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 감사합니다." 터키전 종료 직후 이영표(25·안양 LG)는 무릎을 꿇었다. 두 손을 모은 채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조용하고 차분하게 신에게 감사를 드리며, 그는 그렇게 월드컵을 마무리했다. 포르투갈전 박지성의 결승골과 이탈리아전 안정환의 골든골을 이끌어낸 이영표. 그의 오른발은 두말 할 나위 없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월드컵 직전 갑작스런 부상을 딛고 일어선 결실이었기에 그의 활약상은 더욱 빛났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 이영표의 털어놓는 ‘월드컵 간증’을 들어본다. ■나락으로 떨어지다 지난달 2일 훈련 중에 나뒹굴었다. 볼다툼을 하다 차두리의 발에 채였다. 별 부상이 아닌 줄 알았다. 초음파 검사를 받은 후 의사의 말이 “제가 본 환자 중 두번째로 심하네요.” 왼쪽 종아리 근육 파열로 6주 진단이 나왔다. “폴란드전이 이틀 밖에 남지 않았는데…” 이만한 절망은 없었다. 의사 왈 빨라야 3주 후에나 훈련할 수 있다는데, 대회가 다 끝날 판이다. 밥 맛도 없었고 밤엔 잠도 오지 않았다. 하나님이 원망스러웠다. “하나님, 절 쓰실려고 여기까지 데려오신 게 아닌가요?” 1년반 애타게기도하면서 준비했기에 그 섭섭함은 더했다. 그러나 맹세코 차두리가 밉지는 않았다. 훈련 중 흔히 일어나는 상황이었다. 내가 더 조심했어야 했다. ■신앙의 기적 그래도 기도했다. 여자친구도, 목사님도, 나를 아는 모든 분들이 기도해 줬단다. 내가 모르는 수천, 아니 수만명의 성도가 나를 위해 기도했을 게다. 기도 때문이었을까. 부상 이틀날 목발을 짚고서도 걷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다음날 아무렇지도 않게 걸음이 떨어지는 게 아닌가. 갑자기 회복 속도가 빨라졌다. 불과 1주일 만에 뛰었고 12일부터는 정상 훈련이 가능해졌다. “세상에 이럴수가….” 기적이었다. 이후엔 병원에 안 갔다. 정밀검사를 받았는데 안 좋다는 결과가 나오면 어떡하나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나도 붉은 악마였다 폴란드전이 벌어지던 지난 달 4일, 경주 호텔에는 나와 물리치료사 빌코만 있었다. 빌코를 방으로 불러 TV를 켰다. 순간 관중석의 빨간 물결이 눈에 들어왔다. 온 몸에 전류가 흘렀다. “내가 저기 있어야 하는데…” 휘슬이 울린 다음 어떻게 시간이 흐르지 느끼지 못했다. 후반 초반이었을까. 선홍이 형의 골이 터졌던 것 같다. 어느새 난 다친 다리로 펄쩍펄쩍 뛰고 있었고 빌코는 그런 나를 말리고있는 게 아닌가. 에라 모르겠다. 만류하는 빌코까지 끌어안고 같이 뛰었다. 버선발로 뛰어 나간다는 심정이 이런 걸까. 다음날 선수단이 도착했다는소식에 단숨에 로비로 내달렸다. 너무 고맙고, 너무 부러웠다. ■우상을 만나다 포르투갈 피구, 스페인 엔리케는 나의 우상이었다. 그라운드에서 부딪히며 대결을 벌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런데 꿈이 현실이 되다니…. 미안한 얘기지만 승부를 떠나 이들과 함께 뛴다는 게 너무 좋았다. 그런데 피구는 컨디션이 정상이 아닌 모양이었다. 1대1 대결 때마다 번번이 내게 걸렸다. 엔리케도 강했지만 해볼만 했다. “자신감이란 게 이런 것일까.” 포르투갈전 후반, 피구가 좀처럼 시야에서 보이지 않는 사이에 골문 반대쪽의 지성이가 눈에 들어왔다. “길게 넣어야 해” 속으로 이렇게 되뇌이며 오른발 인프런트로 강하게 말아 올렸다. 볼은 정확하게 지성이의 가슴에 안기더니 이내 골키퍼의 가랑이를 통해 골네트를 흔들었다. 순간 놀라는 피구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우상을 이기다니….” ■피구가 비기자고 했다구? 포르투갈전 하프타임 파울레타와 피구가 손짓을 했다. 손바닥을 아래로 향하고 위아래로 흔드는 제스쳐였다. 아마 “천천히 하자”는 시늉이었을 게다. 그래서 다음날 인터뷰에서 그렇게 말했는데 신문엔 ‘피구가 이영표에게 비기자고 했다’고 대문짝 만하게 기사가 났다. 황당했다. “내 말이 그렇게 왜곡되다니….” 어떤 신문에선 피구 인터뷰를 통해(물론 그것도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적이 없다고 보도했다. 어떤 팬들은 “경솔하다”는 질책의 이메일까지 보내왔다. 기분이 언짢았다. 피구는 결코 나에게 비기자고 말한 적이 없다. 단지 그런 행동을 통해 내 나름대로 그렇게 느꼈을 뿐이었다. ■강함보다 부드러움이 위대하다 히딩크 감독님은 대단하다. 강한 것 보다 부드러운 것이 위대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줬다. 지금까지 경험한 한국 지도자들은 복종식 훈련을 강요했다. 딱딱하고 경직된 분위기에서 마음 속에 불만이 쌓였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님은 그렇지 않았다. 함께 얘기할 수 있었고 같이 짜증낼 수 있었다. 항상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들어 준 덕분이었다. 히딩크 감독님은 (설)기현이 같은 친한 친구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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