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퍼온글)노무현 전 대통령이 과연 우리의 우상인가 ?

주님의 일꾼 2009. 6. 5. 09:46

퍼온글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실체를 잘 알게 해주늘 글이라 생각되어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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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피의자 신분이었던 노무현이 자살을 했다. 그후 좌파 매체들과 노빠들이 조직적으로 분향한 사람을 의도적으로 부풀렸고 그의 행적을 미화시켰다. 다음은 그가 대한민국에 얼마나 많은 해를 끼쳤는지를 보여주는 글이다.

1. 군사적 이적행위

(1) 노무현은 북한정권이 핵실험을 한 시점을 택하여 절대다수 국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북억지력의 핵심인 한미연합사 해체 계획을 확정했습니다. 그는 한미양국이 공유하고 있는 전시작전통제권을 마치 미군이 독점하고 있는 것처럼 과장하여 『작통권 환수』라는 말을 계속 사용하는 등 한미연합사를 해체하는 전과정에서 반미를 선동하고 소위 자주를 내세워 국민을 속여 왔습니다.
△한미연합사 아래서 공동결정권을 갖는 한국 대통령이 『어느 시설에 폭격할 것인지도 마음대로 결정 못 한다(2006년 12월21일)』는 말이나,
△NATO 등도 한미연합사와 같은 체제로 운용됨에도 『한국만이 작통권을 갖지 않은 유일한 나라(2006년 12월21일 외)』라는 주장,
△한미연합사 해체로 최소 621조원의 추가비용이 예측되는 상황에서 『작통권 환수로 들어가는 예산은 미미할 것(2006년 8월9일 발언)』이라는 말도 노무현은의 계속되는 거짓말 중 하나였습니다.

(2) 2006년 10월8일 북한의 핵실험은 노무현의 오판과 방관, 은폐 속에서 가능했습니다. 노무현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자신을 지키기 위한 억제수단이라는 주장이 일리 있다(2004년 11월12일 발언)』,
△『북한이 핵을 개발하는 것은 선제공격용이 아니라 방어용(2006년 5월29일 발언)』이라는 등 북한의 핵무장을 옹호하는 발언을 계속하는 한편, 대북퍼주기를 강화하여 북한의 군비증강을 지원했습니다.
노무현은 심지어
△『미사일 발사는 미국에 양보를 요구하는 정치적 압박행위(2006년 7월11일 발언)』,
△『포용정책은 궁극적으로 포기할 일이 아니다...지나친 안보민감증도 위험한 것(2006년 10월9일 발언)』이라는 등 북한의 미사일도발과 핵실험 직후에도 대북제재는 커녕 북한정권을 두둔하며 퍼주기를 계속해야한다고 나섰습니다.

(3) 노무현은 그가 견지해 온 반역적 사상의 연장선상에서 2007년 10월4일 서해북방한계선(NLL)을 가로지르는 海域에 공동어로구역, 평화수역 등을 설치키로 북한정권과 합의, 수도권 방어의 최일선을 무너뜨리는 시도에 나섰습니다.
이후에도 해상휴전선인 NLL에 대해 『일방적으로 그은 선이다』, 『영토선이라는 것은 국민 오도(이상 2007년 10월11일 外)』라는 등 주권적 지배가 미치는 「영토(Territory)」를 북한에 양여하고, 주권적 권리와 관할권이 미치는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양보하는 위헌적인 NLL 무력화 선동에 나섰습니다.

(4) 노무현은
△주적개념을 없애 군대의 존립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고(2005년 국방백서),
△군대를 『썩는 곳』으로, 군원로들을 『거들먹거린다』고 비방하는(2006년 12월21일 外) 등 反軍선동에 앞장서는 한편,
△일방적 감군을 선언하고 사병 복무기간을 단축(短縮)했으며,
△『미군은 감축해도 된다』고 주장하면서,
△정작 국방개혁에 대해서는 『특별히 돈 들것 없다』며 국군과 미군 감축을 보완할 무기개발 의사가 없음을 드러냈습니다.
노무현은
△휴전선상의 대북방송을 중단시켜 김정일의 골치덩어리를 제거하고 북한군인들의 외부 정보源을 없애버렸으며(2004년 6월15일),
△북한정권의 군사력 강화에 쓰이는 북한의 달러위조 등 국제범죄에 미국이 단속에 나서자 이에 협조하지 않고 사실상 방해했고,
△김정일 눈치를 봐가면서 군사훈련을 축소하는 한편 △국군포로와 납북자 송환을 위한 노력은 일체 하지 않았습니다.

(5) 노무현은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에 보낸 쌀이 북한군의 군량미로 쓰이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지속해왔습니다. 노무현의 지휘·책임 아래 있는 정부 당국은 대북지원 쌀의 북한군 유출을 지난 5년간 여러 차례 포착했음에도 이를 묵인해왔으며, 빈번한 남북접촉 과정에서도 북한에 이의제기는커녕 사실 확인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노무현은 교전중인 적군에게 군량미를 대주는 가장 극단적 반역과 이적행위를 저지른 것입니다.
대한민국에 대해선 적대적이고 주적인 북한정권에 대해서는 우호적이었던 이 같은 행태는 △주적의 내란행위인 對南적화공작을 방조하는 것인 한편
△대한민국의 군사상이익을 해(害)하고 주적의 군사상이익을 공여하고
△적국과 합세하여 대한민국에 항적(抗敵)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2. 헌법과 법치에 대한 정면 도전

(1) 헌법수호가 第一임무인 대통령의 헌법파괴는 대통령이 범할 수 있는 가장 큰 범죄일 것
입니다. 노무현은 反국가단체인 북한정권이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혁명(NLPDR)」 노선아래 「국보법폐지-미군철수-연방제」라는 내란(內亂) 선동을 지속해왔음을 잘 알 수 있는 직책에 있으면서도, 북한의 對南노선에 동조하면서 특히 국체와 관련되는 헌법의 심장 제1, 3, 4조를 집중적으로 위반해왔습니다.

