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 세계

거짓의 아비, 마귀

주님의 일꾼 2022. 11. 30. 22:02

이 세상은 거짓이 난무합니다. 사람들은 거짓으로 인한 부정과 부패를 스스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정직하고 깨끗한 도덕성을 요구하는 직업에 있는 사람일수록 더 타락하고 더럽고, 부정직합니다. 거짓말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타고납니다. 사람의 마음은 거짓투성이입니다. [모든 것보다 거짓되고 심히 사악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그것을 알 수 있으리요?](렘17:9). 모든 것보다 거짓되고 사악한 것이 마음이기에 어떤 강한 교육과 엄한 훈련과 무거운 규율과 법으로도 거짓은 막을 길이 없습니다. 법과 교육이 어느 정도 행동을 억제할 수 있지만 이는 현상을 약간 누그러뜨릴 뿐 원인과 본질은 결코 손댈 수 없습니다. 거짓말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살인, 간음, 음행, 도둑질, 거짓증거, 신성 모독이기 때문이니](마15:19). 새롭게 되지 않은 마음은 마귀의 home ground입니다. 예수의 피와 말씀의 물로 씻겨지지 않은 마음은 마치 가시와 엉겅퀴가 자라나는 토양과 같습니다. 아무리 뽑아도 잡초가 무성히 자라나는 그런 밭을 보십시오. 풀과 나무는 벤다고 없어지지 않듯이 거짓말, 거짓 증거, 거짓 행위는 규제를 가하고, 형벌을 가한다 해서 없어지지 않습니다. 기회와 환경이 조성되면 얼마든지 다시 자랍니다.

마귀는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입니다. 성경의 믿음의 영웅들 가운데도 거짓말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는데 이는 아내의 미모를 탐낸 아비멜렉 왕이 자기를 죽이고 아내를 빼앗아 갈까 두려워서였습니다. 부전자전(父傳子傳)이라고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 역시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야곱은 형을 속이고, 아버지를 속였습니다. 야곱은 영적 야망과 탐욕 때문에 거짓말을 했습니다. 야곱의 외삼촌 라반은 야곱을 속였습니다. 라반은 야곱의 노동력을 갈취하기 위해서 거짓말했습니다. 라반의 딸 라헬은 자기 아버지를 속였고, 야곱의 아들들은 야곱을 속였습니다. 이들은 시기심 때문에 거짓말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이익 때문에 거짓말을 합니다. 게하시는 탐욕 때문에 거짓말을 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에 대한 질투와 분노로 거짓 증거를 했습니다(창39:7-20). 어떤 사람은 사람이 두려워서 거짓말을 합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온통 속이고 속는 거짓말들의 연속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연약함이요, 본성입니다. [악한 자들과 미혹하는 자들은 점점 더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리라.](딤후3:13). 이것이 육신을 입은 성도들의 한 단면입니다. 거짓에서 진정으로 자유로운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는 사람은 거짓의 아비 마귀와 함께 하므로 거짓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없는 사람은 단독자가 아닙니다. 마음에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마귀와 결합되어 있으며 그 아래 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마귀의 편에 서 있는 것입니다.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거짓말을 해서 거짓말쟁이가 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거짓말쟁이로 태어났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고, 거짓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기도하기를, [오 하나님이여, 내 안에 깨끗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속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51:10)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사람을 순수하게 만드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순수한 마음, 순수한 양심, 순수한 말씀, 순수한 말씀의 젖... 순수, 정직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하나님과 하나 되지 못한 사람은 이미 마귀와 하나 되어 있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빛이시오, 영들의 아버지시듯이 마귀 역시 무엇인가의 아버지입니다. 마귀는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입니다. 거짓의 아버지란 모든 거짓의 원조요, 머리란 뜻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 건국의 아버지라고 하면 죠지 워싱턴입니다. 