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나눔

평양장대현교회의 부흥의 불길

주님의 일꾼 2020. 9. 14. 21:59

 

        평양장대현교회의 부흥은 한국교회의 초기에 내려진 너무도 아름다운 부흥의 출발이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때의 부흥의 역사를 기억 하시는 분들은 이 조국의 교회에 그때와 같은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길 갈망 하고 있습니다. 물론 오늘날에도 부흥회가 있어 왔지만 어딘가 모르게 그때의 감동은 없는 듯합니다. 그렇다면 그때와 지금과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우선 1903년 부흥의 불씨는 하디선교사가 자신의 죄를 통회 자복하는 회개가 부흥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그 후 1907년이 되었습니다. 해마다 설날이 되면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은 10일 동안 성경 공부를 위해 모이는 것이 관례였다고 합니다. 이들은 자신이 먹을 양식을 짊어지고 지정된 장소에 모였는데 그곳이 평양의 장대현 교회였습니다.
        약 1500명의 교회 지도자들이 모였고 이미 선교사들은 6개월 동안 한국교회에 강권적인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기도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집회가 시작되기 전에 대 여섯 명의 선교사들이 기도하기 위하여 함께 모였는데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역사해 주시기를 탄원하였습니다. 그중의 한 선교사는 이렇게 기록을 했습니다. "우리는 성령에 사로잡혀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해 주실 때까지 그 분을 놓지 않으려 했다" 드디어 집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간단한 설교가 끝이 난후에 기도를 시키려고 했지만 지원자가 너무 많아 누구를 지명할 수 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사회자는 "여러분이 그렇게 기도하기를 원하신다면 다 함께 기도 합시다"라고 선포를 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한국식 통성기도의 원조입니다. 이것을 후일에 한 목격자는 "기도의 바다에 밀려오는 파도처럼 기도 소리와 성령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음날 화요일 집회에서는 놀라운 사건이 하나 일어났습니다.
        한국인 목사 중에 김 모 목사와 강 모 목사님이 서로를 적대시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고 합니다. 김 목사님이 강대상에 나와서 자신의 죄를 회개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당연히 김 목사가 강 목사를 미워한 것을 회개하겠거늘 짐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강대상을 붙잡고 "나는 하나님께 대항해 싸운 죄가 있습니다. 나는 강 목사뿐만 아니라 방목사도 미워했습니다. 방 목사님 저를 용서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방 목사는 선교사였는데 한국식 이름입니다. 사람들은 김 목사가 선교사 방 목사를 미워한 것에 대하여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사소한 요구를 거절했던 방 목사를 미워했노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방목사가 기도를 했습니다. <아바지여 아바지여...> 이것이 그가 할 수 있는 기도의 전부였다고 합니다. "마치 건물의 지붕이 걷히고 하나님의 성령이 하늘로부터 태산의 눈사태처럼 우리들 가운데 내려와 덮치는 것 같았다.

    나는 김 목사 곁에 쓰러져 흐느끼며 전에는 드려 본적이 없는 그런 기도를 드렸다" 방목사의 회고입니다. 그러던 중 주일 저녁 예배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때 길선주 목사가 일어서서 자신의 죄를 자백하였습니다. "나는 아간과 같은 자입니다. 약 1년 전에 내 친구 중 한사람이 임종 시에 나를 자기 집으로 불러서 말하기를 '길 장로, 나는 이제 세상을 떠나지만 내 집 살림을 돌보아 주시오'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 미망인의 재산을 관리하면서 미화 100불상당의 금액을 사취(詐)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방해한 것입니다.
    내일 아침에 그 돈 전액을 그 미망인에게로 돌려 드리겠습니다…." 길 목사는 보기에 비참할 정도로 땅바닥에 구르며 회개했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형제들을 질시한 것과 선교사를 극도로 미워했다는 것도 고백하며 자복했습니다. 다른 한 교인도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죄를 통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음란과 증오를 고백하면서 자기 아내를 사랑하지 못한 죄까지 회개했습니다. 그 교인 역시 회개하며 스스로 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울었습니다. 이어서 온 교인들이 따라 울면서 자신의 죄를 내어놓고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밤에는 새벽 2시가 지나서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이 평양장대현교회의 부흥은 먼저 교회 지도자들의 회개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리고 집회는 성경을 가르침으로 자신의 영적인 모습을 발견하게 하는 사경회 형태로 진행되었고 자신의 추한 모습을 발견한 성도들의 죄를 회개하는 통회자복의 역사를 통해서 죄 사함의 기쁨과 실제로 삶속에 들어가서도 삶이 변화되고 있는 증거를 보였다는 것입니다 폭력을 쓰던 사람은 자신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찾아가 일일이 용서를 구했고 장사로 부당한 이득을 취했던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대자보에 회개하는 글을 붙이고 실제로 배상해주고 용서를 구했고 뭔가 사회에 해악이 되는 업종의 직업을 가진 자들은 그것을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모색하기 시작 했단 사실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