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나눔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

주님의 일꾼 2016. 11. 14. 11:10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 (시편 127:1~5)

 

수원은혜교회 황유석 목사

 

 

오늘 <시편 127편>을 설교할 차례이다. 본문에 너무 신나는 내용이 있다. 약간 게으르고, 눕는거 좋아하고, 잠자는거 좋아하는 분들에게 진짜 복음이 기록되어 있다.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시는도다.” 이 말씀은 정말 은혜가 되는 복음중의 복음이다. !!

 

<1절> ‘여호와께서~헛되도다.’ 우리 인생에는 집을 세우는 자의 수고가 필요하고, 성을 지키는 자의 깨어있음이 필요하다. 집을 지키는 자의 수고가 있어야 집이 보존이 되고, 성을 지키는 자의 수고가 있어야 성을 지킬 수 있다. 하지만 그 수고만 갖고는 ‘안된다’는 것이 오늘 본문의 교훈이다.

 

<2절>에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는것 ~.’ 이런 삶은 정말 귀한 일이다. 하지만 여호와께서 함께하지 않는 가운데 하는 인간의 모든 수고는 헛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집을 세우는 자의 수고, 파수꾼의 깨어있음, 일찍 자고 늦게 눕는 인간의 수고가 아름다운 결실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도우심, 여호와의 함께하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나에게 ‘은혜’가 있어야 내 노력과 열심이 결국 아름다운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생각에 내가 열심히 집을 지면 내가 그 집에 살고, 내가 열심히 성을 지키면 그 성은 안전하고, 내가 열심히 일하고 밤늦도록 수고하면 모든 일이 잘될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 없는 인간의 열심은 ‘헛되다’고 말한다.

 

우리가 절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집을 짓는 것이 헛되다’는 말이 아니다. 파수꾼이 깨어 성을 지키는 것이 헛되다는 말이 아니다.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는 것이 헛되다는 것이 아니다. 성경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 하나님 없이 집을 짓고, 하나님 없이 성을 지키면, 하나님 없이 인간적으로 죽으라고 수고하는 것이 헛되다는 것이다.

 

하나님 없이 집을 지면 고생은 내가 했는데 사는건 딴사람이 들어가 살게 된다. 세상에 이것처럼 억울한 것이 어디 있는가? 포도농사는 죽으라고 고생하며 내가 졌는데 포도를 따먹는건 딴사람이 따먹는다. 세상에 이것처럼 억울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열심히 하라, 성실하게 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그것만 갖고는 안된다. 거기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있어야 한다.

 

어떤일을 해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사업(=직장생활)을 해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자녀를 양육하는 것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내 자녀를 키워주셔야 제대로 바르게 키울수 있다. 내가 아무리 새벽잠 안자고, 밤늦게까지 아이를 위해 희생한다고 해도 그 모든 희생이 헛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건 목회도 마찬가지이고, 주의 몸된 교회를 섬기는 일도 마찬가지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셔야 하고, 여호와께서 성을 지켜주셔야 한다. 하나님이 성을 지켜주시고, 집을 세워주시고, 하나님께서 전쟁을 주관하시고, 하나님께서 경영을 하시고,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돌봐주시면 그토록 인간이 노력하고 힘쓰고 애써도 안되던 일들이 되어지는 역사가 일어난다. 그래서 우리 인생은 인간이 노력해서 되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셔야 되는 것이다.

 

내가 내 인생을 살아보겠다고 그래프를 그리고, 계획표를 짜고, 연간 계획, 5년 계획, 10년 계획, 단기계획, 장기계획을 아무리 짜도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면 그 모든게 헛되다.

 

나는 결혼을 하면 ‘이렇게’ 살거야! 애를 낳으면 ‘이렇게’ 키울거야! 별 생각과 계획을 다 짜지만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시면 그 모든게 허사로다.