근대 음악의 아버지는 바하입니다. 근대 문학의 선구자, 개척자, 창시자 등을 근대 문학의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어떤 분야의 개척자나 탁월한 업적을 남긴 사람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이런 점에서 마귀는 모든 거짓말의 아버지입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망들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 안에 거하지 못하고 거짓말을 할 때에 자기 자신의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이기 때문이라.](요8:44). 마귀는 거짓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모든 거짓은 마귀로부터 비롯된 것이요, 마귀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영적으로 볼 때 이 세상에는 하나님 아버지와 마귀 아버지가 있습니다. 영적 시각으로 볼 때 이 세상에는 두 부류의 자녀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은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습니다. [그분께서 자신의 뜻에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으니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피조물 가운데 첫 열매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약1:18). 반면 마귀는 거짓으로 자기 자녀들을 낳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었던 이스라엘은 처음에 거짓을 말하지 않는 자녀라는 평을 받았습니다. [이는 그분께서 말씀하시되, 참으로 그들은 내 백성이요,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는 자녀라, 하시고 그들의 구원자가 되사 그들의 모든 고난 속에서 친히 고난 당하시고 자기 눈앞에 있는 천사로 하여금 그들을 구원하게 하시며 친히 사랑하고 동정하사 그들을 구속하시고 옛적의 모든 날에 그들을 품으시며 이끄셨음이라.] (사63:8~9). 어느 부모에게나 자기 자식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다행이며, 자랑입니다. 하나님 역시 자기 자녀로 삼은 이스라엘 백성이 거짓을 말하지 않는 자녀라고 기뻐하셨습니다. 우리 아이는 공부를 잘해, 재주가 많아, 말을 잘해, 음악을 잘해, 운동을 잘해...이런 것보다는 우리 아이는 ‘거짓말을 안 하는 아이’란 말이 훨씬 더 훌륭한 아이요, 자랑스런 아이입니다. 주님은 자기 백성들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 아이란 점을 자랑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참 하나님 아버지를 버리고 우상을 섬기고 경배했을 때 거짓말하는 자녀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는 반역하는 백성이요, 거짓말하는 자녀들이요, [주]의 법을 들으려 하지 아니하는 자녀들이니라.](사30:9). 이스라엘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 자녀에서 거짓말하는 자녀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이는 공부 잘하던 아이가 놈팽이가 되고, 말 잘 듣던 아이가 불순종과 반역하는 아이가 되었을 때의 부모의 심정보다 더한 슬픔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대인들을 일컬어 그들의 육신은 아브라함의 자녀이지만 믿음과 영적인 면에서는 마귀의 자녀들임을 분명히 선포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살인자요, 거짓의 아비인 마귀를 따라 살인과 거짓을 자행하고자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적 기준을 분명히 잡아야 합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사람이 어떻게 살인자로 전락하는가? 를 배웠습니다. 살인을 했기 때문에 살인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살인자가 되면 살인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간단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① 훌륭한 사람이 훌륭한 일을 한다. 훌륭한 일을 하기 때문에 훌륭한 사람입니다. ② 도둑놈이 도둑질을 한다. 도둑질을 하니까 도둑놈이다. ③ 좋은 나무니까 좋은 열매를 맺는다. 좋은 열매를 맺기 때문에 좋은 나무이다. ④ 죄인이어서 죄를 짓는다. 죄를 짓기 때문에 죄인이다. 어느 것이 맞습니까? 성도들은 모두 전자를 맞다고 말합니다. 반면 세상은 모두 후자를 맞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사람 중심입니다. 세상은 일 중심입니다. 하나님은 본질을 중요시 합니다. 세상은 현상과 결과를 중시합니다. 하나님은 생명 중심입니다. 세상은 행동 중심입니다. 