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 세계

영의 세계의 실체

주님의 일꾼 2019. 11. 2. 21:47

 

성경은 영적 세계의 존재에 대해 명확히 말한다.

그러나 세상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교회 안에서조차

보이지 않는 세계에 무지한 경우가 많다.

하나님은 오늘도 여전히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공중권세를 잡고 있는

악한 영들과의 전쟁이라고 선포하신다.

 

물론 영적 세계를 알지 못한다 해도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구원받는 것에는 지장 없으나,

이 세계를 제대로 모르면 천국 가는 그날까지

악한 영에게 늘 속아서 낭패당하고

영육 간에 큰 손해를 보게 된다.

 

하지만 영적 세계를 바로 깨달으면

기나긴 신앙 여정에서 시험 들거나 넘어지지 않고

오히려 많은 사람에게 믿음의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살 수 있다.

우리 모두 삶 속에서 진정한 승리를 맛보는

은총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내가 경험한 영적 세계의 실체를

몇 가지 나누려 한다.

박효진 장로 (소망교도소 부소장)

 

 

사탄아 물러가라!

 

아무리 다양한 치료를 해봐도 차도가 없습니다.

손 쓸 수 없는 상태까지 온 것 같은데, 최악의 경우를 염두에 두고

미리 마음준비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의사는 심각한 어조로 치료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선포했다.

 

교정직 공무원으로서 나의 첫 근무지인 부산교도서 초임간부 시절,

어려운 근무 여건으로 만성 과로에 시달린 데다

특히 전국교도관 사격대회의 교도서 대표로 선발되어

연일 무리한 연습을 강행하다보니 피로가 겹쳐 급성 늑막염이 발병했고

급기야 입원까지 하게 되었다.

 

처음엔 대수롭잖게 생각하고 치료 받았으나 날이 갈수록 상태가 나빠지고

나중엔 호흡조차 곤란해지니 생명의 위기마저 느낄 정도였다.

 

하루에 한 번씩 등 뒤로 큰 주삿바늘을 찔러넣어 링거병 가득히

늑막에 고인 물을 뽑아내는 고통을 옆에서 지켜보는 아내는 매일 눈물로 남편의 치유를 간구했다.

 

저렇게 기도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기도는 그저 일종의 자기 위안에 지나지 않을 뿐...

기도한다고 병이 다 나으면 병원들 문 닫고 의사들은 실직자 되겠네.’

 

침대에 누운 채 나는 기도하는 아내의 모습을 시답잖게 바라보며 속으로 비아냥 대기만 했다.

 

박효진 집사!

믿음이 뭔지도 모르고 그냥 아내를 따라다니던 교회에선 일찍이 내게 집사 직분을 주었다.

그러나 당시 나는 하나님이란 그저 두려움에 떠는 인간들이 기댈 언덕으로 만들어 놓은

가공의 절대자이며, 이스라엘 민족종교의 창시자쯤으로 여길 뿐 그 존재를 믿지 않았으니

신앙수준이 불신자와 다를 바 없었다.

 

그래도 눈치는 멀쩡해서 교회 앞 백 미터 앞에서부턴 거룩하게 표정관리 잘하고,

졸다가도 믿습니까?” 하면 자동으로 아멘!” 할 줄 알았으며, “할렐루야!” 인사도 멋들어지게 했다.

그러나 교회 문만 나서면 줄담배를 피우고, ‘폭탄주 제조공장 공장장으로 명성을 날리며,

남의 패가 훤히 보이는 고스톱의 은사(?)를 휘둘러 용돈을 벌어가면서 신나게 살았다.

 

예수는 박 주임같이 저렇게 믿어야 해. 마실 거 다 마시고, 피울 거 다 피우고, 할 짓 다하고...

교회는 저렇게 열린 맘으로 다녀야 하는 거여그 즈음의 나는 소장을 비롯한 간부들과

부하 직원들까지 공인하는 한량으로, 이런 칭찬 아닌 칭찬을 들을 때마다 매우 흐뭇했다.

