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나눔

다윗의 시, 시편 23편(퍼온 글)

주님의 일꾼 2009. 2. 17. 09:00

독일에서 내가 다니던 대학에 한 노교수님이 계셨다.

중후하게 연세드신 라틴어 교수님, 그 교수님께서 구사하시는 언어가

10개는 족히 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익히 들어 알고 있었던 교수님의 어학실력이었지만 그 분이 유창한

히브리어까지 구사하신다는 사실에는 신학을 전공하는 나조차도 놀라

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느 날 교수님과 대화를 나누게 된 기회에 갑자기 생각이 나서 여쭈

어보았다. 교수님께서는 어떻게 히브리어까지 하시게 되었냐고. 나의

질문에 교수님께서는 40년 전 교수님께서 아직 이 대학의 학생이셨던

시절의 그 기숙사 그 때의 한 친구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40년 전 세계대전 당시, 그 어두운 나라 죽음의 전쟁터 한가운데 계

셨던 하나님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교수님께는 기숙사에서 같은 방을 쓰는 친구가 하나 있었다. 처음에

는 몰랐던 사실이었지만, 그 친구는 유대인이었다. 아니, 사실은 유

대인이라 할 수도 없었다. 친구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유대인이었

던 것뿐이었지만 나치는 그렇게 멀리 섞인 피 한 방울일지라도 용서

하지 않았다. 나치가 독일을 장악하기 전부터 그 둘은 사이좋은 친구

였다. 같은 방을 쓰면서 늘 같이 먹고, 같이 다니고, 물론 공부도 늘

같이 했는데 그 친구에게는 이상한 버릇이 하나 있었다. 공부를 시작

하고 두어 시간 지나칠 때쯤 해선, 늘 무슨 이상한 시 같은 것을 소

리 높여 외는 것이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히브리어로 외는 그 시를 알아들을 턱이 없었던 교수님은 마치 음악

같이 리듬을 타는 그 시가 무척 신기했다. 친구에게 물어보니 그것이

바로 구약성경에 있는 유명한 다윗의 시, 시편 23편이라 했다. 히브

리어로 외는 것인데, 자기는 그것을 외고 나면 마음이 상쾌해져 공부

가 더 잘된다고도 했다. 그래서 그 날부터 교수님도 친구에게 배워서

그걸 같이 외우기 시작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처음 듣는 히브리어가 좀 낯설었지만 리듬이 아름다워 금방 익숙해졌

다. 그렇게 1년, 2년을 함께 보내는 동안 사이좋은 두 친구는 공부하

다 지겨워질 때쯤 해선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시편 23편을 히브리어

로 소리 높여 외쳐댔다.

불행은 갑자기 다가왔다. 나치의 핍박이 심해지면서 학교를 그만두고

은신처에 숨어 있던 친구에게서, 어느 날 급한 연락이 왔다.

지금 나치 비밀경찰들이 들이닥쳤다고, 가스실로 끌려가게 될 것 같

다고... 교수님은 급히 자전거의 페달을 밟았지만, 이미 때는 너무

늦었다. 인사 한마디 나눌 틈도 없었다. 친구와 그 가족들을 무슨 소

돼지처럼 밀어 넣은 나치의 트럭은, 벌써 그들을 어디론가 실어가고

있었다. 교수님은 미친 듯이 페달을 밟았다. 친구의 마지막 얼굴이라

도 보려고... 눈물이 범벅이 되어 따라가고 있는데, 갑자기 트럭 옆

으로 친 포장을 들치고 친구가 고개를 내밀었다. 눈물에 가려 잘 보

이지 않는 친구의 얼굴은, 뜻밖에도 싱긋이 웃는 얼굴이었다.

그때 친구가 갑자기 소리 높여 무언가를 외치기 시작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아, 죽음의 가스실로 끌려가는 친구가 미소지으며 외고 있는 것은,

바로 시편 23편이었다. 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던 그 시절, 아무 걱정

없던 그때와 같은 평온한 얼굴 미소 띤 모습으로, 친구는 시편을 외

고 있었다. 온갖 기억들과 알 수 없는 감동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

다. 교수님은 자기도 모르게 같이 따라 외우면서 자전거 페달을 힘

껏, 더 힘껏 밟았다.

그것이 친구의 얼굴을 본 마지막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전쟁의 패

색은 짙어갔고 나치는 최후의 발악을 하기 시작했다. 교수님도 군대

에 끌려가는 것을 피할 수 없었고 결국, 러시아에서 포로로 잡혀 다

른 전쟁포로들과 같이 총살을 당하게 되었다.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죽음의 대열에 끼여 걸으면서, 젊은 포로들은 공포에 울부짖었다. 오

만가지 생각이 교차하는 가운데, 교수님의 머릿속에 갑자기 가스실로

끌려가던 친구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래... 죽음의 길을 웃으며 떠난 그 친구처럼 나도 담담하게 죽음

을 맞이하지...'

동료들이 하나둘씩 총알에 쓰러지고 드디어 교수님의 차례가 와서 자

리에 섰을 때, 교수님은 총을 겨눈 군인에게 마지막 할 말이 있다고

했다. 허락을 받고 교수님은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사랑하는

친구가 죽음의 길을 떠나며 외던 시편 23편을 조용히 외기 시작했다.

연합군의 러시아 장교가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목

소리를 높여, 같이 시편 23편을 외기 시작했다. 그것도 히브리어

로... 유대인 연합군 장교의 눈에서도 교수님의 눈에서도 뜨겁고 가

슴찡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