그래서 정반대의 논리가 전개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살인도 행하지 않았던 유대인들을 향해 ‘너희는 살인자다!’, ‘너희는 거짓말쟁이다’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이는 살인자요, 거짓의 아비인 마귀를 아버지로 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전에는 누구든지 다 거짓의 아비인 마귀의 자녀이기 때문에 그는 거짓말쟁이로 태어나 현재도 그대로 거짓의 자녀입니다. 이것은 아무리 고치려고 해도 고쳐지지 않습니다. 약간 억제할 수 있고, 가릴 수 있지만 본질은 변화되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도둑놈이 도둑질하는 것을 모르고, 도둑질을 해야 도둑놈이라고 정의를 내립니다. 그럼으로써 도둑질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도둑놈이 아닌 줄 압니다. 살인자가 살인을 하지 않으면 살인자가 아닌 줄 압니다. 이는 사과 나무에서 사과가 열리지 않는다고 해서 사과 나무가 아닌 줄 아는 것과 같습니다. 때로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 아이들을 보면 자신이 한민족이란 사실을 부정하고 싶어 합니다. 자신을 미국인이라고 우기고 영어를 쓰고, 미국식 사고를 가졌다 해도 그는 여전히 한국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가 오랫동안 살인을 하지 않고, 도둑질을 하지 않고, 간음하지 않고, 우상을 숭배하지 않아도 그는 이미 타고난 태생이 살인자요, 도둑이요, 우상숭배자요, 간음자요, 우상숭배자입니다. 거짓의 아비로부터 태어난 자는 누구나 예외 없이 다 거짓말쟁이입니다. 도둑이 착한 일을 할 때가 있고, 살인자가 의로운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의인이 악한 일을 할 수 있고, 거짓말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일, 행위, 현상, 결과, 육체를 중심으로 보기 때문에 언제든지 의인과 악인, 선인과 죄인이 뒤바뀔 수 있습니다. 훔치러갔다가 도와주고 온 선한 도둑! 훔쳐서 남을 도와주는 도둑- 의적! 이런 말이 세상에서는 성립하지만 성경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말입니다.

성경은 음행자와 음행하는 자를 구분합니다.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들이나 강탈하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과 전혀 함께하지도 말라 함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반드시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하리라. 그러나 내가 이제 너희에게 쓰는 것은 만일 형제라 일컬음 받는 자가 음행하는 자이거나 탐욕을 부리는 자이거나 우상 숭배하는 자이거나 욕설하는 자이거나 술 취하는 자이거나 강탈하는 자이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하는 것이라.] (고전5:10~11). 세상 사람들은 음행자, 탐욕자, 강탈자, 우상 숭배자입니다. 반면 그리스도인들은 음행하는 자, 탐욕을 부리는 자, 강탈하는 자, 우상 숭배하는 자, ...하는 자란 말이 맞습니다. (이 차이를 구분할 것). [이제 육신의 행위들은 명백하니 곧 간음과 음행과 부정함과 색욕(色慾)과 우상 숭배와 마법과 증오와 불화와 경쟁과 진노와 다툼과 폭동과 이단 파당과 시기와 살인과 술 취함과 흥청댐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내가 또한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같이 미리 말하노니, 이런 일들을 행하는 자들은 결코 하나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하리라.] (갈5:19~21). ‘이런 일들을 행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런 일을 행할 때 구원이 없는 것이 아니라 상속이 없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간음자가 선하고 의로운 일을 몇 가지 행했다고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다음 구절을 잘 보십시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과 가증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을 일삼는 자들과 마법사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을 자기 몫으로 받으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계21:8). 여기서 둘째 사망에 떨어지는 자들은 살인을 행한 자가 아니라 살인자입니다. 거짓말을 한 사람이 아니라 거짓말쟁이입니다. 만약 거짓말 한 사람이라고 한다면 아무도 구원을 얻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들은 마귀의 자녀로서 거듭나지 못한 상태입니다. 