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 세계

방언과 방언통변

주님의 일꾼 2013. 5. 22. 12:19

오늘날 성령은사를 멸시하고 조롱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성령은사가 기독교인의 기본임을 인식하고 성령체험을 원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해야 성령을 받는 것이지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하여 성령체험 사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필자가 방언을 받은 경험은 <성령과 은사>방에 '방언기도를 하다'에 소개하였지만 다른 사람들의 사례도 소개하면 성령은사를 사모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지금부터 소개하는 방언을 받은 사례는 <방언으로 열리는 성령의 은사>(김요한)에서 발췌하였습니다. 

 

방언의 소중함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청년이 되고 신학을 공부했어도 방언을 받아야겠다는 사모함이 없었습니다. 

제가 신학을 공부할 때 신학교에서 방언에 대한 가르침을 받지 못한 이유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이 개척교회를 하실 때 강조하시는 것이 성령세례로부터 임하는 방언이었습니다. 

신학교 졸업 후 잠시 동안 부모님이 목회하는 곳에서 전도사로 사역을 하였는데, 바로 이 개인적 은사인 방언이 나에게는 심적인 눌림이었습니다. 

교회 성도들은 모두가 방언으로 기도하는데 전도사로 사역하면서도 방언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죠 

 

지금도 방언을 받지 못하는 분들은 말씀에 대한 편향적으로 맞추어 적용시키려고 합니다. 

저 또한 그랬습니다 

신학교에서 성령세례나 방언은 초대교회 그 당시에 있었던 단회적인 사건을 말한 것이고, 오늘날에는 굳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스스로 위안을 삼았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습니다. 

교회 청년들이나 집사님들이 방언으로 기도하며 확신을 가지고 신앙생할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 한 구석에서는 목회의 길을 걸어가고 있으면서 평신도들도 하고 있는 방언조차 받지 못한 채 어떻게 그들을 리드해 나갈 수 있겠는가, 성령의 역사에 대해서 어떻게 말해 줄 수 있겠는가? 근심이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성도들이 볼 때에는 방언을 하지 못할지라도 말씀만 가지고도 은혜로운 척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마음 한 구석에서는 어떻게 하든지 방언을 받아야겠다는 의식이 점점 강해졌습니다. 

당시에는 여름방학기간에는 전 교인이 여름산상집회를 갔었습니다. 

청년들이나 직장생활을 하는 분들은 여름산상집회에 맞추어서 휴가를 냈습니다. 

그리고 둥글게 앉아 성령충만을 사모하며 뜨겁게 기도했습니다. 

밤새도록 찬양을 부르다가 배가 출출해질 때 끓여 먹던 컵라면은 은혜를 더해주는 별미였습니다. 

 

한번은 낭떠러지가 있는 바위 위에서 열댓명이 기도하다가 모두가 피곤해 그 자리에서 잠시 눈을 붙였는데 모두가 깊이 잠이 들었습니다. 

나도 피곤이 몰려 왔지만 차마 잠들 수가 없었습니다 

혹시라도 낭떠러지로 떨어질까 염려가 되어 깨어 있었습니다. 

성령충만을 사모하며 함께 손잡고 기도했던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이었지만 이때도 방언은사는 받지 못했습니다. 

 

 

방언을 못하는 눌림과 심적부담 

 

청년회를 이끌고 있는 전도사가 방언을 하지 못하는 것은 계속해서 눌림이었습니다. 

방언에 대한 아픔과 심적 부담은 점점 커져갔습니다. 

마침내 어느해 겨울, 나는 단호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방언을 받지 못하면 안되겠다는 결심을 하고 추운 겨울, 강원도 철원에 있는 기도원으로 올라갔습니다. 

 

그 기도원은 대한민국 최초의 기도원으로 기도원 중앙으로 한탄강이 흐르는 곳이었습니다. 

강 위에는 기암절벽의 바위가 많은데 바로 그곳이 좋은 기도 장소가 되었습니다. 

1000명이나 수용하는 성전도 있었고 중요한 집회기간에는 은혜를 받으러 전국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오지만 한 겨울에 가보니 성전에는 아무도 없고 썰렁하기만 했습니다. 

 

나는 성전 중앙에 자리 잡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주님, 저는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해왔어요 

그리고 이제 목회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저에게 성령의 기름을 부어주세요... 

방언의 은사를 주세요" 

 

간절히 사모하며 매달리기 시작했습니다. 

30분이 지나고 한 시간이 지났습니다 

예전에 방언은사를 위해 기도했으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여전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벌써 3년 동안 이런 일을 반복하고 있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얼마나 몸부림치고 기도했는지 더워져서 두꺼운 잠바를 벗었습니다. 

더욱 간절히 기도하다 보니 몸이 뜨거워져서 옷을 하나씩 더 벗어가며 기도에 몰두하였습니다. 

 

 

드디어 방언을 받다 

 

그렇게 기도하기를 두시간쯤 지났을까 

어느 순간, 내 입에서 다른 언어가 터져 나왔습니다. 

내 이성은 우리말로 기도하고 있었지만 다른 언어가 내 입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 아, 나도 드디어 방언을 받았구나!" 

마음에서 확신과 기쁨이 몰려왔고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어렵게 받은 하늘의 언어를 확실히 붙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더욱 뜨겁게 기도했습니다. 

