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나눔

MBC앵커 조정민씨의 간증

주님의 일꾼 2008. 9. 20. 22:36
퍼온 글입니다. 읽어 보시고 인생과 신앙에 대해 생각 보세요. 오늘도 즐거운 하루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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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뉴스데스크 앵커로 잘 알려져 소위 ‘입신양명’한 조정민(52)씨 ...



그가 '신학공부'를 위해 얼마전 미국 보스턴으로 떠났다.

25년 전 MBC기자로 입사해 워싱턴특파원,앵커,보도국 부국장 그리고

미국으로 떠나기 직전까지 MBC 계열사 iMBC 대표 등을 지냈던 경력으로

볼때 목회자가 되기 위한 파격적 전환은 세상적인 관점에서 이해가 안가는

측면이 많았다.

"오만과 욕망이 나를 망쳐 왔습니다 "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독한 마음을 품고 노력해 권력을 얻어서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야망이

있었어요.

언론인 생활도 권력을 쥐기 위한 방편이었습니다.

방송을 통해 유명해지니 정말 내가 파워풀한 사람이 됐구나 하는 착각

에 빠지기도 했어요.

청와대 출입기자 때 내게 줄서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오만에 빠져 있다보면 존경하는 사람도 없어져요.”

그는 언론인으로서 ‘사북사태’ ‘광주민주화항쟁’ ‘일본 와카나이

KAL피격 사건’ 등 굵직한 사건 현장에 꼭 있었다.

걸프전쟁이 터져 서울과 워싱턴간의 시차에 따른 방송 준비와 취재 등

으로 종군기자 못지 않은 고생을 하면서 승승장구했다.

그는 성공을 향해 질주하는 기관차였다. 일이 최우선이었고 이러한 가치

관에 방해되는 것은 그로하여금 분노를 일으키게 했다.

아내 홍지혜(44)씨가 매일 늦는 그에게 잔소리라도 해대면 “결론만 말해”

라고 잘라 말하고 쓰러져 자는 전형적인 한국의 가장이었다.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소주 10여 병을 비우는 폭음과 싱글 실력의 골프

마니아로서 필드에서 풀었다.

“아내가 보기에는 저 잘난 맛에 사는 인간이었겠지요.

내 어리석은 생각으로 20대에는 세상을 바꾸고 싶었고, 30대엔 아내를

바꾸고 싶었고, 40대 들어선 자식을 변화시키고 싶었지요.

아내나 두 이이들 모두 폭압자인 가장 때문에 우울해하고 고통 받았어요.

성공적인 경력관리가 우선되다 보니 집이 이사를 해도 어디로 했는지

몰랐을 정도니까요.”

나의 ‘성공’은 가족의 희생을 요구한다

가정을 등한시하는 남편에 지친 홍씨는 신앙에 의지해 힘든 하루하루를

견뎌 나간다.

새벽기도와 통성기도로 남편의 회심을 간구했다.

그러나 조씨는 오히려 아내가 광신에 빠진 것으로 알고 짜증을 냈다.

시름시름 아팠던 홍씨에게 새벽 기도는 버거운 일이었는데도 나가는 것

을 보고 철없는 아내를 제 자리로 돌려놓아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1997년 어느날. 그날도 교회 옆 골프연습장에 나간 조씨는 연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다 도대체 아내가 교회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기 위해

교회 문으로 들어섰다.

“제게는 충격적인 장면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그 이른 새벽에 통성기도와

방언을 하고 더러는 눈물을 흘리고 단 위에서는 소리를 지르고…아내를

망치겠다 싶어 정신이 번쩍 들더라구요.

다행히 아내는 몸부림치며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묵상을 하고 있

길래 빼낼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예배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찬송가 483장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가 제 마음을 끌어 당기는 겁니다.

그 순간부터 예수께 무릎을 꿇었습니다.”

나이 50이 되도록 처자식 하나 제 마음대로 안된다는 불만은 그 순간부터

사라졌다. 아내에게 ‘결론’만 요구하는 대화 습관을 고쳐나갔고 ‘예,

아니오’만 강요했던 자녀들에게도 사랑으로 대하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1년여. “나는 당신이 자랑스런 남편이요,아이들의 훌륭한

아버지이자 주님을 섬기는 신앙인인걸 인정한다”는 아내의 얘기를 듣고

특파원이나 앵커가 됐을 때보다 더 큰 기쁨을 느꼈다고 말했다.

일 중독으로 살아가면서 영혼이 죽어가는 듯한 느낌도 사라졌다.

교회에서 운영하는 ‘아버지학교’를 졸업하고 사랑으로 자녀를 대하자

아이들은 “아버지,저희는 아버지를 진심으로 존경해요”라고 고백해왔다.

그 후론 그토록 다그치던 ‘공부해라’는 식의 억압이 필요없었다.

사랑만이 진정한 혁명을 가져온다

“일 중독은 가족의 희생을 가져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술을 끊고 가족과 이웃을 향한 문을 열어놓고 예수의 사랑을 전하는 것

처럼 기쁜 일이 없어요.

예수 믿은 후로 세상적 권력과 결코 저울질 해본적 없어요.

70여 차례의 신앙 간증을 통해 사랑을 알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제겐 더

소중할 뿐입니다. 교회는 사랑을 실천하는 정말 따뜻한 조직입니다. ”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가족과 함께 공부하러 떠나는 그에게 살림을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자 “하나님이 주권으로 해결해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

했다.

묵묵히 믿고 따른다는 것이다.

“학교를 졸업하게 되면 어디서 하나님의 사역을 하게될지 모르겠으나

하나님이 내 인생의 과거를 하나도 버리지 않고 유용하게 쓰실 것을 믿

는다”고 말했다.

인생의 허리를 지배했던 '언론인'이였던 그가 그렇게 예비 목회자의 길

로 들어섰다.

아! 이렇게도 열심히들 主를 위해 뛰고 있는데,,,

-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
(이사야 40: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