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나눔

[스크랩] `빌라도의 보고서`

주님의 일꾼 2014. 10. 30. 10:50
 

 † 빌라도의 보고서에 대하여

 

   이 빌라도 보고서는 "메시아" 시대(時代)에 법정에서 만들어진 공문서로서, 현재 터키의 "성(聖) 소피아" 사원에 소장되어 있다.

50권으로 되어 있는 이 원고는 서기관(書記官)의 손으로 씌어졌는데, 각 권이 2×4피트(60㎝×120㎝)로 되어 있는 것의 전문을 옮긴 것이다. 로마의 사가(史家) "발레루스·파테르쿠러스"의 주(註)에 의한 원제목은 "예수의 체포와 심문 및 처형에 관하여 가이사에게 보낸 빌라도의 보고서(報告書)"로 되어있다.


예수가 태어났을 때 그는 19세(歲)였으며, 그의 작품(作品)은 모두 소멸(消滅)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사가(史家) "프리시안"과 "타시투스"의 글을 빌면, 그는 "캄파니아" 출신으로 가이사와는 친(親)한 벗이었고 16년 동안 로마 군대(軍隊)를 지휘(指揮)하였으며, 그 후 로마로 돌아가 "로마史" 집필을 끝낸 후 집정관(執政官)의 직책(職責)에 오랫동안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발레루스" 자신이 유대 지방에서 만난 "나사렛" 예수는  그가 만난 인물(人物) 중 가장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로서, 자신은 전 군대보다도 예수를 더 두려워했다고 기록하였다. 예수는 모든 종류의 병자들을 치료하였으며 죽은 자를 살렸고, 그가 결실하지 못한 과일나무를 저주하였을 때 그 나무는 즉시 뿌리까지 시들어 말라 죽었다고 기록(記錄)하였다. 예수는 그의 놀라운 능력을 타인을 해치려고는 결코 사용치 않았으며,  항상 불쌍한 자들의 마음에 주의를 기울였다고 그는 기록(記錄)하였다.


예수에 대한 유대인들의 여론(輿論)은 양분(兩分)되었었다.  빈민층(貧民層)은 "로마"의 권력(權力)으로부터 구원해 낼 그들의 구원자로 여겨 예수를 왕(王)으로 삼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지도층(指導層) 계급(階級)의 유대인들은 예수를 증오하고 시기하였으며 등뒤에서는 그를 저주(詛呪)하였다.  그들은 예수를 죽음만큼이나 두려워하면서도 그를 애굽(埃及)의 마술사라고 빈정거렸다고 사가(史家) 발레루스는 기록(記錄)하였다.


 본 보고서의 내용은 도날드 N. 리드만 박사가 소정의 요금을 지불한 후(後) 특별(特別) 허가를 얻어 읽고, 영어로 번역하여 예루살렘에서 간행되고 있는 월간(月刊) "시온산 보고서"(The Mount zionreporter;june 1974)에 게재(揭載)한 것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로마의 황제 디베료 가이사 각하에게

