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나눔

[스크랩] 요셉의 용서함을 상기하며

주님의 일꾼 2018. 10. 30. 13:30
누군가에게 배신을 당한 사람은
그후부터 사람을 믿지 못한다.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된다.
누구든 믿지 않으려 한다.

더욱이 혈육이나 친구로부터
그런 배반을 당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가슴에 새겨진 상처가 아물기 어려울 듯 하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편애를 받으며
자랐다. 형들의 질시가 따랐다.
그리고 급기야 형들은 요셉을 구덩이에 던져넣고
이어 애굽으로 가는 이스마엘 족속들에게
은 20개에 팔아버렸다.

노예로 팔린 요셉.
요셉은 그런 형들을 향해 울부짖었다.
구해달라고, 살려달라고.

그로부터 십 수년이 지난 뒤
요셉은 우여곡절 끝에 애굽의 총리자리에
앉게 되었고 형들은 기근 때문에 곡식을 얻으러
요셉 총리 앞으로 나오게 되었다.

요셉의 심경이란, 그 때 어땠을까.
자그마한 분노에도 '복수심'을 불태우는 나로서는
그리하여 혼자 제풀에 사그라들면 그만이지만
아니면 고통스러워하면서 '그 댓가를 받기를'
바라마지 않는 속좁은 나로서는
그 대목에서 감정이입의 차가운 고통이 닿아온다.

요셉은 그러나 보복도 복수도 하지 않았다.
단지 그들과 함께 있는 자신의 친 동생 베냐민의
안전을 위해 형들의 마음을 떠보았다.
그리고 예전의 그러한 마음을 더 이상 갖고 있지
않는 형들의 태도를 보고 모든 것을 밝힌다.

오히려 놀라고 떠는 사람들은 요셉의 이복 형들이었다.

그들은 필시 요셉이 자신들을 죽일 거라고
짐작하고 겁에 질린다. 그 겁은 아버지 야곱이
죽을 때까지 남는다.

아니, 그 후까지도 그들은
요셉의 보복을 두려워하며 발을 뻗지 못하고
표면적인 살얼음 위에서 하루하루를 살았는지도
모른다.

요셉의 면전에서 아직
요셉의 그들의 동생임을 알지못한 상태에서
이런저런 고초를 겪는 와중에
그들이 내뱉은 한탄은,
"그러게, 그 때 요셉이 그렇게 살려달라고
할 때 살려주자니까..."의 후회였다.

요셉은 어떻게 그들을 용서할 수 있었을까.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창45장)"

그리고 형들은 아버지 야곱의 그늘에서는
그럭저럭 마음을 편히 먹었으나 야곱이 죽고 나자
다시 보복의 두려움에 떤다. 이 때 요셉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창50장)

사람은 그를 해하려 했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사람의 방해나 음모에도
하나님의 사람은 꿋꿋이 살아남을 수 있었고
그 길을 끝까지 갈 수 있었다는 고백이 이어진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꾀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걸 선으로 바꿔주셨다,는 고백.

요셉의 용서가능함 속에는
하나님의 섭리를 받아들이고 깨달은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배포 큰 마음이 있었다. 하나님의 큰 손을 본
자는 사람의 고사리손이 짓는 모양에 크게 요동하지
않음일까.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큰 손에
맡겨졌기에
그것을 알고 주어진 상황마다 너무 크게 슬퍼하거나
너무 크게 기뻐하지 않고 받아들였기에 요셉의
지혜를 손상받지 않았다. 정결한 하나님의 사람
요셉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지혜. 지혜를 지킬 수
있었음은 어쩌면 보복할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고
그 때마다 하나님을 바라봤기 때문이 아닐까.

오늘 나는
사람을 보고 절망하거나 실망하거나
심지어 나 자신을 바라보며 실의에 빠지거나 하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큰 손을 바라보고 싶다.

용서하지 못함에 따르는
그 어두운 '이자'들을 치렁치렁
매달고 남은 시간을 가는 대신.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주어지는
놀라운 은총들이 시냇가에 심은 나무에처럼
싱그럽게 펼쳐지는 삶을 갖기 위하여.


출처 : 영인이의 예수님과 복음이야기
글쓴이 : null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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