이들이 그리스도인들보다 더 거짓말을 적게 하고 살았다고 해도 이들은 여전히 거짓말쟁이며, 평생 자기 부인 한 명 외에는 다른 사람에게 눈도 돌리지 않았다고 해도 음행자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일 중심, 행동 중심, 현상과 결과를 중심으로 보기 때문에 음행하는 그리스도인보다 음행하지 않는 음행자를 더 훌륭하다고 생각하며, 살인을 저지른 그리스도인보다 살인하지 않는 살인자를 더 훌륭하다고 생각하며 기독교적 구원관이 뭔가 모순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거짓의 아비인 마귀에게서 나기 때문에 다 거짓말쟁이입니다. [모든 것보다 거짓되고 심히 사악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그것을 알 수 있으리요?](렘17:9).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참으로 하나님은 진실하시되 사람은 다 거짓말쟁이라 할지어다.](롬3:4a). 사람은 누구나 거짓말쟁이입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 때에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살기 때문에 자신은 마치 거짓말과는 상관없는 정직한 사람인양 행세합니다. 그러나 조금만 불리한 상황이 찾아오거나, 약간만 어려운 일이 다가오면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하는데, 이유는 매우 다양합니다. 선의의 거짓말이라느니, 알아봐야 불편할 것 같아서, 창피해서, 좋은 일도 아닌데 등등의 합리적이고 본능적인 자기 방어 논리를 펼칩니다. 어려서는 어린대로 거짓말을 합니다. 그 대상이 부모이든 친구이든 선생님이든 간에 거짓말을 배웁니다. 어른은 어른대로 거짓말을 합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쉽게 거짓말을 하면서 사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성품이 아닙니다. 거짓은 마귀의 성품이요, 마귀의 자녀들의 특징입니다.

정직은 그리스도인과 비 그리스도인을 구별하는 가장 큰 차이가 되어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과 마귀의 차이이기도 합니다. 마귀는 거짓말쟁이에 거짓의 아비이지만 주님은 거짓말하실 수 없는 분이십니다. 전능한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거짓말을 절대 하실 수 없습니다. [영원한 생명의 소망 안에서 /된 것이라/. 이 영원한 생명은 거짓말하실 수 없는 하나님께서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약속하셨으나](딛1:2), [이것은 하나님께서 거짓말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불변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앞에 놓인 소망을 붙잡으려고 피난처로 도피한 우리로 하여금 큰 안위를 얻게 하려 하심이라.](히6:18). 하나님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의 아들이 아니시니 후회하지 아니하시는도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은즉 어찌 그 말씀하신 것을 행하시지 아니하리요? 어찌 그 이르신 말씀을 실행하시지 아니하리요?](민23:19). 마귀는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지만 주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주님은 진리의 하나님이시기에 거짓이 있을 수 없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강력하신 이는 거짓말을 하거나 후회하지 아니하시리니 이는 그분께서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후회하지 아니하시기 때문이니이다.](삼상15:29). 하나님께서 십계명의 하나로 “거짓말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그것이 마귀의 영에 속한 일이며, 마귀의 자녀들이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에 처음 등장하는 마귀의 모습을 보십시오. 마귀가 사람에게 한 처음 일은 거짓말이었습니다.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열리고 너희가 신들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께서 아시느니라, 하니] (창3:4~5). 마귀와 사람 간에 나눈 첫 대화는 사람을 속인 거짓말입니다. 여자는 마귀에게 속았습니다. 아담은 속지 않았습니다. 마귀는 거짓말로 여자를 쉽게 속일 수 있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여자는 거짓말에 쉽게 속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장면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이 마귀의 거짓말에 속지 말 것을 권면했습니다. [그러나 뱀이 그의 간교함으로 이브를 속인 것같이 어떤 방법으로든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단순함에서 떠나 변질될까 내가 두려워하노라.](고후11:3). 이브가 거짓말에 속은 것은 그녀의 마음 속에 단순함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지적인 무지로 인해 속은 것이 아니라 단순함, 믿음이 없어서 속은 것입니다. 마귀는 여자를 속인 것같이 사람들을 간단한 거짓말로 쉽게 속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속는 것만이 아닙니다. 스스로 거짓말을 하는 것이 더 문제입니다.