 

아내가 남편의 마음을 만족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고, 남편이 아내의 마음을 맞춰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부모가 자식의 마음을, 자식이 부모의 마음을 만족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남편이 아내의 마음을 만족시키는게 아니라 하나님만이 아내의 마음을 만족시킬 수 있고, 아내가 남편의 마음을 만족시킬수 있는게 아니라 하나님만이 그 남편의 마음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이다. 자식의 마음도 부모님의 마음이 오직 그 마음을 만족시킬 수 있는 분은 하나님 뿐이다.

 

하나님이 그 마음을 안 채워주시면 맨날 아파트 베란다에서 저 밑에 땅만 쳐다보고 있고, 화장실 들어가면 안 나오고 거기서 이상한 짓한다.

 

남편이 아내와 대화를 많이 하고, 부모가 자녀와 대화를 많이 하니깐 우리 집은 상대방의 빈 마음을 다 채워주고 살고 있다고 생각하나? 아주 큰 오해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만이 사람의 마음을 채울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다. 그러므로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결국 하나님이 하셔야 되는 것이다.

 

목회! 이걸 목사 직분을 가진 인간이 한다면 이건 정말 못할 일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목회하지 않으면 안된다. 교회 사역/선교! 인간이 하면 반드시 지쳐 쓰러진다. 하나님이 하셔야 한다. 내 젊음과 청춘을 바쳐.., 내 재능과 은사를 바쳐..., 인생은 그것만 갖고 되는게 아니다.

 

“여호와께서 목회하지 않으시면 목회하는 자의 수고가 헛된 것이다.” 인생 모든 일들은 결국 하나님이 하셔야 되는 일들이다. 집을 세우는 우리의 수고가 빛을 발하고, 성을 지키는 파수꾼의 수고가, 일찍 일어나 늦게 누우며 수고하는 우리의 희생과 노력이 빛을 발할때가 바로 ‘하나님이 함께하실 때’이다.

 

전쟁에 나아갈 때에 우리가 숫적으로 우세하다고 이기나? 아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너희는 가만히 있어 하나님의 구원을 보라”고 주님 말씀하신다. 전쟁에 능하신 우리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우리는 전쟁에서 100% 이기는 것이다. 전쟁의 승패는 나에게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달렸다. 내가 아무리 전술과 전략을 잘 짜도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시면 그 전쟁은 절대 이길수 없다.

 

성경을 보라. 이스라엘이 언제 전쟁에 졌나? 하나님이 전쟁에 ‘가라’고 하지 않았는데 저 정도는 나 혼자도 이길수 있어? 라고 생각하고 하나님 없이 혼자 나갔다가 참패를 당한다. 그게 아이성 전투이다. 아이성전투 직전에 난공불락의 요새인 여리고성을 하나님이 함께하심으로 무너뜨렸지만 그 전쟁을 이길수 있었던 것이 하나님이 함께하심이라는걸 잊어버린 이스라엘이 자신의 힘과 능력을 믿고 ‘저 정도는 나도 할수있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이 싸우라는 명령도 하지 않았는데 싸우다 참패한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내가 얼마나 수고하느냐, 애쓰느냐, 부지런하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시냐’가 우리 인생의 승패를 좌우한다. 이 일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냐? 이 일이 하나님이 시키신 일이냐? 가 인생의 승패를 좌우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생을 쉽게 사는 방법이 있다. 여호와께 맡기고 그분으로 하여금 일하시게끔 하는것이 인생을 쉽게 사는 방법이다. 우리 성도들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자신의 인생을 맡기길 축원한다.

 

그렇다고 집을 세우는 수고를 하지 말고, 성을 지키는 수고를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게으르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이란 말도 아니다. 다만 이렇게 사는 것만큼, 아니 이렇게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으니 하나님 없이 사는 것은 헛일이요, 헛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는 일은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이어야 하고,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일이어야 하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이어서 하나님과 동역자가 되어 함께 그 일들을 감당할 때에 그 모든 일에 헛된 결과가 아니라 은혜로운 결과를 주실 것이다.

 

군인 숫자가 많다고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그 전쟁을 이길 수 있는 것이다. 사업의 승패가 내 기술력, 영업력, 인맥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심이 달려있다. 공부의 승패가 내 아이큐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심에 달려있는 것이다. 인생의 승패는 내가 얼마나 하나님을 신뢰하고, 맡기냐? 에 달린 것이다.