(2) 노무현은 적화로 가는 연방제-연합제 혼합방식의 통일방안을 추진했습니다. 그가 주장하는 연합제는 헌법 테두리 내 남북연합이 아니라 헌법을 위반한 국가연합입니다. 이는 2004년 2월24일 발언에 나오듯, 남북한을 각기 『지방정부(地方政府)』로 상정한 개념으로서 북한을 국가로 인정해선 안 된다는 헌법의 명령을 무시한 것입니다. 노무현의 위헌적인 통일발상은 북한식 연방제를 수용한 6·15선언 실천과 이를 再수용한 2007년 10·4선언으로 이어졌습니다.

(3) 노무현은 『한국에서도 공산당이 허용될 때라야 비로소 완전한 민주주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2003년 6월10일)』고 말한 데 이어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국보법의 합헌성을 확인한 직후 『독재시대의 낡은 유물은 폐기하고 칼집에 넣어서 박물관에 보내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2005년 9월5일)』라며 국보법폐지를 선동, 헌법정신과 국체를 모독했습니다.

(4) 노무현은 민주화운동보상위원회가 간첩전력자를 비롯해 확정판결을 받은 각종 反국가단체, 이적단체, 金日成주의조직(소위 主思派조직), 공산주의혁명 연루자들을 민주화운동가로 인정하여 국민세금으로 보상, 기념하고 있는데도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함으로써 司法제도를 훼손하고 法治를 파괴했습니다.

(5) 노무현은 국보법철폐-미군철수-연방제라는 북한의 對南적화노선을 추종해 온 친북좌파단체의 무장폭동을 事前에 저지할 수 있었음에도 방치했을 뿐 아니라, 事後에도 엄정한 법집행을 하지 않았습니다. 평택 무장폭동 때는 군인이 방패만 갖고 나가도록 하여 좌익무장폭도들로부터 군인이 얻어맞고 도망 다니게 했습니다. 不法폭력시위를 엄정진압한 경찰청장을 물러나게 했으며, 국무총리가 불법적인 좌익무장폭동과 경찰의 합법적 진압을 同格으로 놓고 兩非論을 펴도 이를 방치했습니다.

(6) 노무현은 헌법 개정 사안인 수도이전, 즉 천도를 신행정수도로 포장하여 국민들을 속이려다가 헌법재판소에 의하여 위헌결정이 나자, 이를 포기하지 않고 수도를 분할하는 행정복합도시로 변형시켜 추진, 국가 정통성의 상징인 수도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국가운영의 효율성을 약화시켰습니다.

(7) 노무현은 자신과 측근들의 부패혐의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진행되자 대통령 재신임 국민투표를 제안했습니다. 대통령의 재신임을 국민투표에 묻는 것은 위헌인데도 이를 강행하려다가 국회의 탄핵의결을 당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이 행위를 헌법위반으로 규정하고 경고조치했으나 그 뒤에도 노무현은 반성 없이 헌법위반 행위를 계속했습니다.

(8) 노무현은 공개연설에서 대한민국 건국을 「분열정권 수립」, 헌법을 「그놈」, 보수적 국민들을 「별놈」이라고 모욕하면서도, 2003년 訪中 시에는 2000만을 학살한 모택동을 존경한다고 말하고, 2007년 10월 訪北 시에는 700만을 학살한 김정일의 무병장수를 기원했습니다. 노무현의 이 같은 헌법파괴행위는
△주적의 내란행위인 對南적화공작을 방조하는 것인 한편 △대한민국의 군사상이익을 해(害)하고 주적의 군사상이익을 공여하고
△적국과 합세하여 대한민국에 항적(抗敵)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3. 간첩과 공산주의자 비호

좌경적 사상에 충실했던 노무현은 전향 여부가 불분명한 386주사파 출신 공산주의자 등 친북이적전력자들을 대거 등용했습니다. 그는 이들로 하여금 국가기밀과 국가예산을 다루게 하는 한편 국가주요 정책의 입안과 추진에 관여케 하여 북한정권에 이롭고 대한민국에 위태로운 활동을 하도록 했습니다.
노무현은 특히
△북한의 對南공작원으로 확정판결된 송00 에 대한 검찰수사를 방해할 목적으로 국회연설을 통해 선처를 주문하는 방식으로 압력을 행사하고(2003년 10월13일),
△개전(改悛)의 情이 전혀 없는 재범간첩 민00 가 刑期의 반밖에 채우지 않았는데도 그를 직접 사면 복권시켜 석방한 뒤 북한방문을 허용했으며(2005년 8월15일),
△조총련 소속 거물간첩 박용의 국내입국을 허락, 反국가활동의 자유를 부여했습니다(2005년 8월15일).
노무현의 이 같은 행위는 △
주적의 내란행위인 對南적화공작을 방조하는 것인 한편
△적국과 합세하여 대한민국에 항적(抗敵)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4. 反국가·利敵단체 등 지원

노무현은 △한총련 등 이적단체가 주도한 소위 금강산 南北공동행사에 통일부가 억대의 후원을 지속케 함으로써, 『국가변란을 목적으로 한 反국가단체인 북한에 동조하는 조직』으로 判示돼 온 이적단체의 국가변란을 간접 지원했고,
△실천연대 등 각종 친북단체에 정부기관을 통한 억대의 지원에 나섬으로써 대한민국의 친북좌경화를 구조적으로 심화시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