 각하(閣下)께 문안(文案)드립니다. 제가 다스리는 지역에서 최근 수년 동안에 일어난 사건은  너무나 독특한 일이어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우리 나라의  운명(運命)까지 변하게 할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저는 사건이 일어난 대로 각하께 소상히 알려 드리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최근(最近)에 발생(發生)한 사건(事件)은 모든 다른 신(神)들과는 조화(調和)될 수 없는 일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발레리우스 플라슈스를 계승(繼承)하여 유대 총독이 된 날을 저주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부임한 이래로 제 생활은 불안과 근심의 연속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 도착(到着)하자마자 저는 직위를 인수(引受)하고 큰 연회(宴會)를 베풀 것을 명하고 갈릴리의 영주(領主)들과 대제사장, 그리고 그의 부하 직원들을 초청(招請)하였습니다. 그런데 정해진 시간이 되어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 사실을 저와 제가 속하고 있는 정부(政府) 전체에 대(對)한 일종의 모욕(侮辱)으로 간주(看做)하였습니다. 며칠 후 대제사장(大祭司長)이 저를 방문하였습니다. 그의 거동은 엄숙(嚴肅)하였으나 외식(外飾)에 가득 찬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들의 종교가 그와 그의 추종자들에게 로마 사람들과 자리를 같이 하는 것이라든지 먹는 것이라든지 마시는 것을 금지(禁止)한다고 변명(辯明)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변명은 신앙심(信仰心)이 깊은 체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의 안색(顔色)으로도 알 수 있었습니다. 나는 그의 변명을 받아들이는 것이 정략(政略)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그 순간부터 피정복자는 정복자를 적(敵)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으며, 로마인들에게 이 나라의 제사장(祭司長)들을 특히 주의(注意)하라는 경고(警告)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벼슬과 호사(豪奢)스러운 생활(生活)을 위하여는 그들의 어머니라도 배신(背信)할 자들입니다. 제가 통치하는 모든 도시 가운데 예루살렘은 가장 다스리기 힘든 도시(都市)라고 여겨집니다. 백성(百姓)들은 매우 거칠어서, 저 자신(自身) 순간순간마다 폭동의 두려움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저는 폭동을 진압할 만한 군대를 거느리고 있지 않습니다.  단지 저의 지휘하에 한 명의 백부장과 그가 거느린 군대(軍隊)가 있을 뿐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자기의 통치 지역을 방어할 만한 충분한 군대를 거느리고 있다고 알려 온 "시리아"의 사령관(司令官)에게 증원군(增員軍)을 요청하였습니다. 우리들이 이미 획득한 영토를 방어하는 일을 등한히 한다면 우리 제국(帝國)의 확장(擴張)을 꾀하는 지나친 욕심(慾心)은 결국 우리 정부 전체의 붕괴(崩壞)를 초래케 하는 원인이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운 생각이 듭니다.


저는 가능한 한, 대중들을 가까이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들 제사장들이 폭도(暴徒)들에게 어떠한 영향력을 행사(行事)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될 수 있는 대로 백성들의 마음과 입장을 탐지(探知)하려고 노력(努力)하였습니다.

제 귀에 들려 온 여러 가지 소문들 중에 특별히 제 주의를 집중시킨 사건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그것은 한 젊은 청년이 "갈릴리"지방에 나타나, 그를 보내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새로운 법(法)을  고귀한 열정으로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의 목적하는 바가 민중을 선동하여 "로마" 제국에 대항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만 제 근심은 곧 사라졌습니다.

"나사렛 예수"는 유대인들보다는 오히려 "로마"인에게 더 친근하게 말을 하였습니다. 어느 날 저는 큰 군중이 모여 있는 "실로"라는 곳을 지나다가, 군중에 둘러싸인 한 젊은이가 나무에 기대어 선 채로 군중을 향(向)하여 조용히 연설하고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예수라고 누군가가 일러주었습니다. 그는 그의 연설(演說)을 듣고 있는 군중과 현저한 차이를 보여 주고 있어서 저는 그를 쉽게 알아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30세 가량으로 보였습니다.  저는 지금(至今)까지 그렇게도 마음을 잡아끄는

평온(平穩)한 얼굴을 본 일이 결코 없었습니다. 예수와, 그의 말을 경청하고 있는 저 검은 턱수염과 황갈색의 피부(皮膚)를 가진 무리들과 어떻게 비교(比較)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온 것이 예수에게 방해(妨害)가 되게 하지 않으려고 저는 계속 걸었으나 제 부관(副官)에게는 군중 속에 들어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라고 지시(指示)하였습니다. 제 부관의 이름은 "만류스"로서 그는 "카타린"을 잡으려고 "에투루리아"에 주둔한 적이 있는 공작 대장의 손자입니다. "만류스"는 "유대" 지방(地方)에 오랫동안 거주했기에 히브리 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저에게 충성하여 저의 신임을 받고 있었습니다. 총독청에 들어서자 저는 먼저 와 있는 "만류스"를 발견(發見)하였으며 그는 "실로"에서 예수가 한 말을 저에게 들려주었습니다.