 

내 삶을 통하여 하나님이 하고 싶은것 다 하시도록 맡겨드리는 인생, 하나님이 쓰시기에 편한 사람이 될 때에 하나님은 나를 통하여 위대한 일을 행하실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께 자신의 삶을 온전히 맡긴 인생을 하나님이 축복하시는데 <2절 후반절>에 “하나님이 그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시는도다”의 복을 주신다.

 

어떤 분이 ‘잠을 못잔다’고 한다. 왜 잠을 못잘까? 생각이 많아서.., 근심/걱정이 많아서..,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 품지 못하는게 근심/걱정이다. 믿음과 근심은 절대 같이 공존할 수가 없다. 믿음과 걱정은 절대 동시에 할수 없다. 하나님을 믿으면 근심하지 않고, 근심하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약해진 것이다. 근심은 내가 뭔가를 하려고 하니깐 생기는 것이다. 근심은 낮에는 별로 없다. 왜? 일하다 보면 바빠서 잊어버린다. 그러다 저녁에 밥 먹고 드러눠서 곰곰이 생각하다보니 생각이 꼬리를 물어서 가지를 친다. 그러면 선잠을 자고 깊은 잠을 잘 수가 없고 뒤치다꺼리다 가위눌리는 경험도 하게 된다.

 

그런데 <2절 후반절>에 ‘하나님이 그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시는도다’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누구를 사랑하나? 하나님을 믿고 맡기는 자를 하나님은 사랑하신다. 성경에는 “네가 염려함으로 키를 한자라도 키울 수 있냐?(마6:27)”고 하나님은 염려하는 자들에게 물으신다. 성경은 기도하면 되는데, 염려하면 안 된다고 가르쳐주신다. 우리 성도들이 염려하는 인생이 아니라 염려를 주께 맡기고 잠 잘 자는 은혜가 있길 축원한다.

 

지금 인생의 고통 중에서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나는 우리 성도들이 땅에 머리만 대면 잠드는 은혜가 있길 바라고, 새벽 4시 40분이 깨지는 은혜가 있길 축원한다. 이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른다. 나는 비염 때문에 밤에 잠을 못자고 기침하며 옆드려 웅크리고 있을 때는 얼마나 속상한지 모른다. 옆에서 잠자는 사람이 미워진다. 저녁에 누워 아침에 깰 때까지 푹 자는게 진짜 복중의 큰 복이다.

 

이렇게 단잠을 자면 병도 낫고, 피곤도 다 풀린다. 본문에서 말하는 잠은 ‘단잠’을 의미한다. 단잠은 고민이 없고, 아픔이 없어야 단잠을 잘 수 있다. 기침 몇번만 해도 나도 못자고, 온가족이 못잔다. 또 이렇게 자면 자도 피곤이 안풀린다.

 

오늘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겠다’는 말은 그렇게 단잠 잘수 있도록 아픈 사람들은 치료하겠다는 말씀이고, 근심과 걱정은 해결해주시겠다는 것이니 우리 성도들이 내 병을 치료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내 문제를 해결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단잠 자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한다.

 

밤에 잠 안자면서 자식 걱정한다고 해결되는거 있나? 밤에 잠 안자면서 사업/직장 걱정한다고 해결되는거 있나?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전날밤에 잠을 못자면 다음날 거래처 사람 만나서 짜증난 얼굴로 일하다 아주 작은 일에도 ‘욱’ 하고 만다. 그런데 어떤 일이 있어도 일단 단잠을 푹 자면 생각과 정신이 맑아지고, 건강이 회복되서 자식 문제도 해결할 수 있고, 사업/직장의 문제들도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한신교회에서 목회하시다 돌아가신 이중표 목사님이란 분이 계시다. 그분은 목사님들에게 강의할 때에 항상 ‘좀 자빠져 자라’고 호통을 치신다. 보통 우리가 다른 분들에게 듣는 말은 ‘언제까지 자빠져 잘거야“라는 말인데 그분은 반대이다. 그 말 속에는 목사님들이 자기가 모든걸 다 하려고 하지 말고 좀 맡기라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잠은 정말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다. 문제는 시도 때도 없이 자서 그렇지.., 잠은 하나님이 주신 치료제이다. 사람이 잠을 잘 자면 많은 질병과 상처, 근심과 걱정이 치료된다. 마음이 아플 때에 나는 사람만나지 않고 잠잔다. 그리고 일어나면 내 마음이 치료되어 있다. 하나님이 내가 잠잘 때에 내 상한 마음을 만져주시고 치료해주신 것이다. 잠은 정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아주 소중한 자연 치료제이다. 그렇게 힘들 때도 잠자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자고 일어나면 새 힘이 난다. 잠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오늘 하나님이 주시는 단잠을 모든 성도들이 선물로 받기를 축원한다. 우리 성도들이 수면제가 아닌 주의 은혜로 단잠 자며 살길 축원한다.