 

내 눈엔 내가 지극히 정상이고,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은 모두 광신자, 맹신자, 우신자로 보였다.

늘 기도한다면서 징징 울기나 하고, 이 먹을 것 많은 세상에서 툭하면 금식한다며 배를 곯고 다니질

않나, 망해도 감사하고 깨져도 감사하다고 하는 그들이 내겐 인생을 너무 무책임하게 사는

한심한 사람들이었다.

 

정작 나 자신이 한심한 교인이었지만 그래도 아내는 그나마 교회에 나가주는 것만으로 행복해했고,

엉터리 신자인 남편도 언젠간 믿음의 눈을 뜨고 올바른 신앙인이 되리라는 소망으로 기도하며

손꼽아 그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 병세가 날이 가도 차도가 없는 암담한 상황에서 병실에 누워 뒤척이던 어느 날 밤,

숨이 컥컥 막히도록 가슴을 눌러오는 통증으로 몸부림치다가 겨우 앝은 잠에 빠진 때였다.

 

꿈을 꾸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나타나셨다. 옛날 어른답지 않게 키가 훤칠하시고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남자 주인공 클라크 케이블을 닮아 서구적이셨던 그 모습 그대로.

 

할아버지는 내게 한학을 비롯한 인생의 많은 것을 가르쳐주신 스승이자 멘토로 어릴 때부터

내가 가장 신뢰해온 삶의 기둥이셨는데, 꿈속에서 간곡히 당부하셨다.

 

효진아, 네가 왜 교회에 가 있느냐? 너는 우리 집안의 종손이며 가문의 대표가 아니냐?

온 문중과 조상님들이 너를 기다리니 넌 거기 있어선 안 된다!”

 

우리 집은 밀양 박 규정공파 대종갓집.

종가의 고유한 제사가 1년에 13, 명절과 시제. 묘사 등을 합하면 헤아리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제사를 많이 지내던, 유교와 불교가 혼합된 특이한 가문이었다.

 

그 가문의 종손으로 문중을 이어가야 할 나였지만, 결혼 후 예수 믿는 아내에게 이끌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교회를 다닌 지 수년이 지나도록 제사는 물론 문중회의조차 참석하지 않는

나를 보며 집안 어른들은 큰 실망과 함께 가문의 위기마저 느끼던 참이었다.

 

내 마음 한 구석에도 그 문제는 늘 부담스러운 짐이었기에 꿈속 할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하지 못하고

순간적으로 승복하고 말았다.

 

, 할아버지, 알겠심더. 교회는 그냥 아내 따라 다닐 뿐이니까 걱정하실 거 없고요,

곧 정리하고 문중으로 돌아가겠심니더.”

 

그렇게 약속하고 홀연히 잠에서 깨니 방금 실제로 할아버지가 다녀가신 듯 생생했다.

나는 옆에서 자고 있는 아내를 깨워 심각하게 말했다.

 

여보, 방금 꿈에서 할아버지를 만났는데 생시랑 똑같아. 나 아무래도 이제 교회 그만 나가고

종손 위치로 돌아가야 할 것 같네.”

 

아내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울기 시작했다. 믿음이 있건 없건 일단 교회에 출석하는 것만으로

우선 안심했는데, 갑자기 그마저도 관두겠다는 말은 청천벽력이었으리라.

 

둘째 날 밤, 거의 같은 시각.

꿈에서 어제와 동일한 모습으로 나타난 할아버지는 또 신신당부하셨다.

효진아, 속히 문중으로 돌아오너라. 조상님들이 너를 얼마나 기다리시는지 아느냐?”

, 잘 알겠심니더. 틀림없이 가문으로 돌아가겠심니더.”

 

사흘 째, 또 같은 꿈을 꾸었다. 이번엔 할아버지의 손에 붓과 한지가 들려있었다.

