그걸로 끝이고 호도께 돼 神社 참배도 같은 맥락"

    김용운 선생은 “일본인은 권력 앞에 ‘어리광’을 부리고 한국인은 ‘뗑강’을 부린다”고 말했다.
    김용운 선생은 “일본인은 권력 앞에 ‘어리광’을 부리고 한국인은 ‘뗑강’을 부린다”고 말했다. /이진한 기자
    "나는 '위안부 소녀상'을 부끄럽게 여깁니다. 후손들에게 자존심을 살리는 인물을 내세워야지, 왜 당한 사람을 내세우는가요. 프랑스의 잔다르크나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 등은 그 나라의 기백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김용운(88) 한양대 명예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이런 발언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모르는 것 같았다. 인터뷰가 거의 논쟁처럼 됐다.

    ―역사적 사실을 부인하니까요. 일본이 인정하면 그렇게 하겠습니까?

    "위안부로 끌려갔다는 사실은 자존심이 상하고 아픔이고 상처입니다. 자기 상처를 선전하는 것은 삼가야 합니다. 마치 춘향이 관아에 끌려갈 때 월매가 뒹굴면서 '우리 집에 초상났네'라며 울고불고했던 것처럼 그런 행동이 동정받을 수 있다는 심리가 우리 무의식에 작용한 게 아닐까요. 일반 국제 상식으로는 어떻게 비칠까요?"

    ―그렇다면 위안부 강제 동원을 부인하는 아베 정권의 일본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 겁니까?

    "이미 '고노 담화(1993년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의 담화)'에서 위안부 문제를 사과했어요. 그 이상의 사과를 또 받아야 하나요? 외교는 우리 요구만 할 게 아니라 상대도 생각해야 합니다. 일본은 '패전(敗戰)'을 인정한 적이 없어요. '종전(終戰)'이지. '미군에 점령당했다'는 표현도 안 씁니다. '미군이 주둔했다'고 하지. 얼마 전 논란이 된 강제 노역 표현도 'forced to work'이지 'enforced labor'는 아니라고 했지 않습니까. 이런 일본을 향해 우리의 입장·가치관만 강요하면 그건 외교가 아닙니다."

    ―가해자는 일본인데, 사과를 요구하는 우리가 마치 잘못된 것처럼 들립니다.

    "국가 이익을 말하는 겁니다. 이웃이라는 지리적 조건은 영원히 바뀌지 않습니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고 살아야 하는 사이입니다. 상대가 듣기 싫어하는 말로 반성을 강요할 게 아니라 상대가 스스로 바뀔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우리는 일본에 대해서만은 어떤 막말을 해도 애국이 된다는 인식이 있어요."

    그를 만난 것은 최근 펴낸 '풍수화(風水火)'라는 책을 읽은 뒤였다. 책 제목은 신바람(風)의 한국, 모든 문명을 녹여버리는 물(水)의 중국, 화산처럼 폭발하는 불(火)의 일본을 의미했다. 왜 한·중·일 관계가 지금처럼 됐는지 민족의 집단 무의식과 지정학(地政學)으로 분석한 책이었다.

    참신하면서 논쟁적인 시각과 시공을 넘나드는 박학(博學)함에서는 근래 본 국내 저작물 중 으뜸이었다. 그럼에도 별로 화제가 안 된 것이 놀라웠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인문학이나 역사 전공자가 아닌, 당대 최고의 수학자(數學者)였다는 점이다.

    서울 서초동에 있는 그의 개인 사무실은 대학 연구실처럼 책으로 쌓여 있었다.

    ―80대 후반에 한·중·일 3국의 역사와 문화, 의식구조를 비교분석해 이런 대작(大作)을 썼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나이 먹었다는 느낌은 수학 계산에서 먼저 나타나는 법인데 나는 아직 그걸 못 느꼈어요. 매일 사무실에 나와 오전에는 수학을, 오후에는 인문과학 공부를 합니다."

    ―어떻게 이런 테마로 책을 집필하게 됐습니까?