거짓말은 거짓의 아비 마귀에게서 나온 것이기에 하나님의 자녀들은 거짓에 동참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모두 형제요, 지체입니다. [그런즉 거짓말을 버리고 각각 자기 이웃과 더불어 진리를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遲體)이기 때문이니라.](엡4:25). 거짓 증거를 하지 않고, 거짓말을 버려야 하는 동시에 우리는 진리를 말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사람을 입었기 때문에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형제간에 서로 거짓말하는 것은 주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서로 거짓말하지 말라. 너희가 옛 사람과 그의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 새 사람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서 새로워진 자니라.](골3:9-10). 사람들은 조그마한 난처한 상황이 닥쳐도 거짓말을 합니다. 잠깐의 어색함, 약간의 자존심, 드러내고 싶지 않는 사실들 때문에 부부 지간에도 쉽게 거짓말을 하고, 형제지간에도, 친구 지간에도 거짓말을 합니다. 거짓말은 자기를 방어하는 인간 본성입니다. 하지만 거짓말로 가린 잠시의 수치는 금방 드러나 영원한 수치가 되고 맙니다. 하나님은 거짓말하는 입술을 매우 가증스럽게 여기십니다. [거짓말하는 입술은 주께 가증한 것이나 진실하게 행하는 자들은 그분께서 기뻐하시는 자들이니라](잠12:22). 순간적인 재치와 순발력을 발휘해서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하는 것은 지혜로워 보여도 마귀에게 속은 것이요, 어리석은 자입니다. [거짓말하는 입술로 미움을 감추는 자와 헐뜯는 말을 내는 자는 어리석은 자니라.](잠10:18). 참으로 지혜로운 자는 거짓말로 모면할 순간이 오면 손해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서라도 정직하게 잘못을 시인하고 회개하는 사람입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오 [주]여, 내 혼을 거짓말하는 입술과 속이는 혀로부터 건지소서.](시102:2).

어떤 사람들은 자신은 좀처럼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거짓말쟁이는 누구인가 보십시오. 누가 거짓말 하는 자인가? 요한일서에는 성도가 어떤 경우에 거짓말하는 자가 되는가? 에 대한 날카로운 증언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과 영적 교제를 한다고 고백하는 성도가 어둠 가운데서 걸으면 그는 거짓말하는 자입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귄다 말하고 어둠 가운데서 걸으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하는 것이거니와](요일1:6). 기도하고, 성경 읽고, 찬양을 부르고, 교회 집회에 다 참석하는 성도라 할지라도 여전히 어둠 가운데 걸으면 그는 거짓말 하는 자입니다. 주님과 사귐이 있는 형제라면 빛 가운데 걸어야만 합니다. 어둠 가운데 걷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것이 어둠 가운데 것는 것입니다.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 가운데 있고 어둠 가운데서 걸으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요일2:10). 하나님과 사귀는 성도는 하나님이 사랑이시므로 형제도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면 그는 거짓말하는 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둘째,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고 말하면 우리는 거짓말하는 자입니다.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말하면 그분을 거짓말하는 분으로 만드는 것이요, 또한 그분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1:10). 성도들은 자신의 죄와 허물을 말씀 앞에서 투명하게 조명하고 정직하게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성도는 죄를 짓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라 죄를 회개할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회개할 줄 모르는 사람은 누구나 거짓말하는 자일 뿐 아니라 주님을 거짓말하는 분으로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셋째, 말씀을 알지만 행하지 않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입니다. [그분을 아노라 말하고 그분의 명령들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요일2:4). 거짓의 아비인 마귀는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게 함으로써 자신이 아닌 주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듭니다. 말로만 고백하고 명령들을 지키지 않음으로 거짓말하게 합니다. 성도들이 이 점에서 자신이 거짓말하는 자란 사실을 좀처럼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야고보 역시 [오직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약1:22)고 했습니다. 말씀을 행하지 않는 자들은 모두 자신을 속이는 자요, 거짓말하는 자들이란 점을 기억하십시오. 나는 참으로 거짓말쟁이가 아닌가 생각해 보십시오.