 제가 읽어본 어떤 철학자의 작품에서도 예수의 말에 비교될 만한 것은 읽어 본 적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예루살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반항적인 유대인 중 한 사람이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옳은 것인가 하고 그에게 물었을때, 그는 대답하기를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렇게 많은 자유를 그 나사렛 젊은이에게 허용한 것은 이와 같은 그의 지혜(智慧)로운 말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저에게는 그를 체포(逮捕)하여 "본디오"로 추방(追放)시킬 수 있는 권한(權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하였다면 그것은 "로마" 정부가 지금(至今)까지 해 왔던 관계(關係)와는 상반(相反)되게 사람을 다룬 일이 되었을 것입니다.

이 젊은이는 선동적이거나 반항적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예수 자신(自身)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程度)로 은밀(隱密)하게 보호의 손길을 그에게 뻗쳐 주었습니다.  그는 자유롭게 행동하였고 말하였으며, 사람들을 모아서 연설(演說)하거나 또 제자를 선택(選擇)하는 일에 있어서 어떠한 관청(官廳)의 제재(制裁)도 받지 않았던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우리 조상의 종교는 예수의 종교로 대치될  것이며 이 숭고한 관용(寬容)의 종교는 "로마" 제국을 허망하게 붕괴(崩壞)시킬 것입니다.  그리고 가련한 저는 유대인의 말을 빌자면 하나님의 섭리요 우리의 말대로 한다면 운명의 도구로 쓰여진 것일 것입니다.


예수에게 허용된 무제한의 자유는, 가난한 사람들이 아니라 부유(富有)하고 권세(權勢) 있는 유대인들을 자극하였습니다. 예수가 유대인들에게 가혹하게 대한 것은 사실이지만 제가 그 "나사렛" 젊은이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은 것은  정략적(政略的)인 이유(理由)에서였습니다. “서기관(書記官)과 바리새인들이여” 그는 그들을 향(向)하여 말하였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들은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음이 가득하다.”


또 한 번은 부자가 많은 헌금을 내고 뽐내는 것을 보고 한탄하며 가난한 자의 한 푼이 하나님의 목전(目前)에서는  더욱 빛나는 것이라고 그들에게 말하였습니다.

예수의 오만한 말과 행동에 대한 항의가  날마다 총독청에 줄을 이어 들어왔습니다. 저는 예수에게 어떤 불행(不幸)한 일이 닥치게 될지도 모른다는 정보(情報)를 입수하였습니다. 예루살렘에서는, 선지자로 불리는 자들에게 돌을 던지는 일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으며, 예수에 대한 진정서가 "가이사"에게 제출(提出)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제가한 처사는 원로원에게 재가를 받은 것이었으며, "파르티안" 전쟁(戰爭)이 끝나면 저에게 증원군을 보내 주기로 약속(約束)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폭동을 진압하기에는 우리의 군사력이 너무도 미약한 고로, 저는 힘없이 물러섬으로써 총독청의 체면을 손상(損傷)시키는 것보다는 차라리 조용히 성(城)의 평온(平穩)을 되찾는 방안을 강구(講求)하기로 하였습니다.


 저는 예수에게 글을 써 보내어 총독청에서 한 번 만날 것을 청하였습니다.    예수가 왔습니다. 황제(皇帝)께서는 제가 로마인의 피에 서반아(西班牙)의 피가 섞여 흐르는 혈통(血統)을 지닌 사람으로서, 두려움 따위의 유약(柔弱)한 감정(感情)은 모르는 사람임을 잘 아실 것입니다.

