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와 축복

부적이 되어 버린 십자가

주님의 일꾼 2019. 7. 29. 18:11






" 부적이 되어버린 십자가 " ...


구원은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값없이 받는 것이고, 더불어 나는 예수님을

입으로 시인했으니 이미 구원받았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여러 사람들이 십자가를 마치 부적인 양 생각한다며 염려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오늘날 수많은 신자들에게 십자가는 이미 부적이

되었다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부적은, 악귀를 쫓고 복을 가져다 준다고 믿어, 붉은 색으로 그림 글씨

기호 등을 그린 종이로서 벽에 붙이기도 하고, 베개 속에 넣기도 하고,

옷 속이나 지갑 속에 간직하기도 합니다. 그 중에 전제부 와 왕생정토부

라는 것이 있답니다. 전제부는 복과 장수를 비는 부적이고, 왕생정토부는

죽게 된 사람이 지옥에 가지 않고 극락에 가게 해주는 부적이랍니다,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십자가가 새긴 목걸이나 반지를 차고 다닙니다.

이런 현상은 초대교회 당시에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나무에

달려 죽는 십자가는, 저주받은 형벌로써 끔찍하고 잔인한 사형 틀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 십자가가 기독교인들이 사랑하는 십자가로

바뀐 것은 로마 콘스탄티노 황제가 교회 건물에 십자가를 세운 덕분이기도

하지만 오늘날은 좀 더 다른 이유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대부분 신자들이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 공로로 구원을 받았고 그 피로

죄사함을 받았다며 십자가를 칭송하고 크신 사랑에 감격합니다, 십자가

구원사역은 하나님의 사랑으로써 위대하고 전 인류를 구원하고도 남을

만큼 완전합니다. 문제는그렇다고 전 인류가 구원받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대다수 교인들은 “물론이지! 예수를 믿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지. 나는 예수를 구주로 시인했으니 십자가은혜로 천국에 가는 것이지”

라며 천국은 따 논 당상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말씀을 보면 시인하는 것뿐만 아니라 회개하고 돌이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못을 박고 있습니다. (요 3:5)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4-15)

말씀하셨듯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약에

나오는 “놋 뱀 사건” 을 면밀히 상고해야 한다고 사료됩니다. 그 사건은

훗날에 예수님이 이 땅에 성육신하여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 돌아가시는

구원사역을 알려주는 매우 적합한 예시요, 하나님의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 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민 21:9)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과 모세를 불평하고 원망하므로 많은

사람들이 불 뱀에 물려 죽어갔습니다. 불 뱀은 처음부터 항상 광야에

있었습니다. 맹렬한 독을 가진 독사에게 물린 자들은, 여호와를 불평하고

원망함으로써 주님의 보호에서 벗어나 스스로 화를 자초한 것입니다.


이에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을 회개하는 자들이 모세에게 "우리가 범죄

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라고

간청했고 여호와께서는 "놋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그것을 쳐다보는

자는 살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방법에는 조건이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그저 모세에게 “네가

놋 뱀을 만들어 나에게 봉헌하라. 그 사실을 인정하고 믿는 자는 모두

살려주리라” 하지 않으시고, 각자 놋 뱀을 바라보아야 산다고 하셨습니다.


뱀에 물려 다 죽게 된 몸을 이끌고 장대 위에 있는 놋 뱀을 쳐다보기

위해 누워있던 장막에서 나오는 자들에게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

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보통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민족의 숫자를

2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 많은 인구가 장막을 치고 거주하는

공간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넓은 지역일 것으로 사료됩니다. 병자들은

오랜 시간을 걷거나, 또는 주위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했을지도 모릅니다.


어떤 이는 “우리가 지금 뱀에 물려 다 죽어가는데 웬 뱀? 그것도 금도

아니고 겨우 놋으로 만든 놋 뱀? 그걸 쳐다보러 가다가 죽겠다!” 라며

주저하다가 죽은 자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반면 자신의 범죄를 진실로

회개하고 통회하면서 아픈 몸을 겨우 부여잡고 죽기살기로 장막에서 나와

놋 뱀을 바라본 자들은 모두 살았습니다. 그들의 태도와 반응이 믿음이며,

믿음은 ‘바라보라’ 는 말씀에 기꺼이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예수님이 십자가로 다 이루셨다. 십자가만 바라보라 그러면

누구나 다 문제없이 구원받는다” 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크게 놓치며

간과하는 것이 있습니다. ‘놋 뱀 사건’ 의 진정한 의미는 불 뱀(마귀)에게

물린 사람들이 치료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즉 뱀(마귀)의 독(죄성)이

그 사람들에게서 사라졌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치료의 하나님’ 이십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을 치료해주셨고, 그들의 병의 증세가 사라졌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우리의 죄를 담당하고 놋 뱀이 되어 돌아가신 주님을 바라보며

치료 곧 구원을 받았다면 우리의 영적 병(죄성)의 증세도 사라져야 합니다.