효진아, 오늘은 나와 약속하고 수결(手決) 하자꾸나!”

꿈속에서 나는 종이와 붓을 받아들고 그의 요구대로 서명할 준비를 했다.

 

바로 그 순간, 마음속에서 가만있자... 지금 내 앞에 있는 저 분이 진짜 할아버지가 아닐지도 모른다

생각이 얼핏 스쳤다. 그래서 그동안 교회를 오가며 귓전으로 들었던 대로

흉내 내어 나직이 말해보았다.

 

사탄아, 물러가라

그러자 인자하고 중후하던 할아버지의 얼굴이 마치 뜨거운 난로 속에 집어 던져진

양초처럼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게 아닌가! 그 가면 뒤엔 보기에도 섬뜩한 해골 같은 수많은

사악한 존재들이 지렁이처럼 얽혀 꿈틀대고 있었다.

 

사탄아! 물러가라!”

너무도 놀란 내가 한층 더 강한 어조로 명령하자 그들은 캑 하고 단말마의 비병을 지르더니

허공으로 형체도 없이 흩어져버렸다. 화들짝 꿈에서 깨어나는

내 입에서 저절로 할렐루야!”가 외쳐졌다.

 

훗날 생각해보니, 당시 나는 전혀 믿음 없는 맹탕인 줄 알았는데 그래도 짧지 않은 세월 동안

교회에 오간 것을 보시고 주님께서 조금이나마 내신 성적을 인정해주신 것 같다.

아내는 내 이야기를 다 듣고 연신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감사합니다라는 고백으로 밤을 재새웠다.

 

그 이후 내 영혼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거듭나서 믿음의 눈을 뜨기까진

더 많은 시간이 지나야 했지만,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이미 이때부터 은혜의 손길로 나를 꽉 잡고 계셨던 것이다.

 

악한 영들은 오늘도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 우리를 속인다. 꿈으로, 점술사를 통해,

심지어 문화와 예술과 학문의 세계까지 침투하여 할 수만 있다면 택함 받은

백성마저도 넘어뜨리려 한다는 것을 알고 늘 깨어 있어야 한다.

사탄아, 물러가라!”

이 한마디 외침은 영적으로 혼탁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강력한 무기다.

 

규호 아재의 이야기

 

내가 중학생 때, 대구에서 대학교에 다니던 가까운 친척 규호 아재가 낙동강에 빠져 죽은 사고가

일어났다. 장마로 홍수가 지는 바람에 열흘 뒤에야 꽤 먼 곳에 다리난간에 걸린 시체가

간신히 발견되어, 그의 아버지와 우리 아버지가 급히 내려가서 근처에 묻어주었다.

 

그런데 그 사건 이후 아재의 집에 어려움이 끊이질 않았다. 가족들이 중병에 시달리고 가세가

급격히 기울자 답답한 마음에 점을 보면, 번번이 죽은 아들의 원한 때문이라는 점괘가 나오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하는 수 없이 아재의 부모는 전라도에 아주 용한 영매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가서, 90세가 넘어 말이 어눌하고 앞도 잘 못 보는

호호할매 무당을 데려와 한풀이 굿을 했다.

 

무당은 우선 죽은 혼백을 모셔와야 한다며 낙동강 사고현장으로 모두를 데리고 갔다.

그러고는 깨끗한 쌀을 소복이 담은 밥사발을 삼베로 여러 겹 돌돌 싸서 긴 끝을 매달아

아재가 빠져 죽은 그 자리, 깊은 물속에 드리우더니 한참 굿판을 벌인 후 끄집어 올려 풀어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쌀 안에 머리카락 세 올이 박혀 있는 게 아닌가.

말총처럼 삐죽삐죽 서는 규호 아재의 억센 머리카락이 틀림없었다.

 

그것을 싸들고 다시 대구로 와서 굿을 하는데, 드디어 할매 무당에게 신이 내렸다.