 그 "나사렛" 사람이 모습을 나타냈을 때  저는 저의 접견실에서 거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제 다리는 쇳덩이로 된 손이 제 다리를 대리석 바닥에 붙여 놓은 것처럼 꼼짝할 수가 없었으며 그 나사렛 젊은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조용하게 서 있는데도 저는 마치 형사범(刑事犯)처럼 사지(四肢)를 떨고 있었습니다.

비록 그는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으나 제 앞에까지 다가와서 서는 것만으로도 “내가 여기 왔나이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한참동안 저는 이 비범한 사람을 존경과 두려움으로 응시하였습니다. 그는 모든 신들과 영웅(英雄)의 형상(形狀)을 그린 수많은 화가(畵家)들이 아직 그려 내지 못한 유형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不具)하고 저는 너무나 두렵고 떨려서 그에게 접근(接近)할 수가 없었습니다.  드디어 제가 “예수여!”하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나사렛 예수여, 지난 3년 동안 나는 그대에게 연설(演說)할 수 있는 자유(自由)를 허락하였소.

그러나 이 일에 대하여 나는 조금도 후회가 없소. 그대의 말은 현인(賢人)의 말이오. 나는 그대가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을 읽어보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알기에는 그대의 설교(說敎)는 다른 철학자(哲學者)들의 그것을 능가(凌駕)하며 단순(單純)하고도 장엄(莊嚴)한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하여는 황제(皇帝)께서도 알고 계시며, 그를 대신하여 이 나라에 와 있는 나는, 그대가 훌륭한 말을 자유(自由)롭게 할 수 있도록 허락한 것을 스스로도 기쁘게 생각하고 있소.


그러나 나는 그대의 설교(說敎)가 강력(强力)하고도 원한 깊은 적대자를 만들고 있음을 알려 드려야겠소. 이것은 놀라운 사실(事實)이 아니오. "소크라테스"에게도 대적(對敵)이 있었으며  결국에는 그들의 증오의 희생물이 되었다오.

그대의 경우는 그대의 설교가 그들에게 매우 가혹하다는 것과, 내가 그대에게 자유를 허락한 것으로 그들이 나를 반대한다는 것 때문에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시끄러워지고 있소. 그들은 "로마" 정부가 그들에게 허용한 작은 권리마저도 나와 그대가 손을 잡고 그들로부터 빼앗으려고 한다면서 고소(告訴)까지 하고 있소.

내가 그대에게 지금 말하려고 하는 것은 명령이 아니라 부탁으로서, 이제부터는 그대가 설교할 때에 좀더 신중하고 온화한 말로 하며, 그들을 고려(考慮)하여 대적들의 자존심을 상(傷)하게 함으로써 그들이 어리석은 군중들을 충동(衝動)하여

그대를 대적하지 않도록 하고 또 나로 하여금 법의 도구 노릇을 하지 않도록 해 달라는 것이오.


그 "나사렛" 사람은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땅의 군주여, 그대의 말은 참된 지식에서 나온 말이 아닙니다. 격류(激流)를 명하여 산골짜기에 머물러 있으라고 말해 보십시오. 그러면 계곡(溪谷)의 나무들은 뿌리째 뽑혀 버릴 것입니다. 그 급류(急流)는 자연과 창조주의 법칙에 순종(順從)한다고 그대에게 답할 것입니다.

하나님 한 분만이 그 급류(急流)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고 계십니다.

진실로 그대에게 이르노니 "샤론"의 장미가 피기 전에 정의의 피가 엎질러질 것입니다.”  “당신의 피는 엎질러지지 않을 것이오.”하고 저는 깊은 감동(感動)을 받고 대답하였습니다.

“당신의 지혜(智慧)는 로마 정부에 의(依)하여 허용된 자유를 남용(濫用)하는 거칠고 오만한 모든 "바리새인" 보다 더욱 값진 것이오. 그들은 "가이사"에 대한 음모를 꾸며, "가이사"는 폭군으로서 그들의 멸망을 도모하고 있다는 말로 무식한 자들을 충동하여 황제(皇帝)의 관대(寬待)하심을 공포(恐怖)로 조작시키고 있소.