넷째,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는 모두 거짓말하는 자입니다.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자가 곧 적 그리스도니라.](요일2:22).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를 가지고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는 그분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든 것이니 이는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에 관하여 주신 증거를 그가 믿지 아니하기 때문이라.](요일5:10). 베드로는 자신의 목숨에 위협을 느끼자 세 차례나 주님을 부인하며 맹세로 저주하며 주님을 부인했습니다. 그는 살기 위해 거짓말을 했지만 그가 느낀 수치는 당시는 물론이요, 2000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해서 교회에서 설교되고 있습니다. 후에 아나니야와 삽비라를 재판하는 모습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야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님께 거짓말을 하고 땅값의 얼마를 감추었느냐?](행5:3). 아나니야와 삽비라가 성령님께 거짓말을 한 죄를 추궁할 때 베드로 자신은 사람들 앞에서 주님을 부인하고 배반하는 거짓말을 했던 일을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란 사실, 하나님이란 사실을 부인하는 자는 모두 거짓말쟁이들인데 이런 점에서 여호와의 증인들은 거짓말쟁이들의 집단이라 단언할 수 있습니다.

다섯째, 하나님은 사랑한다면서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100% 거짓말하는 자입니다. [누구든지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직접 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가 어찌 보지 못하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으리요?](요일4:20).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하면서 ‘저 친구와는 좀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주님은 그런 자가 거짓말하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성경을 기준으로 거짓말하는 자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들은 자기 교회에서 떠난 형제들을 원망하고 미워합니다. 형제와 형제간에 사랑의 관계가 아니면 우리는 서로 거짓말하는 관계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성도들이 모두 성경적 기준에 맞추어 자신을 판단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무릇 정직해야 합니다. 우리는 개역 성경을 비롯한 신약 성경에서 정직(honest)이란 단어를 볼 수 없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정직하지 않으면 말씀을 들어도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정직하지 않는 마음은 좋은 땅이 아닙니다. [그러나 좋은 땅에 있는 자들은 이들이니 곧 정직하고 선한 마음으로 그 말씀을 듣고 간직하여 인내로 열매를 맺는 자들이니라.](눅8:15).-개역성경: ‘착하고 좋은 마음’.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인 마귀는 성경에서 정직이란 단어를 삭제하고, 성도의 마음에 정직이란 가장 중요한 성품을 빼앗아 버렸습니다. 말씀은 정직하고 선한 마음으로 받아야 열매를 맺습니다. 착하고 좋은 마음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정직하지 못하다면 이미 마귀의 자녀들과 동일한 대열에 서 있는 것입니다. 이는 교회의 사역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봉사를 하려면 믿음과 성령 충만보다 앞서야 하는 한 가지 성품이 바로 정직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는 너희 가운데서 ‘정직하다는 평판이 있고’(이 부분이 개역 성경X) 성령님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찾아내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행6:3). 정직하지 않으면 교회 행정을 맡을 수 없습니다. 특히 초대교회와 같이 공동체 생활을 하며 천문학적인 헌금을 관리하는데는 정직이야말로 사역의 제일 조건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거짓의 아비 마귀는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거짓을 행하도록 했고, 거짓말을 하도록 했는데 이들은 즉시 죽음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성도들은 항상 정직해야 합니다. 거짓은 마귀의 역사 방법이고, 정직은 하나님의 역사 방법입니다.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의 눈앞에서 정직한 일들을 예비하라.(개역-선한 일들을 도모하라)](롬12:17).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눈 앞에서 정직한 일들을 예비해야 합니다. 말에서나 행동에서나 무엇이든지 다 정직해야 합니다. [{주}의 눈앞에서 뿐 아니라 사람들의 눈앞에서도 정직한 일들을 예비하려 함이라.(선한 일에 조심하려 함이라-개역)](고후8:21). 오늘날 교회가 혼탁한 것은 주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행동에는 언제나 거짓이 조금씩 섞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직하면 못 사는 줄로 믿는 성도들이 너무 많습니다. 정직은 최선의 방법이며, 주님의 능력과 보호하심을 얻는 방법입니다. 사역자들은 언제나 정직을 강조해야 하며, 성도들이 정직하게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법을 배우게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어떻게 되더라도 성도들은 정직한 것을 행하기를 간절히 소원했습니다. [또 너희가 아무 악도 행하지 아니하기를 내가 이제 하나님께 기도하노니 그 /목적/은 우리가 인정받은 자로 나타나고자 함이 아니요, 우리는 버림받은 자같이 될지라도 너희만은 정직한 것을 행하게 하려 함이라.](고후13:7). 정직할 때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향기를 낼 수 있습니다. 불신자는 성령 충만이 뭔지 모릅니다. 믿음이 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정직한 사람은 알아봅니다. 그들은 정직한 사람을 신뢰합니다.