몸을 한 차례 부르르 떨고 난 무당의 입에서 걸쭉한 규호 아재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어이 춥다! 아이고 추워라... 나는 추운 땅속에 처박아놓고 느그들은 뜨신 방에서

이불 덥고 자제?(그때가 겨울이었다) 내가 느그들 가만 안 둘끼다!”

 

총각 장례라 별다른 절차 없이 대충 시신을 광목으로 싸서 땅에 파묻은 것을 알고 있는 터라

모두 잘못했다고 손이 닳도록 싹싹 빌어댔다. 그러자 무당의 조수가 돈을 놓고 빌라고 윽박질렀다.

어린 마음에도 나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왜 귀신이 돈이 필요할까?

 

겁에 질린 사람들이 돈을 잔뜩 쌓아놓고 한참 빌고나니 그의 음성이 한층 누그러들었다.

그래 느그들도 사정이 있었겠지... 어매 아배(전라도 무당이 규호 아배가 쓰던

어머니 아버지의 경상도 사투리를 정확히 구사했다), 내가 한강에서 스케이트 타다

빠져 죽은 17살짜리 처자를 알게 됐는데 결혼식을 올려주소.

그라믄 이제 집에 우환이 없을끼요

 

그 말에 혼비백산한 식구들은 부랴부랴 결혼식 준비를 서둘렀다. 비단으로

휘황찬란하게 마당을 꾸미고 인형 두 개를 만들어서 맞절을 시키고 나니 무당이 다시 입을 열었다.

 

어매!”

그래 규호야, ?”

내 이제 결혼도 하고 마음이 풀렸으니 내가 가야 할 곳으로 갈 끼다.

그런데 친구 00한테 돈 오만 원 빌린 것을 못 갚았으니 대신 갚아주소.

그라고 규봉아(그의 동생이었다), 광에 있는 교육학개론 책에 돈 삼만 원 들었으니

너 가져라확인해 보니 모두 그의 말대로였다.

 

아재의 식구들은 아직도 그 충격에 휩싸여서 귀신에게 종노릇하며 산다.

이 신기로운 일을 경험한 그들에겐 귀신숭배가 신앙이 되어버린 것이다.

나 역시 어린 나이에 겪은 이 충격적인 사건으로 죽은 자의 영혼이 귀신이 되어 나타난다는 확신에

사로잡히게 되었고, 더욱이 죽은 조상들이 노하면 우환을 당할지 모른다는

강박관념에 짓눌려 종갓집 종손으로서 더더욱 정성스럽게 수많은 제사를 지내왔었다.

 

그러나 나중에 예수님을 알고 보니 그 모든 것은 악한 영들의 속임수에 지나지 않았다.

그 집안을 대대로 사로잡고 있던 귀신들이 규호 아재의 음성을 흉내 내

영적 세계에 눈먼 사람들을 속여먹는 가증한 쇼일 뿐이었다.

 

성경말씀에 따르면 죽은 자의 영혼은 결코 귀신이 될 수 없다.

귀신이란 하나님을 대적하여 추방된 타락한 천사들일 뿐! 사람은 죽는 순간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믿음 여부에 따라 그 영혼이 천국과 지옥으로 들어가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 땅의 심판주로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마음대로

이 땅에 넘나들 수 없는 것이 창조주 하나님께서 정해두신 엄정한 법칙임을

확실히 깨닫게 된 또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제사의 실체

 

내가 성령님의 손길에 붙잡혀 한 순간에 삶의 모든 것이 어두운 죄악 길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돌아선 후에도, 유독 제사 문제는

여전히 마음 깊은 곳에 눈엣가시처럼 박혀 있었다.

 

조상을 섬기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가장 중요한 도리라는 신념으로 일 년에

수십 번씩 제사를 지내며 살아온 내게 제사는 신앙과 같은 것이었기에

쉽사리 떨쳐내기가 쉽지 않았다. 왜 기독교는 효행의 기본이 되는 제사를

굳이 우상숭배로 규정짓는지 선뜻 이해하기 힘들었다.