오만 무례하고 철면피(鐵面皮) 같은 인간(人間)들이오! 그들은 악(惡)한 계획(計劃)을 도모하기 위해서 때로는 양의 가죽을 쓰는 "티베르"강의 여우임을 그들 자신(自身)은 모르고 있소.


 나의 총독(總督) 관저는 밤낮을 불문하고  그대에게 도피처(逃避처)로 제공될 것이오.” 예수는 관심(關心) 없다는 듯이 머리를 저으며, 근엄하고 숭엄(崇嚴)한 미소를 띠면서 말하였습니다. “때가 이르면 그 때는 땅 위나 땅 아래 어느 곳에도

인자(人子)를 위(爲)한 도피처(逃避처)는 없을 것입니다.

의(義)의 도피처는 저기에 있습니다.”라면서 하늘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선지자들의 책에 기록된 말씀은 성취되어야 할 것입니다.”


“젊은이여,”하고 저는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습니다. “그대는 나의 요청을 명(命)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오. 나의 통치하에 있는 지방의 안전이 그것을 요구하고 있소.  당신은 설교할 때 좀더 온건한 태도를 취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오. 나의 명(命)을 어기지 않도록 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결과가 어떠할 지를 그대도 잘 알 것이오.  와 주어서 고맙소. 잘 가시오.”

“땅의 군주(君主)여”하고 예수가 입을 열었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 전쟁을 일으키려고 온 것이 아니라 평화(平和)와 사랑과 자비(慈悲)를 주려고 왔습니다.

나는 "가이사 아구스도"가 "로마" 세계(世界)에 평화(平和)를 주던 바로 그 날에 태어났습니다. 핍박(逼迫)은 나에게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핍박을 예상하고 있으며, 나에게 길을 보여 주신 내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그 핍박(逼迫)을 잘 감수(甘受)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대의 세상적(世上的)인  사려분별과 지각(知覺)을 삼가십시오.

성막에 희생 제물(祭物)을 잡아 놓은 것은 그대의 권력(權力)에 속한 것이 아닙니다.” 이와 같은 말을 한 후 그는 투명(透明)한 영혼처럼 접견실 휘장 뒤로 사라져 갔습니다.


저는 그 젊은이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던 중압감에 해방되어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예수를 대적하는 자들은 그 당시 "갈릴리" 지방을  다스리고 있던 "헤롯"에게 편지를 써서 그 "나사렛" 사람에 대한 원한(怨恨)을 풀어 달라고 하였습니다.  만일 헤롯이 그의 성격(性格)대로 하였다면 그는 예수를 당장 사형에 처(處)했을 것입니다.그러나 그는 비록 왕의 위엄을 자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의원에 대한 그의 영향력(影響力)이 무시당할 지도 모르는 행동(行動)을 범하는데 주저(躊躇)하였으며 또 저처럼 예수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로마의 관리(管理)로서 한 유대인 때문에 겁을 집어먹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일전에 헤롯은 총독청으로 저를 방문(訪問)하였으며 얼마간 가벼운 대화(對話)를 나눈 후(後), 떠날 즈음에 "나사렛" 사람에 대한 제 견해가 어떠한지 물었습니다.  저는 대답하기를 예수는 가끔 위대한 민족이 드물게 배출해 내는 위대(偉大)한 철인 중(中)의 한 사람으로 그의 교훈(敎訓)은 결코 처벌받을 만한 것이 아니므로 로마 정부는 그 자신의 행동(行動)으로 정당화하고 있는

언론의 자유를 그에게 허용하기로 하였다고 말했습니다.

헤롯 왕(王)은 음흉(陰凶)하게 웃어 보이면서 마지못해 하는 투로 인사를 하고 떠났습니다.