 

가끔 교회 와서 주무시는 분들 계시다. 절대 뭐라고 하지 않는다. 지금 그분들은 하나님의 아주 강한 은혜를 체험하고 있는 중이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시는데 그분들은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거의 입신의 경지에 이르렀다. 우리교회 마이크 소리가 얼마나 큰가? 내 목소리도 만만치 않은데 그런 와중에 잠잔다는건 [스타킹] 출연감이다. 교회 와서 누군가 자면 절대 깨우지 마라. 예배시간에 조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깨웠더니 짜증내는 것이다. 이런 분들이 예배 끝나고 나갈 때는 ‘은혜 받았습니다’라고 인사한다. 그분들은 잠자는 중에서도 하나님이 특별한 은혜를 주시니 주무시는 분들 걱정하지 말고 나만 은혜 받으면 된다. 내가 설교하고 그분은 주무시지만 하나님이 그 꿈속에서 다 통역해주신다. 그러니 예배시간에 자는 분들은 절대 걱정하지 말고 놔둬라. 깨워서 시끄럽게 하지 말고..,

 

잠을 쫓아가며 비몽사몽간에 10시간 어떤 일을 하는 것보다 잠자고 1시간 집중해서 어떤 일을 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일 때가 많다. 앞으로 아이들이 잠을 잘자거든 ‘잠만 잔다’고 뭐라고 하지 말고 ‘넌 정말 하나님의 큰 복을 받았구나’라고 격려해주면 잘만큼 자고 일어나 자기 일 잘할 것이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밤 문화를 줄이고 아침 문화/새벽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늦게 자니 아침에 전쟁하는 것이다. 적당한 수면 시간이 몇시간일까? 4시간, 6시간, 8시간.., 해떨어지면 잠자고 해 뜨면 일어나는게 가장 적당한 시간이다. 하나님이 밤을 캄캄하게 만든건 자라는 것이고 낮을 환하게 해 논건 일하라고 만들어 놓은 것이다.

 

현대인들이 자꾸 수면 시간이 늦어지고 있다. 8~9시가 초저녁이고 12시나 되야 잠잘 생각을 한다. 그러니 아침이 힘든 것이다. 과학자들 曰 “10~새벽 2시에 자는 잠이 가장 좋다”고 한다. 우리 성도들이 밤 문화를 줄여나가고, 새벽문화를 만들어 갈수 있는 은혜가 있길 축원한다.

 

지금 우리가 제정신인 이유가 뭔 줄 아나? 어제 밤에 잠 잘 잤기 때문이다. 정말 3일만 잠 못 자면 정신이 돈다. 그래서 고문중의 아주 무서운 고문이 잠 안 재우는 고문이라고 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잠자면서 살도록 만들어 주셨다. 그러니 이제 우리 성도들이 모든 걱정, 염려를 다 하나님에게 맡기고 밤에는 집에 들어가 푹 단잠 자는 은혜가 있길 축원한다.

 

근심하다 잠 못 자는 사람, 염려하다 잠 못 자는 사람! 오늘 회개하라. 하나님! 나의 믿음 없음을 용서하옵소서. 아직도 하나님께 다 맡기지 못함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내일 모레 시험 보는 자녀를 주님께 맡깁니다! 내일 모레 결제할 것들을 주님께 맡깁니다. 그렇게 맡기고는 단잠 자는 은혜가 있길 바란다. 이렇게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잠이라는 귀한 선물을 주신다.