 

아내를 따라 교회를 다니고부터는 웬일인지 제사에 참여하기 싫은 마음이 들어

이런저런 핑계로 제사 자리에 빠지긴 했지만, 어쨌든 이 문제가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자

슬금슬금 영적으로 침체되기 시작했다. 기도의 문이 막히고 넘치던 기쁨과 찬양이 식어갔다.

 

이스라엘에도 우리나라처럼 족보가 있잖은가. 족보라는 것은 조상의 연대기인데,

그들이 조상을 기억하고 기리는 것이나 우리가 제사라는 형식으로 조상을

섬기는 것이 뭐가 다른가?’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이 영적 갈등이 깊어만 가던 어느 날,

하나님은 평생 잊지 못할 분명한 해답을 눈앞에 생생히 펼쳐 보여주셨다. 할렐루야!

 

거듭난 19871월 하순, 청송감호소에 근무하던 나는 믿음의 동역자인

이 집사님과 밤늦도록 기도하다가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새벽 1시경.

인적 끊기 도로를 나란히 걸어서 옹기도마(항아리 등 값싼 도자기류를 만들어 파는 동네)

앞을 지나치는데 난생처음 맡아보는 역겨운 냄새가 진동했다. 구토가 치밀만큼 심한 악취에

우리 둘은 눈살을 찌푸리며 서로 마주 보았다. 기도의 짝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나는 이것이 단순한 물리적 냄새가 아니라 영적 기운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분명 옹기도마 안에서 뭔가 심상찮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집사님, 한 번 들어가 볼까요?”

, 그랍시더!”

 

동네 안으로 깊숙이 들어갈수록 악취는 더욱 고약하게 풍겨왔다.

냄새를 따라 골목길을 돌아드니 훤하게 불을 밝힌 집이 눈에 띄었다.

활짝 열린 대문 안에 전등불과 촛불을 대낮같이 켜놓고 대청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로 보아 틀림없이 제사 지내는 집이었다.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동역자의 옷자락을 대문 쪽으로 끌어당겼다.

 

좀 더 가까이 가보입시더.”

집안사람들은 빨랫줄을 풀어 마당에 내려놓고(귀신이 들어오다가 걸리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는데, 얼마나 우스운가. 빨랫줄에 걸려 나동그라지는 귀신들이 뭐 그리 무섭다고!)

제상 앞에서 절을 하고 있었다. 상 위엔 갖가지 제물이 차려져 있고,

한가운데는 오늘 제사 주인공 부부의 영정사진이 놓여 있었다.

 

대충 집안의 상황을 둘러보다가 나는 믿기 힘든 광경에 호흡이 멎는 듯 했다.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세계가 눈앞에 환히 열려 있는 게 아닌가!

 

무수한 검은 형체들이 제상 위아래는 물론, 온 허공에 우주유영을 하듯 날아다니고 있었다.

징그럽도록 흉측한 여러 짐승의 모양으로 꺼멓게 번질대는 그들은 올챙이 떼처럼

모였다 흩어지기를 거듭했다. 흔히들 말하는 영안이 열렸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어

가슴이 쿵쿵 뛰었다.

 

그들은 영적 존재라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니 수백, 수천씩 몰려다니면서

제상을 순식간에 뚫어 통과하기도 하고, 엎드려 절하는 사람들의 몸속에까지 마음대로 들락거렸다.

입속으로 와르르 들어가서 온몸을 휘젓다가 옆구리로 튀어나오질 않나.

제상 위에서 춤을 추듯 차려놓은 음식물을 짓밟아대며 광란의 발악을 하는 기괴한 모습에

나는 메스껍고 어지러워 대문 기둥을 붙들고 겨우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집사님, 저거... 다 보입니까?”

동역자가 내 손을 꽉 잡으며 물었다.

보이고말고요. 이 집사님도 보입니까?”