 

어떤 분이 방언을 받았을 때 우리말을 하려고 했으나 전혀 나오지 않았다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방언을 하는 중에 '정말 그럴까' 궁금하여 확인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방언을 그치고 조심스럽게 우리말로 기도하려고 해 보았는데, 어쩐일인지 내 혀가 내 의도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신기하게도 내 의지와 관계없이 혀가 계속해서 새로운 언어를 계속 토해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아무도 없는 성전에서 성령이 내게 주시는 새 영을 마음껏 토로했습니다. 

 

기도가 끝난 후 기쁨이 충만함을 느끼면서 성전 문을 나섰는데 놀랍고도 신비한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모든 만물들이 새롭게 보였는데 

그 만물들이 마치 나에게 축하를 해주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산과 나무, 심지어 바위와 건물들까지 모두 축하인사를 해주었습니다. 

너무나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광경을 목격하면서 천국이 이와 같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중생(거듭남)이란 경험은 그동안 보지 못하고 알지 못했던 영의 세계를 믿음안에서 실제 보고 소유하는 것이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설교에 기름부음이 넘치다 

 

방언체험을 한 후부터 방언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열심히 방언으로 기도했습니다. 

1년 정도는 거의 영적인 기도에 힘썼던 것 같습니다. 

주일 예배를 마친 후에는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산에 올라가서 기도에 집중했습니다. 

수요저녁예배 인도를 위해 하산하여 말씀을 전하고 다시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말씀과 기도에만 전념하던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예배를 드릴 때에 성령의 기름부음이 넘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기도원에서 말씀을 전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말씀을 전했는데 예배후 만나는 사람들마다 은혜를 받았다는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인사치레로 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정도 눈치는 있습니다 

기도원측에서도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설교를 맡겨 주기까지 하였습니다. 

일개 전도사가 많은 목사님들과 성도들 앞에서 설교를 했는데 성도들이 은혜받는 것을 보고 설교를 계속 부탁하는 것이었습니다.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였을 때 성령의 기름부음이 넘쳤습니다. 

영의 기도가 목회자의 자원인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방언 통변은사를 받다 

 

방언을 힘들게 받아서인지 방언기도를 소중하게 여기며 열심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방언기도를 하지만 기도내용이 무엇인지 몰라서 답답할 때도 있었습니다. 

1년 정도 지난 어느날, 우연히 다른 사람의 방언기도를 듣게 되었는데 그 뜻이 내 귀에 우리말로 해석되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순간적으로 신기하면서도 매우 놀랬습니다 

이것이 통변의 은사인가 하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그래서 다시 다른사람들의 방언기도를 들어 보았는데, 마찬가지로 기도 내용이 해석되어졌습니다. 

 

"방언통변 은사를 받았구나" 

 

은사를 사모하기는 했지만 구체적으로 통변은사를 구하지 않았는데 방언 통변 은사가 임한 것이었습니다. 

전에 목회자 집회에 참석했을 때 강사가 통변에 대한 은사를 소개하여 '통변의 은사가 있는가 보구나' 정도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통변의 은사를 받아야 하겠다는 사모함을 갖고 기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방언 통변 은사를 받고 신기하여 어느 날 국민일보에 방언을 통변해 주겠다는 광고를 냈습니다. 

당시만 해도 국민일보는 주로 목회자들이 많이 구독해서인지 평신도보다는 목회자들이 더 관심을 갖고 전화를 주셨습니다 

그렇게 한 동안 방언을 통변해 주면서 감사하기도 했지만 전화가 밤낮으로 너무 많이 오는 바람에 그 일은 3개월만에 그만두었습니다. 

 

신령한 은사에 대한 호기심으로, 자기 방언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전화를 주신 분들이 대부분이지만 개중에는 은사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의심으로 전화하신 분들도 있었습니다 

성령의 은사는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잘 받습니다. 

성령의 은사를 의심과 부정적으로 취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은사 부흥집회에 말씀을 전하러 가면 대부분 방언의 은사를 받습니다 

그러나 유독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집회에 참석을 했지만 

아직 믿음이 없거나 

강사가 시키는대로 순수하게 따라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방언은 입을 통하여 열리는 은사이기 때문에 통성기도를 시키면 입을 열어서 크게 기도를 해야 하는데 입을 다물고 기도하거나 사모함이 없이 입만 따라하는 사람들은 방언을 받지 못합니다. 

초대교회 120명의 성도는 모두가 방언을 말했습니다 

  

방언기도의 유익은 오래 기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5분,10분만 기도하면 더이상 기도할 것이 없는 경우가 보통이지만 방언기도는 어떤 기도의 내용을 품고 입으로는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랜시간 기도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단순작업할 때나 장시간 운전중에 방언기도를 한시간 이상 기도해도 전혀 기도가 힘들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렇게 장시간 방언으로 기도한 후에는 영적인 능력이 충만해지고 영적인 문제들이 잘 풀려나가는 것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방언기도의 내용은 알지 못하지만 성령께서 내 입을 통하여 대언의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은밀한 죄를 고백하거나 남이 듣기 거북한 기도제목을 놓고 기도할 때 방언으로 기도하면 유익합니다. 

또한 방언기도는 중보기도를 하는데 유익합니다. 

다른 사람을 마음에 품고 기도할 때 성령께서 그 사람의 상황에 맞는 기도를 하게 하십니다. 

방언기도의 초기에는 단음적인 소리를 반복하는데 지속적으로 방언을 하면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고 단순한 심령이 되어지는 것을 스스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성령의 은사로 방언을 가장 많이 나타나게 하시는가 

그 이유도 순수하게 기도에 전념하게 하면서 영적인 유익을 주시는 목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방언기도는 유익합니다. 

회개와 사모함,간절함,끈질기게 기도하면 하나님이 이 유익한 방언은사를 반드시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