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나눔

하나님의 음성에 반응

주님의 일꾼 2009. 4. 21. 08:52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역사를 나타내실 때, 합당한 반응을 하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초자연적인 역사를 나타내실 때, 그것에 대한 경험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 경험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하는가의 여부가 더 중요하다.

목자들과 같이 서둘러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여 믿음의 발걸음을 걸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역사를 통해 자신을 나타내시고 말씀하셨을 때, 거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에 합당한 반응을 하길 원하신다.



‘목자’들이 첫 번째 ‘복음전도자’ 였다.

진정한 목자란?


목자들은 천사들로부터 ‘베들레헴에 구세주가 나셨다.’는 복음을 듣고, 그대로 전했다.

하나님께서 목자들을 사용하여서 이 땅에서 첫 번째 복음전도 사역을 시작 하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복음전도자’와 ‘목사’의 사역을 서로 다른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목사는 복음 전도사역과 같이 간다.

두 사역 모두 그 핵심에 목자의 심령이 있어야 한다.

‘목사’라는 직업은 타이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능에 달려있다.

본문에서 나온 목자들은 양들 곁에 머물렀던 진정한 목자들이었다.

진정한 목자는 양들과 함께 지낸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진정한 목자가 되시는 예수님께서도 자원함과 겸손의 모습으로 이곳에 오셨다.

우리의 선한 목자이신 것이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섬기러 오셨다고 하셨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려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예수님은 이 세상을 향한 가장 큰 선물이다.



우리 모두는 복음전도자가 되어야 한다.


복음은 목자들에게 가장 먼저 전해졌다.

복음 전도자는 그 안에 영혼을 향한 긍휼함이 있어야 한다.

목사님뿐 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는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야 한다.

우리 모두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간증을 나누어야 하는 것이다.

모두가 예수님과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그 경험을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복음은 강력하고, 초자연적인 것이다.

기적을 행하신 것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하신 일이다.

우리가 복음을 들었을 때 그것을 듣고 놀라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체험하고 주님을 따라가는 것이 되어야 한다.



모든 말을 마음에 지키어 생각한 마리아의 반응


마리아는 모든 사람과 동일하게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죄 성’이 있는 사람이었지만, 예수님의 어머니로써 ‘성육신’ 한 것을 경험하는 엄청난 특권을 누렸다.

천사들을 통해 구세주의 탄생을 알게 된 목자들은 이 기쁜 소식을 전하고 흥분되어 있었지만, 아기의 어머니인 마리아의 입장은 목자들과 달랐다.

이 아기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는 모든 말을 마음에 깊이 지켰다.

마리아에게 이러한 초자연적인 경험이 있었다 할지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결정과 갈등의 순간 또한 있었을 것이다.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순간에도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 아래 신실한 제자로 남아 있었다.



예수님을 따라야겠다는 것에 늦는 시간이란 없다!


예수님을 따라가야겠다는 것에 ‘늦는 시간’이란 없다.

결단 하는 그 순간부터 따라가는 것이다.

예수님의 형제들과 사도바울은 예수님이 이 땅에 사역하실 때에는 믿지도, 따르지도 않았다.

그들은 훗날 이것에 대하여 얼마나 후회 하였을까?



하나님을 경험하였는가? 전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어야 한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경험한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보고 들은 것으로부터 말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증인은 자기가 경험이 있는 사람이다.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의 복음 전파를 막아도, 사도들은 보고 들은 것을 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에게 경험을 주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랑을 보여주셨는지, 경험을 나누는 증인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예수님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보고 들었으면 그것을 얘기 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마음의 할례


이스라엘 백성들은 8일째 되는 날 할례를 행했다.

성경에서 숫자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데, 숫자 ‘8’이 의미하는 바는 새로운 시작이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기에 좋았다’라고 하셨다.

그러나 사람이 죄를 지음으로 이 땅은 타락했고, 인간은 죄로 인해 더럽혀 졌다.

‘할례’는 우리의 육을 잘라내는 것을 뜻한다.

성별, 즉 깨끗함을 나타낸다.

우리는 새 언약 가운데 있기 때문에 기독교인 모두가 할례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성경에서 할례가 의미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에 육 적인 생각이 완전히 잘라져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죄 된 본성을 잘라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을 경험하는 것만이 그렇게 될 수 있다.



자신에게 있어 가장 최상의, 최선의 것을 드리자.


하나님께 드릴 것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그러므로 주님께 드릴 때는 내가 가진 최상의 것을 드려야 한다.

하나님 앞에 쏟아 부을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최상의 것을 드려야 한다.

하나님 앞에 무엇인가를 숨기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

그러나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부끄러워 말아야 한다.

단지 우리에게 있어 최선의 것을 드리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손에 주신 것.

그것을 드리자.

절대로 부끄러워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