유대인의 큰 축제가 다가오고 있었으며 백성의 여론은 유월절 의식(儀式)에서 항상 감정(感情)을 표명(表明)하는 일반 백성(一般 百姓)의 환희(歡喜)에 편승하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성(城)은 그 나사렛 사람의 죽음을 시끄럽게 요구하는 소란한 군중(群衆)들로 술렁이고 있었습니다. 제가 파견한 밀사(密使)는 성전의 금전이 군중들을  동원(動員)하는데 사용되고 있다고 전(傳)해 왔습니다.


위험(危險)은 점점 가중되었으며 한 로마의 백부장은 멸시(蔑視)와 모욕(侮辱)을 당했습니다. 저는 시리아 사령관에게 편지를 보내어 100명의 보병과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기병을 보내 달라고 요청하였으나 그는 거절(拒絶)하였습니다.

저는 반역하는 성(城) 한 가운데서 얼마 되지도 않는 정병(精兵)들과 함께 외톨박이가 된 것 같았으며, 폭동(暴動)을 진압하기에 너무 약한 탓으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들을 너그럽게 대해 주는 수 밖에는 별다른 도리(道理)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를 붙들고 있었으며 선동적인 폭도들은 총독청에 대하여는 조금도 두려움 없이 그들의 상전(上典)의 명령(命令)만 믿고 있었으며, 제가 그들의 요구(要求)가 무엇인지를 말해보라고 눈짓을 했을 때 그들은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라고 고래고래 고함치기를 계속(繼續)하였습니다.


그 때는 세력(勢力) 있는 세 당(黨)이 예수를 대적(對敵)하기 위하여 일심동체가 되었습니다.

첫째로 "헤롯 당"과  "사두개"파로서 그들의 선동적인 행동은 두 가지 동기(動機)-즉 그들은 그 나사렛 사람을 미워하였으며 로마 의 속박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에서 나온 것 같았습니다.

로마 황제(皇帝)의 형상이 새겨진 기를 가지고 거룩한 성(城)에 들어왔다는 것 때문에 저를 결코 용서(容恕)할 수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비록 제가 어떤 치명적인 죄를 범하였다고 해도 신성 모독죄 보다는 덜 흉악(凶惡)하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불만의 씨가 그들의 가슴속에 사무쳐 있었습니다.


저는 성전(聖殿)의 은금(銀金)의 일부를 공공 건물을 건축(建築)하는데 사용하자고 제안(提案)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제 제안(提案)은 무시(無視)당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공공연(公公然)하게 예수의 대적임을 자처(自處)하고 다니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정부 같은 것은 아랑곳하지도 않는 자들로서 그 나사렛 사람이 지난 3년(年) 동안 그가 가는 곳마다 바리새 인을 혹독(酷毒)하게 질책(質責)한 것에 대하여 끔찍한 원한(怨恨)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들만의 힘으로 행동하기에는 너무나도 두렵고 약(弱)하다는 것을 알고 헤롯 당과 사두개파와의 불화(不和)를 이용(移用)하였던 것입니다. 이들 세 당 외에도 저는 언제나 소요에 끼여들기 잘하며 무질서와 혼란(混亂)을 일으키는 데는 한몫을 잘 담당하는 분별없고 야비한 군중들과 싸우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예수는 대제사장 앞에 끌려와 사형으로 정죄되었습니다. 대제사장 가야바가 중재(仲裁)를 부탁해 온 때가 바로 그 때였습니다. 그는 예수의 유죄 판결을 확인한 후 처형(處刑)해 줄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나는 그에게 예수는 갈릴리 사람이요, 그 사건은 헤롯의 관할(管轄) 지역에서 일어난 일이니 거기로 보내라고 명(命)을 내렸습니다.

교활한 그 영주는 겸양을 표시하는 척 하면서 가이사의 대리자인 저의 명령(命令)을 거절하고 그 사람의 운명을 제 손에 위탁(委託)하였습니다.