아직도 뱀 독(죄성)의 증상이 계속 남아있다면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우리를 구원하는 능력뿐만 아니라 우리를 죄에서 벗어

나게 해주는 치료의 능력이 있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십자가 보혈은 죄를 용서하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 양심을 깨끗게 하여

죄를 씻기고 주님을 올바로 섬기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벧전 3:21)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히 9:14)


나의 옛사람의 죽은 행실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보혈의 능력이 나에게

효력을 발생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 변화가 없으면서 그저 십자가 은혜로

이미 회개하고 거듭나 구원받았다고 하는 것은 자기 기만이며, 십자가

은혜를 그저 부적처럼 맹목적으로 믿는 것일 뿐입니다.


“만일 누가 아무것도 되지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니라

…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 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심은 대로 거두리라” (갈 6:3-7)

그리스도 십자가를 바라보며 고침 받은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들은 마지막

날에 ‘너희를 도저히 모르겠노라’ 는 주님의 선언을 듣고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사람들이 되기 쉽습니다. 왜냐하면 심은 대로 거두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십자가를 찬양하고 높이며 ‘주여 주여’ 부르고 또 십자가를

붙들고 눈물로 기도하면서도 버림받는 처참한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은 십자가의 참된 능력과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막연히 구원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라” (히 12:1-2)

위 말씀에 “우리가 조금 부족할지라도 입으로 시인만 하면 구원해 주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라” 고 기록되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값싼 복음은 마귀의 유혹으로써 오늘날의 선악과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정말 온전케 만드시는 능력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 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고 일컬었더라” (왕하 18:4)

이스라엘 민족들이 히스기야 왕이 집권할 때까지 모세가 만든 놋 뱀 자체에

무슨 신통한 능력이 있는 줄 알고 놋 뱀을 높이며 자신의 질병을 고쳐주고

복을 가져다 주는 우상으로 섬기고 있었습니다. 성경의 사건들, 특히 놋 뱀

사건은 말세를 만난 우리에게 거울로, 교훈으로 기록된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십자가를 지옥을 면해주고 세상에 속한 복과

소원 등 육체의 소욕을 이루어주는 놋 뱀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이 빠진 십자가가 많은 신자들에게 우상이 되고 부적이 된 것입니다.

이는, 사탄이 십자가를 누구나 무조건 구원해주는 하나의 상징으로 만들기

위해 사주한 거짓 교리들 때문입니다. 그런 우상과 부적은 부숴져야 합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에덴으로 회복시키기 위함이고,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되는 치료의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바로 치료

받아 변화되는 은혜가 거듭남입니다. 더불어 성경에서 말하는 십자가의

은혜는 약속하신 성령의 인치심을 받은 신실한 성도들 곧 거듭난

성도들에게 적용되는 것이라는 것을 유념해야 합니다.



“사도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한

자들(거듭난 성도들)에게 편지 하노니 …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엡 1:1-19)



성령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우리에게 베푸신 큰 능력이 무엇입니까?

“저가 모든 자를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후 5:13-17)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 오직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게 만드시는

능력이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교회를 몇 십 년 다녔어도 주님을 위해 사는

성도로 변화되지 못하였다면, 그 사람은 주님을 믿은 것이 아니라 어쩌면

천국을 가기 위해 십자가 보혈과 은혜라는 부적을 믿은 것이기 쉽습니다.

“다만 성령의 나타냄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였노라”(고전 2:4-5)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없기 때문에 또 죄를 지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십자가 보혈의 은혜로만 구원 받아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은

사람의 지혜이지 성경에는 그런 말씀이 없습니다. 치료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것이 십자가를 올바로 바라보는 믿음이요 복음입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롬1:16)


나의 죄 때문에 주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고 고백하면서 다시 짐짓

계속해서 죄를 범하며 십자가 사랑과 은혜로 구원 받았다고 확신하는 것은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참담한 행위입니다. 은혜는 주님께 굴복

하여 죄를 버리고 주님 말씀대로 살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죄가 사망 안에서 왕노릇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롬 5:21)



우리 모두는 참된 은혜를 모르고 거짓 은혜에 감쪽같이 속아 버림받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성령으로 거듭나, 십자가가 부적이 아니라 주님만을

위해 살게 해주는 ‘능력’ 임을 경험하는 믿음으로 천성문을 넉넉히 통과

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글쓴이 : 송전서님 (2019.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