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돌아가는 이야기

일자리 창출의 적

주님의 일꾼 2017. 5. 25. 19:10
일자리 창출의 적(敵) 
지난달 22일 현대·기아차그룹 본사 앞에서 총파업 투쟁대회를 하는 금속노조 조합원들. [중앙포토]

지난달 22일 현대·기아차그룹 본사 앞에서 총파업투쟁대회를 하는 금속노조 조합원들. [중앙포토]

지난 대선 TV토론에서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당당한 표정으로 물었다. “노동자가 연봉 1억원을 받으면 안 되는가?”
 

자동차·조선 노조원 연봉 9500만원
근로자 평균 연봉의 3배에 달해
하청·협력업체 희생 딛고 고임금 누려
평생 고용도 노사 담합의 산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바람직하나
정규직 노조 양보 없이는 감당 안 돼
새 경제팀은 납품 단가 깎기 시정하고
민노총 강성노조의 양보 이끌어내야

‘노동이 당당한 나라’ 정당 대표다운 일격이었다. 남쪽 산업도시 노동자들이 환호했을 것이다. 답은 분명하다. 노동자가 1억원 이상을 받는 나라를 꿈꿔야 한다.
 
그런데 이론적으론 ‘예스’, 현실적으로는 “노”다. 2015년 통계에 따르면 임금 근로자 중 1억원 이상 연봉자는 2.8%(39만 명), 8000만~1억원 미만이 2.2%(41만 명)로 총 80만 명(5%)이 고액 연봉자다. 울산과 거제 대기업 노동자 연봉은 1억원에 가깝다. 울산에는 3만 명, 거제에는 2만 명 정도가 있다.
 
고용도 60세까지 보장된다. 고액 연봉에 평생 고용은 노동자의 꿈인데, 실력과 생산 기여분 이상으로 받으면 비정상적이다. 기업 규모와 노조 파워로 살짝 올라갈 수는 있다. 그런데 같은 산업 하청 노동자는 그 절반을 받는다. 게다가 상시적인 해고 위험에 시달린다.
 
조선산업의 극심한 침체 때문에 지난해 한 해 울산에서만 비정규직 1만 명이 짐을 쌌고, 거제에서도 그만큼 직장을 떠났다. 하청업체가 몰린 목포 산단과 남부 해안도시 공장은 문을 닫았다. 떠난 사람들은 장기 실직상태에 있거나 임시 외판원, 포장마차를 떠돈다. 자살한 사람도 있다. 뭔가 잘못되지 않았는가? 이게 정의로운 임금이고, 인간적인 노동 현장인가? 심상정은 정의롭다고 했고,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자영업에 빗대 과녁이 어긋났고, 다른 후보는 침묵을 지켰다. 잘못 답했다간 민주노총의 강렬한 항의에 휘말릴 위험천만한 쟁점이었다.  
 
“자본에 양심을 파는 어용학자”
 
울산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은 2000년 완전고용 합의서를 따냈다. “현재 재직 중인 정규 인력은 정년을 보장하고…조합과 공동 결정 없이 일방적인 정리해고, 희망퇴직을 실시하지 않는다.” 이와 동시에 정리해고 완충지대를 설정했다. “생산량 변동에 따라 비정규직을 투입한다.” 투입 비율은 16.9%, 이것이 한국에서 비정규직 문제의 출발점이다. 조선산업은 비정규직이 40%에 달해 불황 시 언제든지 방출할 수 있다. 인력업체 소속인 이들은 작업복 색깔도 다르다. 신분이 다르고 협약이 그러한데 달리 구제할 방법도 없다.
 
독일·스웨덴 같으면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비정규직을 붙잡았을 것이다. ‘아우디 5000 프로젝트’가 그러하다. 공장 폐쇄 대신 일자기 나누기를 해 반값 임금이라도 받도록 조합이 나섰다. 경기가 살아나자 이들은 다시 어엿한 직원으로 복직했다.
 
사민주의 국가 노조는 위기 시에 ‘노동자 연대’를 발동한다. 고통 분담, 일감 나누기다. 그런데 한국의 대공장 노조는 비정규직을 실직 상태로 몰아 정부로 전가한다. 국민 혈세로 해결하라는 뜻이다. 공장의 도덕적 해이를 왜 국민이 떠안는가? 필자는 얼마 전 출간한 『가보지 않은 길』(나남, 2017)에서 막강 파워를 행사하는 강성 노조의 이런 독점적 이기심을 비판했다. 그러자 한국의 대표적인 노사관계 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당신은 자본에 양심을 파는 어용학자다!”
 
그래, 좋다. 필자는 이렇게 대꾸했다.
 