    "나는 일제 강점기 때 일본에서 출생했어요. 해방이 돼서 돌아왔는데 6·25를 만난 겁니다. 전쟁통에서 '왜 우리는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가. 몽골 침략, 임진왜란, 일제 강점기 같은 역사가 왜 한반도에서 되풀이되는가' 하는 문제의식을 갖게 됐습니다. 역사가 진보한다느니, 이성과 자유의 확장으로 간다느니 하는 마르크스나 헤겔로 대표되는 '결정론적' 역사관으로는 해결이 안 됐지요. 이 책의 집필에는 3년 걸렸지만, 그때부터 이 의문을 풀기 위해 공부해온 거지요."

    ―선생님은 와세다대(大) 공대를 나와 미국에 유학 가서는 전공을 수학으로 바꿨지요. 말하자면 쭉 이과(理科)인데.

    "수학자였기에 이 책을 쓸 수 있었습니다. 과거에 우리가 배운 미적분ㆍ방정식 같은 수학은 '결정론적' 수학이었지요. 이는 서울역을 출발하면 부산역에는 몇 시에 도착한다는 답이 나오는 것과 같지요. 초기 조건이 같으면 답도 같은 거죠. 하지만 20년 전쯤 '복잡계(複雜界)'의 수학이 나왔어요. 내가 국내에 처음 소개했습니다만, 일기예보를 떠올리면 됩니다. 날씨에는 여러 요소가 개입되기에 답이 딱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복잡계' 수학까지 나오니, 이거 쉽지 않군요.

    "'복잡계' 수학에는 '프랙털(fractal) 이론'이라는 게 있습니다."

    ―부분의 구조가 전체의 구조와 똑같은 모양으로 반복되는 걸 말하지요?

    "그렇지요. 여기서 저는 역사의 순환을 착안한 겁니다.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이 한반도에서 난리치는 양상이 되풀이되는 구도가 같지 않습니까. 오늘날 상황은 바로 구한말과 같지 않습니까. 한반도의 지정학과 민족의 집단 무의식(原形)에 의해 역사도 순환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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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운 명예교수와 최보식 선임기자 사진

    ―반복되는 것처럼 비칠 뿐 사실은 다 다르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나는 살아오면서 체험적으로 그런 반복성을 느꼈으니까요. 아놀드 토인비도 '동시성(同時性)의 역사'에 대해 말했지요.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맞붙었던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영국과 독일이 맞붙은 1차 세계대전의 양상과 똑같다고 했지요."

    ―그렇게 대비시키면 안 같은 게 있을까요. 선생님은 한·일 갈등의 기원이 663년 신라ㆍ당 연합군과 백제ㆍ왜 연합군이 군산 앞바다에서 맞붙은 '백강전투'에 있다고 했더군요.

    "당시 패배한 백제인 3만2000여명이 일본으로 이주해 일본의 지도층을 형성했습니다. 이들의 가슴에 간직된 '신라 때문에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됐다'는 적개심이 집단 무의식으로 지금까지 내려온 것이죠.

    반면 신라는 중국에 '사대외교'를 하면서 진취적인 정신을 잃어버립니다. 그때 민족의 원형이 바뀌게 된

    거죠."

    ―참신한 착상이지만 글쎄요. 그런데 선생님은 '사대외교'를 부정적으로 보시는군요.

    "물론 사대(事大)는 안보정책입니다만, 그때부터 상무(尙武) 기상을 잃고 동방예의지국이 된 거죠."

    ―이번 책에서 중국에 대한 한국인의 태도가 왜 우호적인지를 분석했더군요. 6·25에 참전해 통일의 기회를 앗아간 원수이지만, 맥아더 장군 동상을 헐어버리자는 운동은 있어도 중국을 비난하는 일은 없다며, 이게 우리의 원형에 남아있는 사대주의 때문이라고 했지요?

    "앞서 말한 '백강전투'에서 모든 게 비롯됐다고 보는 거죠. 이 사대주의를 언제 의식적으로 개혁ㆍ청산한

    적이 없었지요."

    ―당시 사대(事大)를 안 했다면 중국 곁에서 한민족이 살아남았을까요?

