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나눔

이어령과 죽음

주님의 일꾼 2019. 1. 7. 17:50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다. 모든 사람이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가 ?

오늘 이어령 박사와 중앙일보 기자와 나눈 대화 속에서 죽음을 깊이있게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어 발췌했다. 언젠가는 다가올

죽음을 준비하자. 언젠가는 맞이해야할 죽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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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많은 사람이 죽음을 나와 상관없는 남의 일로 생각한다.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한다.

A : “영원히 살면 괜찮다. 그런데 누구나 죽게 돼 있다. 그래서 죽음을 생각하는 삶이 중요하다. 중국을 비롯한 외국에서 정월 초하루에, 그 좋은 새해 첫날에 왜 죽음에 대한 노래를 부르겠나. 죽음을 염두에 둘 때 우리의 삶이 더 농밀해지기 때문이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 삶이 가장 농밀한 시기가 언제인지 아나. 요즘이다.”

 

Q : 왜 요즘인가.


A : “사람 만날 때도 그 사람을 내일 만날 수 있다, 모레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농밀하지 않다. 그런데 제자들 이렇게 보면 또 만날 수 있을까. 계절이 바뀌고 눈이 내리면 내년에 또 볼 수 있을까. 저 꽃을 또 볼 수 있을까. 그럴 때 비로소 꽃이 보이고, 금방 녹아 없어질 눈들이 내 가슴으로 들어온다. ‘너는 캔서(암)야. 너에게는 내일이 없어. 너에게는 오늘이 전부야’라는 걸 알았을 때 역설적으로 말해서 가장 농밀하게 사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 나쁜 일만은 없다.”
이 교수는 7년 전에 소천한 딸(이민아 목사) 이야기를 꺼냈다. 이 목사도 생전에 암 통보를 받았다. “암이라는 말을 듣고 우리 딸도 당황하지 않았다. 의사는 ‘수술하면 1년, 안 하면 석 달’이라고 했다. 딸은 웃었다. ‘석 달이나 1년이나’라며 수술 없이 암을 받아들였다. 그러니까 오히려 진단한 의사가 당황하더라. 그게 무슨 큰 도를 닦아서가 아니다. 애초부터 삶과 죽음이 함께 있다고 생각한 사람에게는 ‘뉴스’가 아니다. 그냥 알고 있던 거다. 그때부터 딸은 책을 두 권 쓰고, 마지막 순간까지 강연했다. 딸에게는 죽음보다 더 높고 큰 비전이 있었다. 그런 비전이 암을, 죽음을 뛰어넘게 했다. 나에게도 과연 죽음이 두렵지 않을 만큼의 비전이 있을까.” 그는 그게 두렵다고 헀다.

 

이어령 교수는 "죽음을 생각하며 염두에 두고 살았던 사람에게 죽음은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고 말했다. 최승식 기자

 

Q : 생각하시는 비전이 뭔가.
A : “우선 비전의 바탕, 내 삶을 그리는 바탕을 말하고 싶다. 먼저 ‘인법지(人法地)’다. 인간은 땅을 따라야 한다. 땅이 없으면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 우리가 어디에 사나. 지구에 살지 않나. 다음은 ‘지법천(地法天)’이다. 땅은 하늘을 따라야 한다. 땅에 하늘이 없으면 못 산다. 해도 있고, 달도 있고, 별자리도 있으니까. 그럼 그게 전부냐. 아니다. ‘천법도(天法道)’. 하늘은 도(道)를 따라야 한다. 다시 말해 우주의 질서를 따라야 한다. 그럼 도(道)가 끝인가? 아니다. ‘도법자연(道法自然)’. 도(道)는 자연을 따라야 한다.”

 

Q : 마지막의 ‘자연’이란.
A : “우리는 그동안 ‘인법지’할 때 ‘지(地)’가 자연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게 아니다. 자연은 스스로 된 것이다. 자연스러움. 이 세상에 스스로 된 게 있나. 의존하지 않는 게 있나. 의지하는 뭔가가 없다면 그 자신도 없어진다. 그러니 ‘절대’가 아니다.”

 

Q : 그럼 ‘스스로 된 것’은 뭔가.
A : “누군가 예수님에게 물었다. ‘당신은 신의 아들인가?’ 그러자 예수는 ‘예스, 에고 에이미(ego eimi·그리스어). 즉 예스, 아이 엠(Yes, I am)’이라고 답했다. ‘아이 엠(I am)’이 뭔가. ‘나는 나이다’ ‘나는 스스로 있다’는 말이다. 그건 무엇에 의지해서, 무엇이 있기 때문에 있는 게 아니다. 그냥 있는 거다. 스스로 있는 것은 외부의 변수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게 ‘자연’이다. 그게 ‘신(神)’이다.”

 


이어령 교수는 "예수를 믿는 것과 종교를 믿는 것은 다른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최승식 기자

 

 

Q : 그렇다면 ‘예수를 믿는다’는 건 무얼 뜻하나.


A : “우리는 ‘너 예수교 믿어?’하고 묻는다. 그건 교(종교)를 믿느냐고 묻는 거다. ‘너 신을 믿어?’ 하는 물음과는 다른 이야기다. 교를 믿는 것과 신을 믿는 것은 다르다. 기독교든, 불교든, 도교든 모든 종교의 궁극에는 ‘저절로 굴러가는 바퀴”와도 같은 게 있다. 스스로 움직이는 절대의 존재다. 인간은 단 1초도 무엇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존재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자율자동차라는 말, 유발 하라리가 말하는 ‘호모 데우스’ 같은 말처럼 공허하게 들리는 것도 없다.”

 

Q : 이어령의 삶,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
A : “인간이 죽기 직전에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유언이다. 나의 유산이라면 땅이나 돈이 아니다. 머리와 가슴에 묻어두었던 생각이다. 내게 남은 시간 동안 유언 같은 책을 완성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