거짓에 대한 가장 확실한 대응은 정직입니다. 우리의 삶은 정직했다는 평을 받아야 합니다. 다윗의 일생에 대해 주님은 그가 무슨 일을 했고, 어떤 전쟁에서 이겼고, 어떤 일을 했다와 같이 일과 업적 중심의 평가를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은 업적, 일, 행위, 결과로 사람을 평하지만 주님은 그가 정직했는가 그렇지 않는가로 평하십니다. [이는 다윗이 헷 족속 우리야의 일 외에는 평생토록 [주] 보시기에 정직한 것을 행하고 그분께서 명령하신 모든 일에서 돌이키지 아니하였음이라.](왕상15:5). 다윗은 한 가지 일을 제외하고는 주님 앞에서 정직했습니다. 그가 위대했던 것은 전쟁에서 많이 이겨서가 아니라 정직하게 살았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인정하시고 높이 평하신 것도 바로 그 점입니다. 사람을 평가하는 주님의 방식에서 늘 평가되는 항목이 바로 정직인 것입니다. [아사가 자기 조상 다윗과 같이 [주] 보시기에 정직한 것을 행하여](왕상15:11). 우리는 왕들의 업적을 평할 때 재위 기간 중에 무슨 일을 했는지 살핍니다. 그가 무슨 말을 했고, 얼마나 놀라운 치적이 있는지를 조사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아사가 무슨 일을 했는지 보다 어떻게 행했는지를 보십니다. 정직한가? 부정직한가? 마귀의 성품을 따랐는가? 주님을 두려워함으로 정직하게 살았는가? 그 점을 보십니다. 또 한 예를 봅시다. [여호사밧이 자기 아버지 아사의 모든 길로 걸으며 거기서 돌이키지 아니하고 [주] 보시기에 정직한 것을 행하였으나](왕상22:43a). 주님은 여호사밧이 산당을 제거하지 않고, 아합과 연합하는 등 여러 가지 어리석은 짓을 많이 했지만 그가 정직했다는 점을 평가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 앞에 정직한 사람이란 평을 들어야 할 것입니다. 신약 성도들에게 내려진 명령은 진실, 정직입니다.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이든지 진실한 것과 무엇이든지 정직한 것과 무엇이든지 올바른 것과 무엇이든지 순수한 것과 무엇이든지 사랑스런 것과 무엇이든지 좋은 평판이 있는 것과 덕이 되는 것과 칭찬이 되는 것이 있거든 그러한 것들을 곰곰이 생각하라.](빌4:8). 이는 불신자들을 향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너희로 하여금 바깥 사람들을 향하여 정직하게 걷게 하고 또 너희에게 아무 궁핍도 없게 하려 함이라.](살전4:12). 정직하게 걸으십시오. 정직하게 말하십시오. 베드로 역시 [이방인들 가운데서 너희 행실을 정직하게 하라.](벧전2:12a) 했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일에 정직하게 살고자 하므로 선한 양심을 가진 줄 확신하기 때문이라.](히13:18). 거짓보다 더 마귀적인 것이 없고, 정직보다 더 하나님다운 성품이 없습니다.

거짓은 자신을 더럽히는 것이요, 이웃을 대적하는 것이요, 자신을 더럽히는 것이며,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빛이시요, 진리이시며, 진실하신 하나님을 따라 거짓을 벗어 버리고 정직하게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과 말씀의 능력으로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