 

<3~5절> 한마디로 말하면 혼자 살지 말고 결혼해서 자녀를 많이 출산하라는 말씀이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고 상급이다. 절대 웬수 아니다. 오늘 자녀들에게 이렇게 말해주라. “너는 하나님이 내게 주신 기업이요, 너는 하나님이 내게 주신 상급이다.”

 

자녀에 대한 바른 인식이 필요한데 성경이 확실하게 말하고 있다. 요즘 젊은 부부들은 자식이 많으면 짐이 많고 부담된다고 한다. 제 친구 목사님도 딸 하나 낳고 안 난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아이 하나 교육할 것을 계산해보니 너무 부담 되서 하나로 만족하겠다고 한다. 나는 계산하지 않았다. 나도 계산했으면 셋씩이나 못 나았을 것이다. 자식은 부담이나 짐이 아니라 나의 기업이고 상급이다(3절).

 

친구 목사님은 딸 하나 미국으로 유학 보내고 나니 허전해 죽을 지경이란다. 나를 보며 언젠가 曰 “나도 너처럼 대책없이 날걸...”이라고 한다. 정말 대책없이 셋 낳는데, 정말 대책은 없었는데 세월 지나고 나니 하나님이 다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셨다.

 

성도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인간적인 계산하지 말고 자녀를 낳아야 한다. 그리고 자녀에 대해서 ‘너는 하나님이 내게 주신 기업이요, 복이요, 상급이다’는 분명한 정체성을 갖길 바란다. 자녀를 ‘웬수’라고 말하면 정말 자녀가 원수된다. 어떤 사람은 자녀를 짐으로 여긴다. “너만 없었으면 내가 이렇게 안 살텐데..”라고 말하는 사람을 본적이 있다. 그런 말하면 나중에 당신이 늙으면 자식에게 그 똑같은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엄마만 없었으면..., 엄마는 왜 내 인생의 이렇게 짐이 되느냐...”고 할 것이다.

 

<4~5절> “젊은 자의 자식은~화살이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애가 많으면 복되다는 말인가? 적으면 복되다는 말인가? 많으면 복되다는 말이다. 오늘 이 말씀을 듣고 애 낳기로 순종했더니 사무엘, 링컨, 다윗... 이런 인물이 나올지 누가 알겠는가? 지금 공부하는걸 보면.., 속썩이는걸 보면.., 하는 행동을 보면.., “참, 이런 애도 드물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자녀들도 있지만 그 앞날은 아무도 모른다.

 

지금 우리나라가 세계경제대국이라는 이름을 듣게 된 이유가 뭔가? 우리 부모님들이 많게는 10명 이상, 8명, 6명, 5명, 작게는 4명 정도를 낳아서 그들이 이 땅에 보석같은 인물들이 된 것이다. 정말 우리 부모님들은 큰 일 하셨다. 이 민족이 앞으로 더 강대국이 되기 위해서는 더 많이 나아서 믿음과 기도로 양육해야 한다. 결혼할 시기임에도 아직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은 결혼하는 것이 애국하는 길이요, 결혼한 사람들은 자녀를 화살의 전통처럼 많이 낳는 것이 애국하는 길임을 알고 성경대로 출산의 복이 우리 성도들 가정에 있길 축원한다.

 

정부가 하는 일이 항상 옳은 일이 아닌것 같다. 옛날엔 예비군 훈련 가면 멀쩡한 사람들 초코파이로 유혹해서 애 못 낳게 만들어 놨다. 그랬던 정부가 요즘에는 아이 많이 나으면 돈 주고, 상품권도 준다. 정부는 시대를 따라 흔들리지만 성경은 3,000년 전부터 자식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고 상급이다. 많이 낳는것이 복되다고 가르친다. 오늘 이 귀한 말씀에 순종하길 바란다.

 

[출처]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 (시편 127:1~5)|작성자 황유석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