“노조의 악습을 공개적으로 비판하지 않는 당신들이야말로 노조의 어용학자다!”
 
그런데, 세미나 끝 저녁 자리에서 그들의 솔직한 고백을 들었다.
 
“사실, 강성 노조들에게 기대할 것은 없다. 잘못 가고 있다!”  
 
고임금·평생고용은 노사 담합의 산물
 
고연봉이 왜 비정상적인가? 자동차·조선산업 강성 노조 조합원의 평균 연봉은 9500만원, 2015년 근로자 평균 연봉 3281만원의 약 세 배다. 그만큼 부가가치를 생산하는가? 아니다. 생산 체인(production chain)에서 최상급을 차지해 하청·협력업체가 생산한 부가가치를 전유(專有)한다. 예를 들면 세계적 의류업체 리바이스(Levi’s) 청바지는 동남아시아에서 5달러(5630원)에 생산된다. 원자재·포장·관리·물류비용을 계산하면 약 30달러에 납품되는데, 미국에서 한 벌에 100달러에 팔린다. 누가 최고로 이득을 보는가. 말할 것도 없이 리바이스 기업주와 직원이다.
 
현대차그룹이 거느린 330개 협력업체가 주요 부품을 생산하고 수많은 하청업체가 부속품을 납품하는 생산체인에서 누가 가장 이득을 보는가. 가령 3차 벤더가 20원을 생산해 2차 벤더에 납품하면 이들은 부가가치 50원인 상품을 만든다. 이것이 현대차 공장에서 조립 과정을 거치면 100원이 돼 나온다. 물론 전체 공정은 현대차 사령탑이 관리·통제한다.
 
수직적 생산체제의 장점이 없는 게 아니다. 수많은 협력업체가 동반 성장을 구가해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하청업체도 기술혁신을 거듭했다. 구매선이 확실해 생산도 안정됐다. 그런데 ‘단가 후려치기’라는 그 유명한 관행을 통해 원청의 원가 절감이 이뤄지고, 협력업체가 생산한 부가가치가 최종 라인에 집적된다.
 
조선도 다를 바 없다. 전자·통신장비의 수천 개 부품과 인테리어가 모여 근사한 선박이 축조된다. 하청업체의 제품과 비정규직 인력이 쉴 새 없이 투입된다. 최종 공정에 고이는 부가가치를 노동조합이 모를 리 없다. 최고의 교섭력을 발휘해 최고임금을 꾀한다. 협력업체의 창의와 혁신이 제값 못 받고 그냥 이전된다. 최고의 단순노동이 최고의 보수를 챙기는 구조인데 파업 손실을 피하려면 노조의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 강제적 노사 담합이 발생하는 한국적 메커니즘이다.
 
봇물 터지는 비정규직 민원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다음 날 인천공항을 전격 방문했다. 공기업 중 비정규직이 가장 많은 직장을 찾아 정규직화를 약속했다. 현 정권이 가장 중시하는 ‘일자리위원회’의 제 1호 업무 실행에 비정규직 사원들이 눈물로 화답했다. 이명박 정권은 목포 대불산단의 전봇대를 뽑는 것으로 시작했고, 박근혜 정권은 ‘손톱 밑의 가시’를 들이댔다. 보수 정권이 추진한 규제 완화가 비정규직 양산의 주범이라는 진보 정치의 인식이 우선 공기업에 적용됐다. 그러자 파견근로자, 시간제·임시직·청소용역 등 정규직화를 향한 애탄 목소리가 사방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2016년 현재 한국의 비정규직 비율은 32.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8%)보다 82%나 높다. 그러니 ‘소득불평등’과 ‘격차사회’ 극복을 향한 진보 정치의 화살이 비정규직 문제에 꽂힌 것은 당연하고 또 사리에 맞다.
 
그런데 누가 이 비용을 지불할 것인가. 공기업이라면 비용 증가로 인한 재정 압박을 일단 견뎌낼 수 있다. 산업은행에 호소하면 된다. 국민 혈세다. 민간 대기업 역시 견뎌낼 여력이 있다. SK브로드밴드는 협력업체 5200명을 정규직화한다고 재빨리 선언했다. 어물쩍대다 재벌 총수가 화를 입을 위험이 있다. 삼성 역시 서비스 협력업체를 정규직화하는 일대 결단을 만지작거릴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이미 6000명을 정규직화했는데 재직 기간을 소급해 ‘차별당한 임금’을 보상하라는 뜻밖의 요구에 부닥쳤다. 이를 주도한 정규직 노조도 당혹했다. 기아차 정규직 노조는 사내 하청 노조를 아예 떼어냈다. 임금협상에 거추장스러워서다.
 