 곧 저의 관저는 포위된 성보(城保) 행세를 띠었고 매 순간(瞬間)마다 불만(不滿)에 가득 찬 터질 듯한 군중(群衆)들은 그 수(數)가 증가(增加)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은 나사렛 산지(山地)에서 몰려온 군중들로 넘쳤으며, 전 유대인들이 모두 예루살렘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장래(將來)의 운명(運命)을 내다본다는 "까울" 지방의 여자를 아내로 두고 있습니다. 아내는 제 발치에 엎드려 울면서 말하였습니다.

 “조심하십시오. 조심하십시오.

 저 사람에게 손 대지 마십시오.  그는 거룩하신 분입니다.

어젯밤, 저는 환상 중에서 그를 보았습니다. 그는 물위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또 바람의 날개를 타고 날아다니고 있었습니다. 그가 폭풍과 호수의 물고기에게 말하였는데, 그 모든 것들이 그 말에 복종(服從)하였습니다.

보세요.

 "기드론" 골짜기는 피로 물들어 붉게 흐르고 있었고, 가이사의 조상(彫像)은 대량 학살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중간 기둥들은 퇴락(退落) 하였고 태양은 무덤 속의 재녀(齋女)처럼 슬픔 속에 면사포로 가리고 있었습니다.


오! 빌라도여, 악(惡)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당신의 아내인 제 애원을 듣지 않으신다면 로마 중의원(衆議員)이 받을 저주(詛呪)가 두렵고 가이사가 당할 괴로움이 두렵습니다.”


이 때는 이미 몰려온 군중들의 무게로 대리석 계단(階段)들이 삐걱거렸습니다.

그들은 그 나사렛 사람을 다시 저에게 데리고 왔습니다. 저는 위병들의 호위를 받으며 재판하는 장소로 나아가서 엄격(嚴格)한 어조로 그들의 요구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그 나사렛 사람의 죽음이요.”하고 그들은 대답하였습니다.

“무슨 죄(罪) 때문인가?”

“그는 참람(僭濫)한 말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모독하고 성전의 황폐를 예언하였으며, 그 자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면서 유대인의 왕(王), "메시아"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로마의 법(法)은 그러한 죄는 사형에 처하지 않는다.”하고 저는 말했습니다.

 “그를 십자가(十字架)에 못 박으시오!

 그를 십자가(十字架)에 못박으시오!” 냉혹(冷酷)한 폭도들이 소리질렀습니다.

 분노(憤怒)한 폭도(暴徒)들의 고함 소리는 관저(官邸)의 기초까지 흔들어 놓았습니다.


군중(群衆) 속에는 오직 한 사람만이 침착(沈着)하게 조용히 서 있었습니다.

그 나사렛 사람이었습니다.무자비한 핍박자들로부터 예수를 보호하려고 여러 번 시도하였으나  헛수고로 돌아가고, 저는 마침내 그 순간 예수의 생명(生命)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것으로 생각된 방법(方法)을 취(取)하기로 하였습니다.

즉, 이러한 명절에는 죄수 한 사람을 놓아주는 것이 그들의 관례였으므로 저는 예수를 자유롭게 놓아 소위 그들이 일컫는 "속죄 염소"로 삼자고 제안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를 십자가(十字架)에 못 박아야 한다고 고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그들에게 형사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내리기 위하여서는 하루를 온전히 금식(禁食)하지 않고서는 판결을 내릴 수 없다는 그들 자신의 법(法)을 들어, 앞뒤가 맞지 않는 그들의 주장(主張)의 모순성(矛盾性)을 지적(指摘)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죄 선고는 "산헤드린"의 동의를 얻어 의장의 서명을           받아야 하며 또 어떠한 범죄자일지라도 형의 확정(確定) 선고를 받은 당일에는 그 형의 집행을 할 수 없으며 다음 날에 집행한다 할지라도 집행 전(前)에 산헤드린이 모든 경과를 검토해 보아야 하며, 또 그들의 법(法)에 따라서 한 사람의 기(旗)를 가지고 재판정 문에 서 있는 동안 다른 사람은 말을 타고 좀 떨어진 곳에서 범죄자의 이름과 죄명(罪名)과 증인의 이름을 소리 높이 외쳐 혹시 누가 그를 변호할 사람이 있을 지의 여부를 알아봐야 하며, 형(刑) 집행(執行) 도중 범인(犯人)이 세 번 뒤를 돌아 보아서 새로운 사실로 자신에게 유리한 변호(辯護)를 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깨우쳐 주었습니다. 


