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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유대교·이슬람교·기독교, 스페인서 첫 공식 대화(각종교차이비교)

주님의 일꾼 2018. 8. 10. 14:55

‘아브라함의 이름으로’ 문명 간 화해 손잡는다

유대교·이슬람교·기독교, 스페인서 첫 공식 대화

김환영 | 제71호 | 20080720 입력 블로그 바로가기
“처와 첩이 싸우면 돌부처도 얼굴을 돌린다(妻妾之戰 石佛反面).” 시앗 싸움은 부처도 못 말릴 정도로 극렬하며, 돌부처 같은 부인도 질투심을 어쩌지 못한다는 말이다. 중세 시대의 십자군전쟁 등 유혈로 얼룩진 유럽·중동 관계사와 중동분쟁의 시발점은 어쩌면 수천 년 전에 살았던 족장 아브라함의 두 부인 사이에서 벌어진 시앗 싸움이다. 아브라함이 75세 나이에도 아들이 없자 부인 사라는 몸종 하갈을 남편과 동침하게 한다.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아랍인의 조상)이 태어난다. 그러나 사라도 아들 이삭(유대인의 조상)을 낳는다. 신(神)은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과 사막의 모래처럼 많은 자손을 약속했다. 약속은 실현됐으나 ‘시앗 싸움’은 아브라함의 자손들 사이에서 계속되고 있다.
‘세계대화회의’ 개막식이 16일 스페인 파르도궁(宮)에서 열리고 있다. 회의를 주선한 압둘라 사우디 국왕은 극단주의를 피하고 화해의 정신을 수용하자고 호소했다. 마드리드AP=연합뉴스
아브라함의 유전적·영적 자손들이 화해와 평화를 위한 회의를 열었다. 16~19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를 대표하는 지도자와 학자 등 200여 명이 모였다. 세계이슬람연맹(MWL)이 주최한 이 회의에는 세계유대인회의(WJC)의 마이클 슈나이더 사무총장, 교황청 종교 간 대화평의회 의장인 장-루이 토랑 추기경,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제시 잭슨 목사 등 저명인사들이 참석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축하 메시지에서 “여러 종교 간 연대의 상징이 되길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
마드리드 회의를 구상하고 성사시킨 것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압둘라 국왕이다. 이슬람 종주국인 사우디의 국왕이 주도했다는 사실 자체가 상징성이 크다. 2005년 즉위한 그는 종교 간 화해와 대화를 강조해 왔다.

압둘라 국왕은 회의 개최를 위해 차근차근 사전 정지작업을 했다. 지난해 11월 그는 교황과 만났다. 두 지도자는 이슬람과 가톨릭의 대화 상설화에 합의했다. 지난달 4~6일에는 이슬람의 내부 갈등을 봉합하고 마드리드 회의를 위한 이슬람 성직자들의 지지를 이끌어 내기 위해 메카에서 수니·시아파 지도자들이 참석한 국제이슬람회의를 개최했다. 50개 이슬람 국가에서 500여 명의 대표가 참석했다.

압둘라 사우디 국왕(왼쪽)과 회의 개최지를 제공한 후안 카를로스 스페인 국왕. 마드리드AFP=연합뉴스
마드리드 회의에서 압둘라 국왕이 의도한 바는 복합적이다. 9·11 테러를 자행한 테러범 19명 중 15명이 사우디 국적이었다. 그래서 생겨난 ‘이슬람=테러=사우디’라는 잘못된 등식을 압둘라 국왕은 깨야 했다. 국내 분위기를 전환할 필요성도 있었다. 국내 과격 이슬람주의자는 왕실 전복을 위해 2003년, 2004년 테러 공격을 감행했다. 이들은 미국뿐만 아니라 사우디 왕실에 창끝을 겨누기 시작했다. 중동 패권을 노리는 이란을 견제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이번 회의의 판은 크게 짜였다. 회의 이름도 마치 모든 것을 ‘보자기’처럼 담겠다는 듯 ‘세계대화회의(World Conference on Dialogue)’로 정했다. 3대 유일신교의 공식 만남이 핵심이었지만 힌두교·불교 대표도 초청했다. 첫 만남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해 이 회의는 지극히 조심스럽게 기획됐다. 이라크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계, 이란 핵 문제 등 정치적인 것은 의제에서 완전히 배제됐다. 개막식을 제외하고 4개 분과 토론 등은 비공개로 진행됐다. 18일 폐막성명에선 대(對)테러전쟁을 위한 국제적 합의, 종교 간 대화, ‘문명 충돌’을 막기 위한 유엔총회 특별회의 개최를 촉구했다.