정규직화는 사회 정의에 비춰 바람직하나 비용이 문제다. 과도한 비용 압박은 지불 능력에 차질을 가져오고, 이는 다시 경쟁력 약화와 경기 침체를 가져온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에 반드시 수반돼야 할 것은 정규직 노조의 임금 양보다. 그러나 앞에서 보았듯 정규직 노조가 임금을 양보한 사례가 없고 그럴 뜻도 없다.
 
비정규직이 대거 몰려 있는 중소기업은 어떻게 할까? 지난해 한 해 여성 시간제 노동자가 23만 명 증가했는데 20대와 60~70대에서, 30인 이하 중소기업에서 집중적으로 늘었다. 비정규직 문제가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여기에 5년 내 시급 1만원 시대를 열겠다는 문재인 정권의 공약을 부가하면 중소기업은 허덕일 것이다. 정의로운 공약이지만 일용노동자와 알바가 몰린 편의점·빵집·커피숍·식당·물류업과 여타 영세서비스 업체들이 견뎌낼까? 체인점들은 대부분 원청과의 종속적 관계에 놓여 있다. 상품과 원재료를 공급하는 원청이 무리한 조건을 강요해도 달리 항의할 방법이 없다. 점주가 감당할 몫이다. 임대료·보험은 물론 파손 상품과 재고를 떠안아야 한다. 영세 자영업자 월평균 소득은 187만원, 알바와 일용근로자에게 시급 1만원을 주면 점주와 알바의 소득 역전이 발생한다. 그러니 부문과 형편을 고려해야 한다.
 
장하성·김상조 경제팀이 할 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4대 재벌에 감시를 집중하겠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혁신은 거기부터다. ‘일감 몰아주기’와 ‘납품 단가 깎기’를 시정하는 게 비정규직 해결의 열쇠다. 2, 3, 4차 협력업체가 감당하는 원청의 횡포를 제거하고 거래 관계를 정상화하는 게 급선무다. 하청 단가를 정상화하면 최하위 시간제·파트타임·비정규직의 고용 조건을 개선할 여력이 생긴다. 앞에서 지적한 20원-50원-100원의 구조를 적어도 40원-70원-100원 구조로 바꾸거나, 적어도 시장 가격을 받아야 한다. 물론 원청 기업의 철저한 품질 인증을 전제로 말이다. 그러면 대기업의 과도 이윤과 대기업 노조가 임금 독점을 꾀할 여지가 축소되고 중간 소득 노동자층이 확대된다.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를 완화하는 핵심 고리다.
 
민간 영역 고용 창출의 힘도 그렇게 생성된다. 지난 5년간 10대 그룹의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획기적으로 늘었으나 일자리는 오히려 줄었다. ‘일자리 만들기’는 총 고용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중소기업에 열쇠가 있다. 330만 개 중소기업에서 1개씩만 만들어도 330만 개가 창출된다· 그러나 ‘허드렛일’이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청년 고용 기업에 국고를 지원하겠다는 발상이 주목을 끌었는데 국고 지원이 끝남과 동시에 해고하면 그만이다. 결국 중소기업의 지불 능력을 늘려 좋은 일자리를 공급하는 게 핵심이다. 대기업의 파행적 지배를 일소하고, 기업 환경을 조성하며, 소비를 진작하는 일이다. 사회 민주화의 핵심인 비정규직 문제(격차 해소)와 고용 창출(소득 증대)은 기업 지불 능력의 함수다.  
 
적(敵)은 내부에 있다
 
유럽은 일자리 방정식을 어떻게 풀어 갈까? 간단명료하다. 노조의 임금 양보-기업 경쟁력 향상-기업 고율 세금 납부-복지 투여라는 선순환 고리에서 ‘노조의 임금 양보’가 출발점이다. 한국으로 치면 대기업 강성노조의 양보다. 그것은 ‘노동자 연대’를 가져오고, 넓게는 ‘사회적 연대’로 확산된다. 문재인 정권의 1호 과제인 비정규직 격차 해소와 고용 창출이 성공하려면 절대 강자인 민노총의 절대 양보가 필수적이다. 일자리위원회에 독점 이익을 움켜쥔 민노총이 개입하면 되는 일이 없다. 저 선순환 회로에 동맥경화증을 유발한다. 2015년 노사정위원회에서도 그랬다. 현 정권이 외치는 사람 중심 성장, 소득 주도 성장을 가로막는 최대의 적은 정권 내부에 있다.
 

[출처: 중앙일보] [송호근의 퍼스펙티브] 대기업 노조가 임금 양보해야 일자리 만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