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화진 선교사묘지를 다녀와서
- 언더우드조 -
GNP선교학교의 교육과정으로 양화진에 다녀왔다. 양화진 선교사묘지에는 우리나라의 선교를 위하여 각국에서 오신 선교사와 그의 가족들이 묻힌 묘가 있었고, 교회가 하나 있었다.
간단하게 식사를 마친 우리는 양화진 선교사묘지를 관장하는 한 여자 전도사로부터 양화진 선교사 묘가 생긴 배경이며, 우리나라를 위해 선교하신 외국선교사님들의 이 나라에 선교사로 파송된 배경과 그들이 선교를 위해 당한 고난, 그리고 그들의 선교에 대한 열정 등에 대하여 들었다.
여전도사로부터 설명을 듣고 우리는 선교사 묘지를 빙둘러보며 김태욱 선교사님으로부터 아펜젤러 선교사님, 언더우드 선교사님, 홀 선교사님 등 많은 선교사님들에 관한 선교 이야기를 들었다.
묘지를 하나 하나 둘러보고 그들의 선교에 관한 설명을 들으면서 나의 마음에는 이 나라 복음화를 위해 그 귀한 선교사를 보내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주님이 주신 세계복음화를 위해 일생을 헌신했던 선교사님들 열정을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었다.
뒤돌아 보면 조선후기와 일제시대 그리고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상황은 지금의 인도, 몽고, 미얀마 등 동남아국가 그리고 아프리카의 국가들 보다 결코 나은 상황이 아니였다.
많은 사람들이 끼니를 때우지 못하였고, 각종 질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야 했으며 국민들은 피폐한 삶속에서 희망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던 상황이였다.
초기 선교사들은 그러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이 나라 복음화를 위해 교회와 학교, 그리고 병원을 세우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복음을 전파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그들은 많은 어려움에 봉착하였으며, 때론 질병으로 자녀와 배우자가 죽기도 하는 슬픔을 겪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들 선교사들이 그러한 어려움과 슬픔을 겪으면서도 이 나라 복음화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않고 헌신 봉사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인가 ? 그것은 그들의 헌신과 봉사, 그리고 죽음이 미래에 이 나라 복음화라는 아름다운 꽃을 크게 피울 것임을 믿었고, 그들의 헌신과 봉사를 하나님이 천국에서 모두 보상해 주실 것을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많은 선교사들의 삶이 나를 감명시켰지만 특히 감동적인 이야기는 한 캐나다 자매의 이야기이다. 그녀는 당시 이름도 알려지지 않는 이 나라 복음화를 위해 행복했던 조국 캐나다의 생활을 접고 이땅에 왔다.
이나라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고 이 나라 언어를 배우던 도중 질병으로 사망한다. 그녀를 사랑했던 캐나다교회 교인들은 그녀의 죽임에 애도했고, 그녀가 그토록 사랑했던 조선에 관심을 갖고 조선을 위해 기도하고, 물질로 후원하였으며 이 나라 복음화에 큰 역할을 하게된다.
어찌보면 초라했던 그녀의 죽음은 그러나 이 나라 복음화를 위한 큰 불씨로 작용하게 되었다. 결국 하나님은 그녀의 세계복음화에 대한 아름다운 마음을 결코 좌시하지 않으신 것이다. 이와 같은 캐나다 자매에 대한 김태욱 선교사님의 이야기는 나의 마음을 크게 감동시켰고, 선교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가지게 하였다.
양화진 선교사 묘지를 돌아보면서 그들의 이 나라에 대한 사랑과 헌신, 봉사 그리고 그들로 인한 축복에 비하면 우리 국민들의 그들에 대한 관심은 지나치게 낮고, 평가 또한 낮음을 느꼈다.
양화진 선교사 묘지를 다녀오기 전 나 역시 그들 선교사에 대하여 관심이 없었으며, 그들에게 고마음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그들의 삶이 얼마나 위대한 삶이였는가를 알았고, 그들에게 우리가 얼마나 빚지고 살았는가를 가슴 깊이 느꼈다.
복음에 빚진자로서 나도 이제 세계복음화에 작게 나마 기여하고자 한다. 물질로 기도로 그리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선교사로 봉사하고자 한다.
2005년 5월 어느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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