하나님은 이 놀라운 실상을 더욱 명확히 믿을 수 있도록

내 믿음의 동료에게도 똑같이 영안을 열어주신 것이다.

 

그러나 정작 내가 놀란 것은, 아무리 눈을 비비고 살펴보아도 오늘 제사의 주인공인

두 사람의 영이 보이지 않는다는 거였다. 징그러운 귀신들만 헤아릴 수 없이 북적댈 뿐,

정작 제사를 받는 사람의 영혼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때 내 안에 거하시는 성령께서 선명한 깨달음을 주셨다.

 

지금 네가 보는 것이 바로 사탄의 실체이며 귀신의 실상이다.

죽음으로 영계에 들어간 영이 제삿날이라고 외출증을 끊어 찾아온다는 것은 망상일 뿐!

제삿날에 후손들이 차려놓은 제사상엔 지금 네 눈에 보이는 저 더러운 귀신들이 조상을 가장하여

찾아와 무지한 인간의 영혼과 육신을 더럽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 외에 모든 제사는 귀신들의 놀이터요

사탄의 장난질임을 알라!’ 짧은 시간에 내 마음이 명쾌하게 정리되었다.

 

나는 성령님의 놀라운 교훈에 식은땀을 흘리며 전율했다.

그랬구나! 그동안 수많은 제사를 지낼 때마다 나와 우리 가족이 가증한 귀신들에게

저토록 처참하게 유린당했었구나... 분노로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다 보면 자주 듣는 이야기가 있다.

천주교는 제사를 지내도 괜찮다는데 왜 기독교에서만 기를 쓰고 안 된다는지 모르겠어요.

제사만 지낼 수 있다면 당장이라도 교회에 갈 텐데.” 바꾸어 말하면 사악한 귀신들이 제사라는

걸림돌을 교회 문 앞에 두어 사람들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옹기도마 제삿집에서 목격한 사실을 바탕으로 이 문제에 대해 분명한 답을 얻었다.

 

성경이 밝히 말씀하시듯 거짓과 기만의 천재인 귀신들은 우리 민족의 지극한 충효사상을 이용해

하나의 계략을 만들었다. ‘제사 지내는 자리에 조상의 혼백이 오신다는 거짓 의식을 심어놓고

결국 귀신에게 절하는 사람들을 지옥의 동반자로 사로잡아 가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무속인과 접신하여 나타나는 귀신들은 어김없이 조상이나 가족을 빙자한다.

영물인 그것들은 한 가정과 가문에 뿌리박고 오랜 세월 지켜봐 오면서,

그 집안의 세부사항이나 인간의과거사를 그야말로 귀신같이

알아맞혀 사람을 꼼짝달싹 못하게 옭아맨다.

 

그에 반해 서양의 영매들이 접하는 귀신은 대부분 일찍 죽은 친구나 형제자매를 앞세운다.

그들의 의식세계에선 조상숭배심보다 친하게 지냈던 사람과의 우정이 더 각별하기 때문이다.

또 중국에는 조상이나 친구 대신 장군신이 주로 나타난다.

중국인들은 대륙 기질에 기초한 장군숭배 사상이 특심하여 곳곳마다

장군들의 사당을 지어놓고 섬기기에 귀신들이 그것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처럼 간교한 영들은 개인, 나라, 민족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뚫고 들어와 갈고리를 꿴다.

우리의 효 사상은 미덕 중의 미덕이나 귀신들이 이를 교묘히 악용하여 수많은 사람을

멸망시킨다는 사실을 분명히 안 이상, 나는 가는 곳마다 내가 듣고 본 것을 소

리 높여 전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엄청난 비밀을 밝히 깨닫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린다.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고린도전서 10:20)

 

기도의 황금줄 feat 중보기도의 능력

 

옹기도마 사건이 있은 지 몇 달 뒤 어느 쾌청한 주일 오후 1시경.

작은 도시 청송군 진보면.

