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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군훈련과 정관수술

주님의 일꾼 2020. 3. 5. 18:27



20여 전 이야기입니다.  어느날 영등포구청으로 직장예비군교육을 갔습니다.


평소 때 처럼 교육시간 중 열심히 자고 있는데, 연단위에서 어떤 여자분이 "오늘 정관수술받으실 분은 지금 즉시 교육장 밖으로 나오셔서 대기하고 미니버스를 타시기 바랍니다. 오늘 수술을 받는 분은 오후 훈련을 열외해 줍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비몽사몽간이였지만 평소 정관수술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었던 나로서는 그 말이 번쩍 귀에 들어왔습니다.  딸 하나, 아들 하나, 둘을 낳았으니 정관수술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져왔지만 솔직히 수술과 수술 후 통증이 겁나 용기를 내지 못했던 터였는데, 비몽사몽 간이라서 그런지 쉽게 정관수술을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잠이 덜깬 모습으로 미니버스에 올랐습니다. 버스에는 나를 포함하여 10여명의 훈련생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한사람이 말하길 "에이 젠장 !  작년 예비군훈련에서 정관수술을 받았는데 수술이 제대로 안돼 원치 않았던 셋째아이를 가졌어요. 그래서 어쩔수 없이 오늘 또 다시 정관수술을 받으러 갑니다. 제기랄 ! 우리나라 의료기술이 이렇게 허술해서야 돼겠습니까 ?" 라며 투덜되었습니다.


별 희안한 경우도 다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나도 그 사람 처럼 수술이 잘못될까봐 좀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병원에 도착하니 병원관계자가 팬티만 입고 복도에 앉아 있으랍니다. 병원관계자의 안내에 따라 다른 남자들과 같이 팬티를 입고 복도에 앉아 있으니, 병원관계자가 한사람 한사람 수술실 앞 대기실로 들여보냈습니다. 내 차례가 되어 3~4명의 다른 남자들과 수술실 앞 대기실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솔직히 겁이 났습니다. 한번도 수술경험이 없었던 나로서는 몸에 칼을 대야하는 상황, 그리고 그 몸을 꿰매야하는 상황, 그리고 상처가 회복되는 동안 통증을 참아야 하는 상황 등이 머리에 떠올라 두려움이 내 마음을 짓눌렀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나처럼 팬티만 입고 수술의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남자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흡사 도살장 앞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한떼의 돼지떼 같았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나의 수술차례가 다가왔고 두려움은 갈수록 증폭되었습니다.


"에이 ! 괜히 수술을 받으러 왔다. 예비군훈련장에서 비몽사몽간만 아니었다면 수술을 쉽게 결정하지 않았을 테고, 이렇게 두려움에 떨지 않았을 텐데"라며 수술을 결정한 상황을 후회하며 두려움에 떨고 있을 무렵이었다. 


한 여자 간호사가 수술실 문을 열너니 한 남자의 이름을 부르며 수술실로 들어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김정호씨 ! 수술실로 들어오세요."


그런데 호명을 한 여자 간호사와 호명을 받은 남자가 서로 눈이 마추쳤을 때 이상한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눈이 마주치자 여자는 깜짝 놀라며 황급히 문을 꽝 닫고 수술실로 들어갔으며,  내 옆에 앉았던 남자는 역시 깜짝 놀라며 얼굴이 새빨개지며 고개를 푹 숙이는 것이 아닙니까 ?


그 상황이 너무 궁금하여 그 남자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왜 그렇게 놀라십니까 ?"  그 남자는 황당하고 수줍은 표정으로 내게 말했습니다. "그 간호사 예전에 저랑 사귀다가 헤어진 여자친구였습니다. 이런 곳에서 저 친구를 만날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이게 영화도 아니고 코메디도 아니고, 어찌 이런 상황이 생길 수 있을까요 ?  정말 말도 안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간호사도 그 남자도 얼마나 서로 황당했겠습니까 ?  옛연인을 정관수술실에서 재회를 하다니 말입니다. 그 남자는 웃을수도 울을수도 없는 상황속에 새빨개진 얼굴을 숙이며 한없는 쪽팔림에 어쩔줄을 몰라 했습니다.

그때 수술실의 문이 살그머니 열리면서 그 간호사가 종이 쪽지 하나를 전달해주고는 재빠르게 수술실로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까 ? 그 종이 쪽지에 적힌 글을 읽던 그 남자는 다시 얼굴이 새빨게 지면서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이 상황이 또 궁금하여 그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 간호사가 뭐랍니까 ?" 나의 질문에 그는 창피하고 겸연쩍은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기가 직접 정관수술을 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랍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의 얘기를 듣는 순간 나의 정관수술에 대한 두려움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습니다. 사람들만 없었다면 너무 웃겨서 그곳이 떠나가라하고 웃었을 겁니다.  코메디 아닌 인생 최고의 코메디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남자 정관수술, 이상 없었겠지요 ?