사우디는 이슬람이 아닌 종교를 자국 내에서 전혀 허용하지 않는 유일한 국가다. 종교경찰의 감시가 도처에서 번뜩인다. 이슬람 국가 중에서도 가장 보수적이다. 여성 운전도 금지한다. 여성이 운전을 하면 외간 남자들과 자유롭게 교제할 수 있어 전통적 가정의 해체 위험이 있고 사막이 많은 지리적 특성상 여성 운전자들이 성희롱이나 성폭행을 당하기 쉽다는 이유를 내세워서다. 그런 사우디가 종교 간 대화를 주도한다는 것은 혁명적인 사건이다. 압둘라 국왕이 힌두교·불교 지도자들과 만나는 장면을 TV에서 보고 이슬람 성직자들이 충격을 받았다는 후문도 들린다.

회의 결과에 대해 각 종교의 ‘중도파’와 ‘좌파’는 긍정적이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비판도 나왔다. 그러나 이번 회의는 이슬람권이 사우디 주도로 세계를 향해 보다 공세적으로 나서고 있는 현실을 상징한다.

‘한 손에는 칼, 다른 손에는 코란’. 오사마 빈라덴이 ‘칼’이라면 압둘라 국왕은 ‘코란’이다. 마드리드 회의는 전 세계 종교를 향한 이슬람식(式) ‘햇볕정책’의 출발점인지 모른다. 회의가 열린 스페인은 이슬람이 스페인을 통치한 8~13세기에 기독교·유대교·이슬람교 신자들이 평화적으로 공존했다는 상징성을 갖고 있다.

사우디의 ‘평화 공세’와 이에 대한 유대교·기독교의 반응을 이해하려면 아브라함에 대한 3대 유일신교의 견해를 알아야 한다. 교집합(交集合)의 중심에 아브라함이 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일곱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요, 그중 하나는 키가 크고요 나머지는 작대요….” 주일학교에서 어린이들이 부르는 동요에 나오는 바로 그 아브라함이다.

이슬람교·기독교·유대교를 지칭하는 ‘아브라함의 종교들(Abrahamic religions)’이라는 표현은 이슬람에서 맨 먼저 사용했다. 종교 간 대화(interfaith dialogue)를 주창하는 기독교인·유대인도 채용하고 있다. 이슬람은 초기부터 기독교인과 유대인을 ‘경전의 백성들(People of the Book)’로 인정해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보다 우대하는 정책을 썼다.

이슬람은 ‘양날을 가진 칼’과 같은 신학적 입장을 구사했다. 이슬람은 “유대교·이슬람·기독교는 모두 ‘아브라함의 종교’이기 때문에 믿는 신 역시 같다”고 본다. 동시에 유대교와 기독교의 신앙과 경전은 코란과 달리 왜곡됐다고 주장한다.

16일 회의 개막식에서 압둘라 국왕은 “역사상 종교가 연루된 분쟁은 종교 그 자체가 아니라 종교에 대한 잘못된 해석 때문에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해석의 대상이 되는 종교적 진리 자체에는 공통점도 많지만 차이점도 많다. 일치와 화해의 바탕이 될 수 있는 3대 유일신 종교의 공통점에도 미묘한 차이가 있다. 그것이 더 큰 분란을 일으킬 수 있다. 기독교계 일각에서 “속지 말자”는 반응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기독교는 ‘아브라함의 종교’이기 이전에 ‘예수의 종교’다.

사회 현상에는 ‘분열 단계’와 ‘통합 단계’가 있다. 분열할 때는 비슷할수록 증오심이 오히려 격렬하다. 그러나 통합 단계에서는 비슷하다는 게 통합의 밑천이 돼 상당한 차이도 극복할 수 있다. 기독교·이슬람교·유대교 앞에는 물질주의·세속주의·무신론·가정 해체라는 공동의 적이 있다. 이들이 화해와 일치를 위해 나설 때 아브라함이 공동의 조상이라는 게 큰 보탬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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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늘푸른나무
글쓴이 : 녹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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