예배를 마친 후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나는 또 한 번 기이한 일을 경험했다.

그 화창한 대낮에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운전 중인 내 눈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대로를 달려가던 중이어서 사고위험을 직감하고 반사적으로 브레이크를 잡아 길 한가운데 급정거했다.

 

암흑 같은 순간은 단 몇 초 만에 끝나고 다시 시야가 회복되자마자

나는 기막힌 광경에 온몸이 얼어붙는 듯했다.

 

제사 환상에서 본 악한 영들이 이번에도 그때와 같은 모습으로 온 시가지에 가득한 게 아닌가.

혼란한 마음을 추스르는 내 눈에 저만치 앞에서 걸어가는 세 아이들과,

공중을 휘젓던 수많은 악령이 그들을 향해 여러 방향으로 공격하는 모습이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런데 오른쪽 두 아이는 무방비 상태로 당했지만, 놀랍게도 제일 왼쪽에서 걷는 한 아이는

그 많은 무리가 덤벼들어도 전혀 뚫고 들어가지 못했다. 대낮의 도로 한 중앙, 오토바이 위에서

나는 넋을 잃고 더 유심히 그 아이를 지켜보았다.


황금빛!

그렇다. 완벽한 황금빛이었다. 눈부신 광선들이 실타래같이 얽혀 무서운 속도로 회전하면서

그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누에고치처럼 감싸는 게 아닌가? 새까만 악한 것들이 떼를 지어

이 아이를 공격하다가 엄청난 속도로 돌아가는 황금빛 회전체에 걸려드는 순간,

고속으로 돌아가는 믹서에 형체도 없이 부서지는 과일들처럼 산산조각 나버렸다.

 

... 주님, 이게 뭡니까?”

나는 오토바이 위에서 전율하며 속으로 외쳤다. 그 순간 눈앞엔 또 다른 환상이 펼쳐졌다.

그 아이를 위해 많은 사람이 기도하는 장면이었다. 이곳저곳에서 그를 위해 중보하는

간절한 기도들이 동아줄처럼 엮여 하늘의 영광스런 보좌 앞에 향연처럼 열납되고,

그 응답으로 황금빛 광선 같은 능력이 아이를 악한 권세들로부터 지킨다는 사실이 깨달아졌다.

 

! 중보기도의 비밀이 바로 이런 것이었군요.”

늘 듣던 기도의 필요성과 응답의 실체를 생생히 본 내 눈엔 감격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바로 그 순간 다시 한 번 앞에 캄캄해지다가 이내 눈이 밝아지고 언제 그랬냐는 듯 평범한

도시의 모습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불과 몇십 초에 지나지 않았으나 몇 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던 신비로운 체험은 끝났다.

 

나는 오토바이의 속도를 높여서 앞으로 달려 멈춘 뒤 몸을 돌이키고,

나를 향해 걸어오는 아이들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기도의 능력으로 그토록 멋지게 보호받던 아이의 얼굴이 궁금했다.

 

그런데 그의 걸음걸이를 보니 신체장애가 있는 것 같았다. 힘든 몸짓과 가쁜 호흡으로 얼굴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있어 안쓰러운 모습이었다. 그러나 표정은 얼마나 평온하던지!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행복에 겨운 광채가 났다.

 

눈물 어린 중보기도가 이뤄내는 놀라운 응답의 증거를 온몸에 담고 다가오는

그 아이를 힘껏 안아주고 싶었으나, 무심코 나를 지나쳐 걷는 뒷모습을

마음에 소중하게 담으며 기도했다.

 

주님! 한평생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며 살겠심더. 잠시잠깐의 한마디 기도라도

그의 삶을 보호의 황금 줄로 에워싸는 기적을 이룬다는 것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날따라 씽씽 달려가는 오토바이 위에서 바라본 하늘은 눈부시게 푸르렀고,

귓전을 스치는 바람은 더없이 상쾌했다.

    

박효진 장로 (소망교도소 부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