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와 축복

가장 끔찍한 형태의 영적 교만

주님의 일꾼 2010. 6. 21. 19:27
 

      가장 끔찍한 형태의 영적 교만         -릭 조이너-

 

우리가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이 어떤 주목이나 인정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교회 역사의 커다란 아이러니 가운데 하나는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도둑질하지 않기를 가장 갈망하는 사람들은 진정한 하나님의 운동을 경험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 그들이 주님께서 자기들에게 보내신 사자들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대개 하나님의 영광을 사람에게 주기를 원치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바로 사도 바울이 담대하게 자신의 사도권을 옹호했던 이유이다. 그가 그들에게 찾아간 목적을 그들이 깨닫지 못하면 그 교회들을 향해 올바로 사역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선지자의 상을 받으려 한다면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해야 한다(마태복음 10:41). 우리가 선지자를 단순히 교사나 형제로 영접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수도 있는 것을 놓치게 될 것이다. 똑같은 원리가 모든 사역에 적용된다.

우리가 목사 사역의 상급을 받고자 한다면 목사를 목사로 영접해야 한다. 복음 전도자와 교사, 혹은 사도에게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시는 선물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자 안에 있는 하나님의 선물을 알아보아야 한다.

 

우리가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야고보서 4:6)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기 위해서는 겸손이 필요하다.

우리가 합당한 사자라고 간주하는 통로를 통해서만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으려고 하는 것은 교만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의 은혜를 위임하시기 위해 이런 겸손을 찾고 계신다. 겸손이 크면 클수록 그만큼 은혜도 더 커진다.

니느웨는 요나와 그의 메시지를 받아들인 데서 특별한 겸손을 보여주었으며 그로 인해 특별한 은혜를 받았다. 1세기의 이스라엘은 그들을 창조하신 바로 그분을 거부함으로써 엄청난 영적 교만을 보여주었으며 그로 인해 니느웨가 피했던 멸망을 받았다.

 

겸손을 추구하는 것은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추구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스스로를 높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몸에 경찰이 되려고 하는 자들은 끔찍한 형태의 영적 교만에 빠지게 된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공급의 통로로 보내신 사람들을 거부하는 것은 종종 우리로 하나님의 은혜를 놓치게 만든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그를 “하나님의 천사”로 영접한 것에 대해 칭찬한 바 있다. 그의 육체가 그들에게 시험거리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를 영접했던 것이다.


웨일즈 사람들은 바로 자기들 가운데서 성장한 사람을 하나님으로부터 온 선지자로 영접함으로써 전례 없는 겸손을 보여주었다. 이런 겸손의 결과는 그에 상응하여 부어진 하나님의 은혜, 즉 너무나 강력해서 온 세상을 놀라게 한 은혜였다.

 

그릇되게 사람을 높이는 것과 그들을 합당하게 영접하는 것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태복음 21:40)

사람들이 한 나라의 대사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영접하는 것은 그 나라를 존중하는 것이다. 합당한 의례를 갖춰 그를 영접하지 않는 것은 그 나라의 명예를 더럽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주님의 대사들을 얼마나 더 큰 존경심을 가지고 영접해야 하겠는가? 누군가를 합당하게 존경하는 것과 그를 숭배하는 것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주님은 사람들을 존중하시며 높여주신다. 실제로 그분은 사람들을 높여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누가복음 18:14) 야고보는 이렇게 말했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야고보서 4:10)

우리 자신을 낮추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고 높여주시는 것은 하나님이 하실 일이다. 여기서 그분의 말씀은 분명하다. 만약 그분이 하실 일을 우리 자신이 하려고 한다면 그분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우리에게 대신해 주실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이웃을 낮춰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곳은 어디인가? 그리고 목사들이나 정부 지도자들을 낮춰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구절은 어디 있는가? 그것은 가장 근본적인 교만 가운데 하나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신 사자들을 합당하게 존경하면서도 그들을 숭배하지 않는 올바른 균형점을 발견하는 것은 실로 중요한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