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나눔

야구선수 봉중근

주님의 일꾼 2018. 9. 28. 22:46

폭탄주 마시는 김인식에…봉중근 "제가 던지겠습니다"

 

네티즌들은 그를 ‘봉중근 의사’라고 부릅니다. 이번 월드베이스볼클래식, 즉 WBC에서 일본을 두번이나 제압하자 안중근 의사에 빗대 별명을 지은 겁니다. 전문가들은 봉 선수의 활약을 지켜보면서 그 자신감에 혀를 내두릅니다. 그 자신감은 가족들의 사랑과 종교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고등학생 때 메이저리그의 눈길을 사로잡은 봉 선수지만, 그는 아주 겸손합니다. 그리고 목표를 향해 잡념 없이 정진하는 집념의 사나이기도 하지요. 한마디로 쿨한, 요즘 젊은이인 겁니다. 중앙SUNDAY가 잘 알려지지 않은 봉 선수의 맨얼굴을 소개합니다.

초구는, 영어였다
9일 도쿄돔에서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아시아라운드 1, 2위 결정전. 배트를 곧추세운 채 기다리는 일본의 첫 타자 스즈키 이치로를 마운드 위에서 굽어보던 한국의 선발 봉중근(29·LG)은 뜻밖에도 타임을 신청하고 주심을 불렀다.

“카메라 플래시가 너무 터져 투구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장내방송을 통해 환기시켜 달라.”

한·일 야구의 자존심을 건 일전, 비장함마저 느끼게 하던 도쿄돔의 분위기가 미묘하게 흔들렸다. 낭인의 칼처럼 날카롭게 벼린 이치로의 배트도 순간 물기를 머금었다. 영어로 주고받은 주심과 봉중근의 미소 띤 대화는 이치로와 일본 타선의 리듬과 템포를 빼앗았다.

이날 선발은 원래 류현진(한화)이었다. 그런데 봉중근이 김인식 감독을 찾아갔다.
“제가 던지겠습니다.”

3월 7일 한·일 1차전에서 2-14, 콜드게임으로 진 대표팀은 초상집 같았다. 몸이 불편한 김 감독은 그날 저녁 폭탄주를 마시며 쓰라림을 달랬다. 이런 상황에서 이틀 후 열리는 리턴매치는 누구에게도 부담스러운 경기였다. 봉중근은 김 감독에게 ‘십자가’를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美 언론, “베이브 루스 견줄 타자감
우리가 알다시피 그는, 그리고 한국은 이겼다.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세 번째 대결에서도 봉중근은 마운드에 올랐다. 그리고 또 이겼다. 분석에 능한 일본은 봉중근에 대해 연구했다. 직구와 체인지업을 던지는 왼손 정통파. 그러나 소용없었다. 일본은 봉중근의 공을 치지 못했다. 

적어도 한·일전이라면, 양팀 투수에게는 위기가 따로 없다. 한 타자 한 타자, 일구일구 던질 때마다 다 위기다. 그것이 한·일전의 미학이고 고통스러움이다. 그런데 봉중근은 매 순간 강했다. 언제나 자신이 던지고 싶은 공을 던졌다. 공 하나하나에 기백을 실었다. 그 기백과 자신감이 일본의 데이터를 휴지로 만들었다. 기백과 자신감은 데이터화하기 어렵다.

봉중근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나의 직구를 믿었다”고 대답했다. 그가 믿었던 것은 봉중근 자신이다.

봉중근은 신일고에 다닐 때 타자로 더 주목받은 선수다. 2학년 때인 1997년 캐나다 멍크턴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4경기 연속 홈런을 쳤다. 5할(36타수 18안타) 타율을 기록한 그는 대회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국제청소년대회 MVP의 가치는 상상 이상이다. 메이저리그 드래프트에서 전체 톱 5에 드는 순위다. 97년 전체 드래프트 1위는 릭 엔키엘이었는데 그 역시 멍크턴 청소년대회를 통해 발굴됐다. 엔키엘은 당시로선 거금 250만 달러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했는데, 그 선수를 제치고 봉중근이 대회 MVP에 뽑힌 것이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는 그해 10월 계약금 120만 달러를 주고 한국의 고교 2학년생 봉중근을 스카우트했다.

봉중근이 투수로 변신한 이유는 불분명하다. 애틀랜타의 스카우트 빌 클라크는 지난해 8월 ‘컬럼비아 트리뷴’에 게재한 칼럼에서 봉중근을 회고했다. 클라크는 봉중근이 대타자가 될 것으로 믿었다. 봉중근이 스프링캠프에서 마운드에 오르는 모습을 본 그는 구단의 최고 책임자 빌 스나이더에게 “이 친구는 새로운 베이브 루스다. 스테로이드 없이 60홈런을 칠 수 있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당시 애틀랜타 극동 담당 스카우트였던 제이슨 리(이승준)는 “봉중근이 멍크턴 대회 때 외야수로 나가 캐치볼을 하는데 스피드건에 140㎞ 이상이 찍혀 모두 놀랐다”고 일화를 소개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투수는 귀한 존재다. 구단에서 빠른 공을 던지는 왼손잡이 투수를 기대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봉중근은 2002년 4월 24일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경기에 임시 선발로 등판,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상대는 커트 실링이었고, 봉중근은 6이닝 동안 5점을 내주고 패전투수가 됐다. 동료들이 줄줄이 실책을 했다. 그러나 기자회견장에서 봉중근은 ‘쿨’했다. “아주 즐거웠다. 마이너리그로 돌아가 열심히 할 것이다. 빅리그에서 다시 부르면 언제든지 던질 준비가 돼 있다.”