 저는 이러한 구실(口實)을 말해 줌으로써 그들이 두려운 마음으로 복종하기를 바랐으나 여전히 그들은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그를 십자가(十字架)에 못 박으소서!”라고 소리질렀습니다.

저는 그들의 마음을 충족시켜 줄 생각에서 예수를 채찍질하라고 명령(命令)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군중의 분노를 증가시켰을 뿐이었습니다.


 저는 대야를 가져오라고 하여 소란스러운 군중 앞에서 제 손을 씻음으로써 나사렛 예수를 죽음에 내어 주는 데 대해서는 아무런 책임(責任)도 없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만 그것도 허사였습니다.

이 철면피 같은 군중들이 갈구하는 것은 바로 예수의 생명(生命)이었던 것입니다.

저는 가끔 시민폭동에서 성난 군중을 목격하여 왔으나, 이번처럼 격렬(激烈)한 폭동(暴動)은 본 적이 없었습니다. 마치 지옥(地獄)의 모든 유령(幽靈)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여든 것과 같았다고 밖에는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군중(群衆)들은 걸어 다닌다기 보다는 갑자기 땅에서 불쑥불쑥 솟아나는 것 같았으며, 총독 청사의 입구에서부터 "시온"산까지 이르는 군중들은 넘실거리는 파도를 따라 움직이는 소용돌이처럼 보였고, 판노니아의 공회소의 소동이나 폭동(暴動)에서도 결코 들어 볼 수 없는 가지가지의 해괴(駭怪)한 소리를 지르며 모여들었습니다.


겨울날 황혼 무렵처럼 날이 어두워지자 저 위대한 "줄리어스 시저"가 죽었을 때처럼 적막하였습니다.  마치 3월 보름날 같았습니다.

모반을 일삼는 이 성을 위임받는 통치자로서, 저는 접견실 기둥에 기대어 서서 그 죄(罪) 없는 나사렛 젊은이를 처형(處刑)하려고 끌고 다니는 어두컴컴한 지옥(地獄)의 악마(惡魔) 같은 저들의 무서운 계략을 꺾을 방안(方案)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제 주위의 모든 것이 황량(荒凉)하게 보였습니다.

 예루살렘은 그 주민(住民)들을 "게모니카"로 가는 장례(葬禮)문을 통하여 모두 토(吐)하여 냈습니다.

 황막하고 쓸쓸한 분위기(雰圍氣)가 제 주위(周圍)를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저의 위병들은 기병과 백부장이 가세(加勢)한 가운데 무력(武力)에 의한 질서 유지에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저는 홀로 남았으며, 그 때 잠깐 동안 지나간 그 순간(瞬間)은 마치 저 자신이 꿈속에서 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바람결을 타고 "골고다"에서 들려 오는 큰 부르짖음소리는 일찍이 인간의 귀(耳)로는 들어 본 적이 없는 고통(苦痛)의 소리를 발(發)하고 있었습니다.

검은 구름이 성전 꼭대기 위에 드리워졌으며 마치도 면사포를 가리운 것처럼 "예루살렘"을 덮고 있었습니다. 하늘과 땅에 나타난 징조들은 너무도 두려운 것이었습니다. 마치 "디오누시오"가“ 창조주가 고통을 당하고 있든지 우주가 떨어져 나가고 있든지 둘 중(中)의 하나다.”라고 크게 소리질렀듯이 말입니다.

출처 : 아낌없이 주는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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