    "만약 '백강전투'가 없었고, 신라가 아닌 고구려나 백제가 통일했다면 어떠했을까요? 한민족은 보다

    외향적인 민족이 됐을 겁니다."

    ―한민족의 정체성은 백제·고구려가 멸망한 뒤 신라가 대당(對唐) 전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형성된 겁니다.

    백제·고구려 유민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삼한일통(三韓一統)'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낸 거죠. 그전까지는 삼국 간에 같은 민족의 연대감이 없었다는 게 정설입니다. 신라의 삼국통일이 없었으면 한민족이 없고 지금의 대한민국도 존재할 수 없는 것이지요.

    "백제와 신라는 거의 같은 언어로 살았으니 민족적 정서가 있었을 겁니다."

    ―이번 책에서 한국인은 일본인의 내면세계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고 했는데, 어떤 점을 말하는 겁니까?

    "일본은 화산열도입니다. 지진과 화산 등으로 대참사에 익숙합니다. 그럴 때마다 빨리 피해를 덮고 잊고 새로운 방향으로 갑니다. 지나간 과거는 기억하지 않습니다. '앗사리'한 것인데, 역사의식이 없는 거죠. 그런 일본 입장에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되풀이해서 사과를 요구하는 한국은 이해할 수가 없죠."

    ―하지만 '피해자가 받아들일 때까지 사과해야 한다'고 말하는 일본의 지식인들도 있지 않습니까?

    "인류 역사는 전쟁의 역사입니다. 일본인들은 전쟁은 범죄 행위가 아니며 국가 생존의 수단이라고 믿는데,

    정말 잘못했다고 생각하겠습니까. 그런데도 대일(對日) 외교를 과거사 문제로 일관해왔으니 한국 사람은

    독특하지 않습니까."

    ―과거를 직시하지 않는 일본이 독특한 게 아닌가요?

    "역사를 쉽게 잊는 민족과 쉽게 못 잊는 민족, 피차 상대를 잘못 만난 거죠. 우리는 사람이 죽으면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원점(原點)으로 돌아간 거죠. 원점에서는 늘 다시 시작되죠. 과거사에 대한 되풀이 사과 요구가 그런 거죠. 반면 일본은 사람이 죽으면 떠나간 것이고 그걸로 끝입니다."

    ―그걸로 끝이라면, 왜 신사나 절에서 망자를 위해 추모하고 전범(戰犯) 신사 참배로 우리를 자극합니까?

    "일본인들은 죽은 사람을 '호도께(ほとけ·부처)'라고 부릅니다. 전범도 도둑놈도 죽으면 그걸로 끝이고 호도께가 됩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두고 뭐라고 하면 '부처님한테 참배하는 게 뭐 나쁘냐'고 하죠. 웃기는 만화 같지만."

    ―일본인의 원형에는 '아마에(어리광)' 요소가 있다고 했더군요.

    "강한 사람과 권력에 어리광을 부리는 거죠. 반면 한국은 권력에 대해 어리광이 없어요. 대신 동네방네 '뗑깡(생떼)'을 놓지요. 일본이 스스로 바뀌도록 이끌려면 우리의 국격과 품위를 올려야 합니다."

    ―전후(戰後) 배상 문제와 관련해, 중국은 '보원이은(報怨以恩ㆍ원한을 은혜로 보답)'이라며 일본에 전후배상금 명목으로 한푼도 받지 않았다지요?

    "그렇게 인심은 얻고, 뒷날 일본의 자본과 기술을 도입받는 실리를 취했지요. 중국의 외교술은 우리와 비교가 안 됩니다. 외교에서는 감정을 드러내는 게 아니라 국가 이익을 얻는 겁니다."

    ―선생님은 일본에서 태어나 해방되던 해까지 살았습니다. 무의식 속에 일본을 두둔하는 마음이 있지 않을까요?

    "일본에서는 나를 '반일론자'로 봅니다. 20년 전 일본에서 '추(醜)한 한국인'이라는 책이 나온 적이 있었지요. 이에 맞서 내가 '추한 일본인'을 펴냈습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출처 : 빛과 흑암의 역사 (성경연구, 프리메이슨, 일루미나티)
    글쓴이 : 온유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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