“몸 아픈 아버지가 저를 기다립니다”
시련이 닥쳤다. 어깨를 다쳐 수술을 한 데 이어 2004년 신시내티로 이적했고, 2006년 트리플A로 내려간 뒤 이듬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메이저리그에서의 선발 경쟁이 쉽지 않았지만 미국 생활 10년을 정리해야 할 상황이 닥쳤다. 2003년 아버지 봉동식씨가 대장암 진단을 받았다. 대장암 수술을 마치자 간에 종양이 생겼고, 투병이 길어졌다. 봉중근은 2006년 구단에 편지를 썼다.

“몸이 아픈 아버지가 저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한국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봉중근이 쓴 한 통의 편지는 그가 한국으로 돌아온 뒤 공개됐고 지역 신문에 보도돼 미국인들의 심금을 울렸다.

누나만 셋, 그리고 막내였던 봉중근의 가족 사랑은 유별나다. 봉중근은 가족의 사랑 속에 성장한 아들이다. 개인택시 기사인 봉동식씨는 차 안에 아들이 공 던지는 사진을 붙여놓고 손님에게 자랑하곤 했다. 봉중근이 메이저리그의 러브콜을 받을 때 누나들이 나서 좋은 구단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스포츠신문 야구기자들에게 전화를 해 이런저런 상의도 했다. 가족은 봉중근의 에이전트였고 서포터였다.

봉중근의 캐리어는 엘리트 코스를 받아온 스타로서 손색없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도 상처투성이다. 한국 복귀 첫 해인 2007년 평균자책점 5점대를 기록하며 쓴맛을 봤다. LG에서 그의 역할이 미미하다고 해 별명은 ‘봉미미’였다. 당연히 ‘뚜껑을 열어 보니 실속없는 메이저리그 출신’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시련이었지만 봉중근은 그다운 방법으로 정면 돌파했다. 

2007년 11월. LG는 호주로 한 달간 마무리 훈련을 떠났다. 명단에 봉중근의 이름이 있었다. 보통 마무리 훈련에는 후보선수 또는 유망한 젊은 선수가 참가한다. 봉중근은 자원했다. 차명석 LG 투수코치의 기억.

“그해 마무리 훈련은 혹독했다. 우리도 체중이 쑥쑥 빠졌으니까. 근데 끝나고 나선 양상문 코치와 내가 봉중근에게 ‘고맙다. 정말 고맙다’며 몇 번이나 손을 잡아줬다. 호주 마무리 훈련을 끝까지 제대로 소화한 건 봉중근이 유일했다.”
주변에서는 봉중근을 바라보는 눈은 다양하다.

“마운드에서 내 모든 것을 던진다
첫째, 자신감 바이러스 보균자.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미국이 역대 최강이라는 평가가 나오자 한국 투수진은 긴장했다. 그러나 봉중근은 “대부분 내가 마이너리그에서 상대해본 애들”이라는 말로 동료 투수들의 자신감을 북돋았다. 자신만만한 봉중근을 바라보며 동료 투수들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감 바이러스에 감염돼버렸다.

둘째, 겸손. LG의 차명석 코치는 “2006년 도미니카에 갔다가 캐러비언 시리즈에서 뛰던 봉중근을 처음 봤다. 그렇게 붙임성 좋고 겸손한 선수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양상문 전 LG 투수코치(롯데 2군 감독)는 “현장 직원과 트레이너 등 고생하는 사람을 배려한다. 뭔가 받으면 반드시 보답하려고 한다”는 말도 했다.

셋째, 스펀지. 양 코치가 지적한 것처럼 봉중근은 ‘스펀지’ 능력, 즉 듣고 보고 남의 충고를 받아들이는 능력이 뛰어나다. 이런 이유 때문에 메이저리그에서 돌아온 수많은 선수 가운데 봉중근이 가장 잘 적응했을 것이다.

봉중근은 온누리 교회(하용조 목사)에 다닌다. 미니홈피의 대문글은 ‘Jesus loves U’다. 신앙은 가족과 함께 그의 야구와 인생을 지탱하는 힘이다. 거기서 자신감과 여유가 우러난다. 그러나 그는 복을 구하기보다는 예수가 말한 대로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묵묵히 인생의 길을 따라가는 신앙을 갖고 있다. 어떤 시련 앞에서도 봉중근은 남 또는 환경에서 이유를 찾아낸 적이 없다.

오래된 속설 중 하나는 성깔 있는 투수, 이기적인 투수가 좋은 성적을 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성 좋기로 소문난 봉중근은 낙제점인가? 그를 잘 아는 동료들은 이에 대해 손사래를 친다. 한 동료가 말했다.

“봉중근은 경기장 안과 밖에서의 모습이 다르다. 특히 선발로 경기에 나가는 날과 그렇지 않은 날의 차이가 크더라. 경기에 나갔을 땐 눈에 불을 켠다. 특히 원하는 피칭이 안 돼 강판되거나 실점하고 돌아왔을 때는 분을 삭이지 못하고 더그아웃을 돌아다니며 씩씩거린다”고 말했다.

봉중근은 이번 WBC 두 경기에서 잘 던졌다. 세 번째 등판하는 경기에서는 얻어맞을 수도 있다. 그래도 그를 바라보는 팬들의 시선은 쉽게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일본 타자들을 제압한 그에게 ‘봉중근 의사’라는 별명을 붙여준 팬들은 단지 봉중근의 투구 내용에 반한 것만은 아니다. 자신의 경기에 집중하며 모든 것을 쏟아붓는 의지와 타오르는 듯한 긍정의 에너지에 매혹된 것이리라.

마운드에 오를 때의 자세를 묻자 봉중근은 대답했다. “마운드에 있는 투수는 그냥 공 던지는 사람이 아니다. 내 등 뒤에 일곱 명의 동료가 있고, 나는 그들과 함께 내 모든 것을 던진다”고.

김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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